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⑥]스페이스 노아·드림엔터·차고카페 등 '공간 재해석' 사례 주목
코워킹 스페이스 '슬럼가 소셜벤처 씨앗 뿌리는 텃밭' 되다

공동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스페이스 노아'는 북창동 룸살롱을 개조해 만들었다. 하루 커피 한 잔 값으로 이용할 수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공동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스페이스 노아'는 북창동 룸살롱을 개조해 만들었다. 하루 커피 한 잔 값으로 이용할 수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서울시청역에 내려 5분쯤 걷다 보면 먹자골목으로 유명한 북창동이 나온다. 높은 빌딩건물 사이에 위치해 있어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찾는 곳이지만 밤이 되면 유흥가로 변한다. 80년대에는 룸살롱이 즐비해 야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주 목격됐던 곳이기도 하다.

요즘 북창동은 룸살롱과 같은 유흥업소가 강남 등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가면서 빈 공간이 늘어났다. 1층은 사정이 낫지만 3~4층은 텅텅 비는 곳이 많다. 이런 공간이 아티스트와 창업가들이 모인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했다. 이른바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  서로 다른 직업과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아이디어를 협업하는 공간)'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를 가진 코워킹 스페이스가 생겨나고 있다. 그 중 북창동 인근 룸살롱 터를 개조한  '스페이스 노아'는 하루 커피 한 잔 값으로 공동 사무실과 프린터, 복사기 등 사무용품을 이용할 수 있다. 창업공간이 없어 눈치 보며 카페를 전전할 필요가 없다보니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문을 연지도 어느덧 3년. 멤버십으로 등록해 꾸준하게 이곳에 들러 일하는 사람은 약 180여명으로 월3000~5000여명이 오간다.

실제 협업과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아띠인력거(해외유학파 젊은이들이 인력거 사업을 통해 외국인에게 우리나라의 아름다움과 역사 등을 알리는 회사), 최게바라 기획사(청년 주체 문화기획을 통해 사회를 바꾸는 회사), 에너지 히어로(에너지 자립도시를 기획하고 만드는 회사)등이 이곳에서 창업을 시작해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 공간의 재해석 "아무도 찾지 않던 공간의 변화가 가장 기뻐"

스페이스 노아의 벽면. 새로운 프로젝트 소개나 협업할 사람을 찾는 포스터 등이 붙어있다.<사진=김지영 기자>
스페이스 노아의 벽면. 새로운 프로젝트 소개나 협업할 사람을 찾는 포스터 등이 붙어있다.<사진=김지영 기자>

최근 무작정 '스페이스 노아'를 찾았다. 굽이진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혀를 내민 아이슈타인과 김구 선생, 오드리햅번 현수막으로 둘러싸인 '스페이스 노아'가 보였다.

3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널찍한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한 사람들이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집중하고 있다. 벽면에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 전단지나 협업할 사람을 찾는 구인포스터도 붙어있다.

남녀노소,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일을 하고 있었다. 말을 붙이면 안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 속 진지한 눈에서 새로운 일을 향한 열정이 느껴졌다.

3층이 집중근무를 하는 곳이라면 4층은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카페테리아로 꾸며져 있다. 평소엔 회의하는 공간으로 쓰이지만 필요할 땐 세미나나 강연도 가능하다. 금요일 오후라 사람들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2~3명씩 짝을 지은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토론을 즐기고 있었다.

재밌는 것은 커피를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없다. 그저 마시고 싶으면 스스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릴 뿐이다.

회의를 하거나 세미나, 강연 등이 가능한 4층의 카페테리아.<사진=김지영 기자>
회의를 하거나 세미나, 강연 등이 가능한 4층의 카페테리아.<사진=김지영 기자>

한태정 스페이스 노아 전략기획팀장은 "이는 의도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의 대화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 '정수기 앞'이라고 합니다. 일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쉽게 말을 걸 기회가 별로 없거든요. 저희는 이곳에 오시는 분들께 속성으로 커피 내리는 방법을 알려드려요. 그러다보면 커피 내리는 법을 서로 묻기도 하고, 그러면서 어떤 일을 하는지 물을 수도 있으니까요."

커피 뿐만 아니라 화장실에서도 공간을 재밌게 쓰려는 노력이 보였다. 이 곳 화장실은 긴 형태로 되어있어 볼일 보며 노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노크대신 남자 화장실에는 다트를 설치해 놓았고, 여자 화장실에는 소리 나는 인형을 가져다 놓았다.

상권이 강남으로 옮겨가며 슬럼가처럼 변해가는 공간이었지만 새로운 공간의 탄생은 주변상가까지 활기차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회원들이 함께 더러워진 신촌거리를 치우고 레고작품을 설치해 깨끗한 동네를 만들기도 했다. 깨끗한 동네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진을 SNS에 올리는 사람을 대상으로 제휴 음식점 할인 쿠폰을 제공했더니 참여율도 높아졌다.

박근우 스페이스 노아 대표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공간에 사람들이 오가며 새로운 문화를 창출시키는 곳으로 탈바꿈 한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치과의사로 국제개발에 관심이 많아 아프리카 등 개도국에서 봉사활동을 계속 해왔다. 아동노동, 성매매 실태에 큰 충격을 받았던 그는 한국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고 이런 공간들을 새롭게 개선해야겠다고 결심, 공간 변화 프로젝트 '노아 프로젝트' 일환으로 코워킹 카페를 운영하게 됐다.

박 대표는 "슬럼화 되어 아무도 안 찾던 공간이 변화하자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게 되었다는 것이 나에게 가장 보람된 일"이라며 "우리 주변 활용되지 않는 많은 공간들이 사회에 필요한 공간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공간이 필요해? 24시간 오픈 '드림엔터'

'드림엔터'는 예비창업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곳으로 미래창조과학부가 운영 중이다. 24시간 사용할 수 있어 많은 예비창업자들이 오고 간다.<사진=김지영 기자>
'드림엔터'는 예비창업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곳으로 미래창조과학부가 운영 중이다. 24시간 사용할 수 있어 많은 예비창업자들이 오고 간다.<사진=김지영 기자>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옆 건물에 위치한 '드림엔터'는 예비창업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곳으로 미래창조과학부가 운영 중이다. 광화문역에 내리면 1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늘 사람이 북적인다.

미래부에 따르면 드림엔터는 개관 1년 동안 7만5099명이 다녀갔다.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돼 예비초기 창업자들이 시간에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담 없다. 건물에 들어가기 위한 제약도 없다.

드림엔터 1층에 들어서자 3개의 강의실에 사람들이 앉아있고, 오픈된 테이블에서 사업을 논의하고 있었다. 2층에 올라가자 1층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조용하다. 집중근무를 하는 곳으로 예비 초기 창업자 13개팀 등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사무실을 둔 창업자들은 각자 분야에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위치정보 기반 모바일 광고솔루션을 개발 중인 위앤팩토리와 같이 책상 하나로 시작했던 스타트업이 각종 공모전에 입상하거나 세계가 주목하는 벤처기업으로 성장해 확장 이전하는 등 성공사례가 나오고 있다.

주말이면 중·고등학생 프로그래머들이 노트북을 들고 드림엔터로 모이기도 한다. 이들 중 4팀이 작년 11월 SK플래닛과 중기청이 공동으로 개최한 고교생 대상 앱 개발 경진대회 '스마틴 앱 챌린지 2014'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책과 관련된 사업을 준비 중이라는 한 관계자는 "드림엔터가 오픈 한 후부터 쭉 찾고 있다"며 "일할 공간이 부족한 예비창업자들에게 24시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드림엔터 1층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2층은 예비창업자들이 집중근무를 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드림엔터 1층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2층은 예비창업자들이 집중근무를 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 한 공간에서 일하면서 '아이디어 교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있는 첨단 산업 연구 단지 '판교테크노밸리'에는 카카오, 넥슨, 네오위즈, 네이버의 HNH 등 다양한 IT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N자와 C자를 본떠 만든 독특한 건물들을 시작으로 정원과 공원 등이 회사와 연결돼 있다. 얼핏 보면 호텔 같은 인상을 주는 회사건물들이 다양한 모양을 뽐내고 있다.

판교밸리 건물들은 대부분 바닥 면적이 넓다. 덕분에 같은 층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많아져 수시로 만나며 소통도 원활한 장점이 있다. 유관업종 관계자들은 주로 카페에서 회의하고 아이디어를 나눈다. 그 중 1층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카페를 만들어 소통을 강화한 업체들도 눈에 띄었다.

게임업체인 네오위즈의 경우 1층 건물의 4분의 1가량을 카페 건물로 지어놓았다. 직원들이 기부한 책들이 가득한 가운데, 넓은 공간 구석구석 회의를 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점심시간이든 아니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드나들며 회의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판교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업체들은 기업들 스스로가 카페테리아 혹은 공동공간을 확충해 쉽게 회의하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해 놓았다. 아이디어가 커피를 마시며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의 교류를 강화하기 위해 공간 활용을 선택했다.

판교테크노밸리 관계자는 "회사 간 거리가 가깝다보니 점심시간을 이용해 밥을 먹거나, 혹은 카페에서 회의를 하면서 교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판교테크노벨리는 입주해있는 기업들이 모여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세미나와 강연을 하기 위한 장소로 쓰이는것이 대부분으로 공간 개선을 예정하고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판교테크노벨리는 입주해있는 기업들이 모여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세미나와 강연을 하기 위한 장소로 쓰이는것이 대부분으로 공간 개선을 예정하고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소규모 기업은 판교테크노밸리 3층 회의실에서 의견을 나눈다. 그러나 세미나와 강연을 하기 위한 장소로 쓰이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판교테크노밸리는 공간 개선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판교테크노밸리 관계자는 "제2판교 조성할 예정으로 '기업허브 지원센터'등을 마련해 기업 소통 및 지원을 추진할 것"이라며 "중국 처쿠카페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중국의 작은 실리콘밸리 '중관촌' "차고카페의 열정이 무섭다"

최근 작은 실리콘밸리라는 별명이 붙은 중국 베이징 중관촌 모습. 중관촌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innoway(창업의 길)'이라는 간판이 사람들이 맞이하고 있다. <사진=ETRI 제공>
최근 작은 실리콘밸리라는 별명이 붙은 중국 베이징 중관촌 모습. 중관촌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innoway(창업의 길)'이라는 간판이 사람들이 맞이하고 있다. <사진=ETRI 제공>

최근 창업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중국은 어떻게 공간을 활용하고 있을까. 이는 작은 실리콘밸리 중국 베이징 중관촌에만 가도 느낄 수 있다. 중관촌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innoway(창업의 길)'이라는 간판이 사람들이 맞이한다.

과거 중관촌은 전자제품 판매업이 먼저 떠오를 만큼 전자상가가 성황했지만 인터넷 구매로 유통구조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전자상가가 폐업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폐업은 또 다른 시작이 됐다. 중관촌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바뀌는 흐름을 제대로 타면서 몰락이 아닌 중국의 대표적 창업시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창업의 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최근 이곳에는 중국의 창업열기를 볼 수 있는 회사들이 밀집했다. 2200여개의 협력투자기업과 360개의 벤처인큐베이터, 100여개의 투자단체가 모여있다.

그 가운데 제2의 마윈을 꿈꾸는 청년들이 몰리는 공간이 있다. 창업카페 원조이자 청년창업 아지트로 불리는 '처쿠카페(차고카페)'다. 2011년 창업한 처쿠카페는 애플의 CEO 고(故) 스티브 잡스가 집 차고에서 창업했다는 점에 착안해 지은 이름이다. 

중관촌에는 제2의 마윈을 꿈꾸는 청년이 몰리는 청년창업 아지트 '차고카페'가 있다. <사진=ETRI 제공>
중관촌에는 제2의 마윈을 꿈꾸는 청년이 몰리는 청년창업 아지트 '차고카페'가 있다. <사진=ETRI 제공>

처쿠카페에 들어서면 기다란 책상에 빈 자리 없이 빼곡히 앉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모두 컴퓨터만 들여다 보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창업을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노트북선이 천장의 전기선과 연결되어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100여개의 좌석이 늘 붐빈다.

처쿠카페는 월 100위안(약 1만 7000원)만 지불하면 복사기, 프린터기 등 사무기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자본이 많지 않은 창업가들에게는 매력적인 곳이다. 벽 쪽에는 투자자들 정보와 함께 일할 사람들을 찾는 벽보가 빼곡하게 붙어있고 창업자들의 시제품도 언제든지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진짜 이유는 창업을 꿈꾸는 사람 뿐 아니라 투자자들이 직접 카페를 찾는다는 점이다. 특히 금요일에는 아이디어 경진대회가, 주말에는 투자기관이나 엔젤투자자들을 위한 설명회가 매주 진행돼 사람들로 더욱 북적인다.

처쿠카페는 민간이 운영한다. 처음부터 카페가 활성화 된 것은 아니지만 투자금을 조달해 창업에 성공한 사례들이 소개되면서 카페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3년간 이곳에서 창업한 기업은 130여개로 절반 이상이 카페를 통해 투자자들을 만났다. 연매출 1억 위안 이상 올린 곳도 4개사에 달한다.

처쿠카페가 위치한 중관촌에서 창업을 시작해 성공한 사람들은 다시 중관촌으로 몰려들어 투자를 한다. 그야말로 선순환 구조다.

최근 두 차례나 처쿠카페에 방문한 김흥남 ETRI 원장은 "연구소와 우수대학, 기업이 밀집한 베이징의 중심에서 인프라를 활용하며 혁신적 아이디어를 생산해내고 있는 이들을 보며 문득 부럽고도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대덕에도 젊은 예비창업자들이 생기발랄하게 모여 왁자지껄 떠드며 토론하고 의견을 발표하는 창업을 위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처쿠카페는 월 100위안(약 1만 7000원)만 지불하면 복사기, 프린터기 등 사무기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사진=ETRI 제공>
처쿠카페는 월 100위안(약 1만 7000원)만 지불하면 복사기, 프린터기 등 사무기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사진=ETRI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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