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출연연 기관장 배출…"여성 연구인력 체계적 육성 시급"
대부분 연구기관 여성 보직자 비율 10% 밑돌아

과학기술계에서도 서서히 여풍이 불고 있다. 

연구 분야에서 영역을 넓히며 두각을 나타내던 여성 연구원들이 이제 연구관리와 정책, 기획은 물론 최고 기관장(CEO) 자리까지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여성 연구인력이 적고 보수적인 문화 탓에 우리나라 정부 R&D연구소의 경우 여성의 중용이 더뎠던 게 사실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기술계에서는 여성 기관장이나 임원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여성 과학기술인들도 국가 R&D 연구소의 핵심 자리를 꿰차며 과학기술계를 이끌고 있다. 

◆ 과학계 기관경영 '여풍 확산'…여성 과기계 "출연연 여성 기관장 이제 3명, 더 늘어야"

 

왼쪽부터 정광화·한선화·이혜정·박영아 원장<사진 = 대덕넷>
왼쪽부터 정광화·한선화·이혜정·박영아 원장<사진 = 대덕넷>

과학기술계는 지난 2005년 말 정광화 박사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으로 선임되면서 첫 여성 기관장 시대를 열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설립된 이후 30여년 만에 여성의 섬세한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는 문화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표준연에서 시작된 여풍은 이제 다른 연구기관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과학계 여성 최초 기관장을 역임한 정광화 박사는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을 거쳐 작년부터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9월에는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52주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 기관장이 탄생했다. KISTI 첨단연구소장을 맡던 한선화 박사가 신임 원장으로 선임됐다. 

한국한의학연구원도 최초 여성 기관장이 나왔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지난 7일 이혜정 경희대학교대학원 기초한의과학과 교수를 임명했다. 이 교수는 한의학계에서 침구학 관련 국내에서 손가락으로 꼽힐만큼 연구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연구자로 정평이 나있는 인물이다. 

작년 9월에는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제7대 원장에 전 국회의원을 지낸 박영아 명지대 물리학과 교수가 선임돼 국가 연구개발 효율화를 위한 기획기능 활성화를 위해 활약하고 있다. 

원장 선임을 앞두고 있는 표준연의 경우 기관장 후보 3배수에 신용현 전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장도 포함돼 있어, 표준연 역대 두번째 여성 기관장 탄생 여부를 두고 과학계가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연구기관장은 아니지만, 원자력분야 여성 과학기술인 출신의 민병주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소속돼 과학기술계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상 최대 여성 출연연 기관장이 배출된 현상에 대해 여성 과학계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여성 과학경영인들이 더 많이 늘어나도록 사회적으로 육성과 양성을 거듭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성옥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장은 "이제 25개 출연연 기관장 중 3명의 여성 기관장이 나왔다"며 "앞으로도 새롭게 기관장이 많이 배출되어야 하지만 사실 많은 여성 과학기술자 인력이 없는 것이 문제다. 지금보다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국가 사회적으로 여성 과학기술인력을 더 많이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연구기관 '여성 간부' 얼마나 있나…대부분 연구소 10% 미만 

여성 기관장들이 연이어 배출된 가운데 연구소들도 이전보다 활발한 여성 연구원의 중용과 승진이 예상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대덕넷 취재결과 한의학연 등 일부 연구소를 제외한 대부분 출연연들의 여성 보직자들은 1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의학연을 비롯해 KISTI,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정도만 여성 보직자의 비율이 10~20%에 육박하지만, 나머지 연구기관들의 여성 보직자는 10% 미만으로 조사됐다. 특히 KAIST(한국과학기술원)을 비롯해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은 여성 보직자 비율이 2%대에 그쳤다. 

기계연의 경우 289명의 연구인력중 11명이 여성이며, 이중 여성 보직자는 1명이다. KAIST와 항우연의 전체 보직자 수가 80~90명에 이르지만, 여성 보직자 수는 2명에 불과했다. 

가장 여성 보직자 비중이 높은 곳은 한의학연으로, 보직자 29명 가운데 6명이 핵심 간부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부원장격에 해당하는 선임연구본부장이 여성이다. 한의학정책연구센터장을 겸직하고 있는 송미영 박사가 선임연구본부장을 맡고 있고, 최선미 의료연구본부장과 방옥선 한약연구본부장이 본부장급 임원으로 있다. 

또한 전체 연구인력 284명중 132명이 여성 연구인력으로 출연연 중 압도적인 비중(46.4%)을 차지하고 있다. 덕분에 한의학연은 올해 미래창조과학부의 '여성과학기술인 채용목표제 우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KISTI는 여성 보직자가 총 10명(15.9%)이다. 최근 3년 여성 인력의 승진 비율이 75%에 이른다. 반면 남성은 60% 수준이다. 

여성 보직자가 전무했던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는 최근 30대 초반의 선임급 여직원을 감사실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KAIST는 여성 교수 임용을 늘리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12년 43명에서 작년 46명, 올해 53명으로 늘었다. 전체 교수는 620명이다. 평소 강성모 KAIST 총장은 "10%는 외국인 교수, 10% 외국인 학생, 10% 여성 교수로 학교를 운영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강조하며 여성 우수교수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박현욱 KAIST 교무처장은 "최근 2년 사이 신임 교수 임용의 20% 가까이 여성 교수로 채워지고 있다"며 "각 학과별로 우수성을 기반해 여성 교수를 글로벌하게 적극 채용하도록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항우연 관계자는 "국내 기계, 항공우주 계열 석박사 취득자 중 여성 비율이 10%가 못되는 실정이라 여성 연구인력을 뽑고 싶어도 뽑기 어렵다"라며 "남성 중심의 연구특성이 있다 보니 아직 여성 보직자가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섬세한 여성 리더십이 공학 계열에도 필요하기 때문에 점차 여성의 능력이 인정받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계 한 인사는 "아직 우리 과학계의 현실에서 유리천장이 실질적으로 뚫리려면 여성 경력단절, 여성 연구인력 확보, 남성중심 문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앞으로 연구소 차원에서나 정부 차원에서도 여성 과학기술인력의 체계적인 양성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계 주요 기관 여성 보직자 비율<표=대덕넷>
과학기술계 주요 기관 여성 보직자 비율<표=대덕넷>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