[업그레이드 - 연구풍토 ②]연구성과 책임질 주체 실종"과학 공동체 연대책임의식 갖고 연구관리 과학화해야"

다들 알면서 묵인하고 있다. 뭔가 연구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성실이냐 실패냐 결과만 묻고 과제기간이 종료되면 모든 게 끝이다. 그 뒷감당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논문이 부실하든 말든 특허가 강하든 약하든 연구자도, 정부도, 행정조직도 누구도 결과를 따져묻지 않는다.

'한국 과학號' 열차가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는데도 멈춰세울 방법을 아무도 모르는듯 하다. 매년 R&D예산으로 십수조원이 풀려도 연구결과 가치에 대한 답은 '묻지마'이다. 국민세금으로 투자한 예산이 이제 나라 살림을 휘청하게 할만큼 규모가 커졌는데 성과에 대한 책임은 없고 걱정만 불어난다.

정부는 장관이 바뀔때마다 과학계 성과 창출을 부르짖으며 부산을 떨지만, 다른 편에선 성과 챙기기 목적으로 연구자들의 성과를 취합해 실적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 현장에서의 쏟아지는 우려와 경고를 정부 관료들은 진정성있게 귀담아 듣지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정부나 연구자들은 국민들 입장은 아랑곳 없다는 듯 잘못됐다고 본인들도 이야기하면서 고칠 엄두를 못낸다. 일이 커지고 나서 두고두고 후회할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한 과학자는 작금의 과학계 상황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없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우리 과학계는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와 같아요. 연주자(연구자)는 똘똘해 보이는데 마땅히 연주할 곡(가치있는 연구아이템)이 없고 지휘자가 없습니다. 과제에 대한 결과평가는 전문가 위원회 평가해서 실패하면 탈락 결정만 내리지, 성과를 성공시켜 그 다음 단계에 뭘 해야겠다는 구조가 아닙니다. 전체 성과를 지휘할 관리를 제대로 한다면 연구자들이 의미있는 연구를 위해 애쓸텐데, 지금은 연구과정을 관리할 주체가 전무하다고 봐야합니다."

◆ "밑빠진 독 물붓기"…예타 평가 통과하면 끝?

한국 과학계의 연구성과 책임 부재는 심각한 수준이다. 일단 과제를 따고 보자는 현상은 특히 우려스럽다.

과학계에서 내로라하는 한 연구과제 예비타당성(이하 예타) 평가 컨설턴트는 "과제를 따주면 뭐하냐"면서 자신의 딜레마를 이야기했다.

이 컨설턴트는 과제기획의 차별성을 보여 예타 통과율이 거의 100% 가까울 정도로 높다. 맡기면 예산반영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과제 수주를 위해 기획에 차별성을 갖고 접근하지만, 예산을 받아놓으면 연구과제 실행단계에서 기획한대로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다. 과제 기획은 변별력있게 잘 됐는데 결국 연구과정에서 엉뚱한 결과로 튄다.

이러한 현상을 접할 때마다 이 컨설턴트는 '내가 이대로 정부 예산만 받아주는게 과연 괜찮나? 결국 국민세금 낭비 아닌가?' 하면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컨설턴트 K 씨는 "연구자들이 개입하는 것을 싫어하겠지만, 의미있는 성과를 위해 예타 평가 이후 연구과정에도 직접 개입해 연구자를 코칭해보고 싶다"며 "지금 과학계에서 연구과정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진정한 연구가치 성과 제고를 위해 책임지는 사람이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대로 가다간 수십조 수백조를 R&D에 투자해도 밑빠진 독 물붓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 위태로운 과학계 '보신주의(保身主義) 만연'…정부도 근본적 접근 못해

"연구과제를 종료하고 되돌아봤을 때 과연 최선을 다한 연구자가 몇명일까 의심스럽습니다. 분명 책임연구자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런 의식이 절대 부족합니다. 학생이나 비정규직에게 연구를 거의 맡기다시피 하는 책임연구원이 적지 않습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한 비정규직 연구원은 "연구현장에 보신주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연구소를 떠나야 하는 비정규직 입장이지만,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주객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연구과제 책임자라면 처음 과제기획에서 약속했던 결과물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연구해야 하는데, 비정규직인 자신이 연구를 하고 책임연구자는 편한 생활을 누린다고 하소연했다. 비단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에 소위 '놀고 먹는' 연구자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단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연구성과에 슬쩍 이름을 올리는 현상도 과학계의 고질적 문제다.

정부는 연구자들이 과제를 너무 많이 수행해 부실성과를 남발하는 문제를 놓고 3책5공 규제를 내세웠다. 한 연구자가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총 연구과제 수는 5개까지, 그 중 책임연구원으로는 3개까지만 가능하도록 한 제한규정이다. 하지만 이 제도의 취지와 현실은 따로 논다. 여전히 여러 과제에 숟가락을 얹고 의미있는 연구결과와는 먼 행보를 보이는 연구자들이 많다. 매년 국정감사에 국회의원들이 유행처럼 지적하고 있는 문제지만, 개선된 사례는 별로 없다.

이공계대학의 한 교수는 "과연 연구자가 몇개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연구자들이 3개 이상의 과제를 수행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부실성과로 이어지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KAIST의 한 우수 연구교수는 "연구책임자로서 솔직히 의미있는 연구성과를 내려면 연구자가 1개 과제에 집중해야 하고, 많으면 2개까지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연구성과에 대해 여전히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한다. 가장 핵심인 연구성과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지표와 증언에도 양적 평가지표를 질적으로 개선시키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현장에서는 평가지표만의 개선은 수박 겉핥기식 꼼수라고 꼬집는다.

정부가 연구자에게 결과에 책임을 묻겠다고 하지만, 국가 R&D 연구개발 성공률이 90% 이상이라는 지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수치다. 연구자도 문제지만 관료들도 연구과제에 대한 실패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무조건 성공'을 양산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연구개발 과정을 세심히 들여다 보면서 실질적인 연구관리 감독하는게 아니라 행정 규제만 갈수록 늘게하면서 그 규정을 어기지 않으면 성공이란 식으로 관료주의만 강화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대덕넷이 과학계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출연연에서 연구에 전념하지 못하는 연구자 비율이 상당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출연연에서 연구에 전념하지 못하는 연구인력의 비율 수준을 묻는 질문에 전체 연구인력의 90~100%라고 답한 응답이 5%(12명), 60~90% 수준은 18.6%(45명), 40~60% 수준 36.4%(88명), 10~40% 수준 30.2%(73명), 0~10% 수준 3.3%(8명)로 답변이 나왔다. 나머지 2.5%(6명)은 기타 의견을 보였다. 결국 50% 내외의 집중률을 보이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으로 연구현장에서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자신이 주도한 연구성과가 다른 연구자(선배연구자, 교수, 기관 등)에 직·간접적으로 공이 돌아간 사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있다'라는 답변이 56.6%(137명), '없다'가 38.4%(93명)이었다. 나머지 2명은 기권했다.

 

 

아울러 현재 과학기술인들의 연구성과에 대한 책임감 수준을 평가하는 질문에는 '부족 의견'이 다소 우세했다. 책임감 수준이 '매우 우수 또는 우수하다'는 의견이 45.5%(110명)이었고, 51.2%(124명)가 '매우 부족 및 부족'하다는 응답을 보였다. 나머지 8명은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과학계 한 인사는 무엇보다 연구관리의 과학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먹구구식 관리가 아닌, Peer Reivew 등의 활성화를 통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연구수행 관리와 연구결과 형성된 무형자산(지적자산, 성공·실패 경험자산)의 체계적인 축적 시스템의 성숙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근본적 체질 개선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며 "연구자나 정부나 모두 지금은 연구성과에 대한 과학 공동체의 연대책임의식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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