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민행복 운운하면서 재난 인명구조 연구개발은 '뒷전'
향후 10년 국가과학기술 로드맵…구조 보다 예방에만 초점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이 정말 위급할 때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을까? 또는 정말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수습 과정 중에 발표한 정부의 국가R&D에도 위급 상황에서 국민을 위한 연구개발이 포함돼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중장기 계획에는 온통 국가적 연구개발을 통해 얼마의 경제적 가치와 몇 명의 고용이 창출될 수 있을 것이란 장미빛 전망은 가득하지만 정작 긴급 재난 발생 시 국민 생명 보호를 위한 각오나 다짐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사진은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시민들이 남긴 글 중 하나다.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이 정말 위급할 때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을까? 또는 정말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수습 과정 중에 발표한 정부의 국가R&D에도 위급 상황에서 국민을 위한 연구개발이 포함돼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중장기 계획에는 온통 국가적 연구개발을 통해 얼마의 경제적 가치와 몇 명의 고용이 창출될 수 있을 것이란 장미빛 전망은 가득하지만 정작 긴급 재난 발생 시 국민 생명 보호를 위한 각오나 다짐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사진은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시민들이 남긴 글 중 하나다.
향후 10년간 국가R&D 방향을 이끌 로드맵이 지난 23일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이하 국과심)에서 확정됐다. 초점은 미래 신성장동력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맞춰졌다. 더불어 미래부는 같은날 과학기술로 국민불안을 해소하겠다면서 식수원 녹조와 초미세먼지 카드를 제시했다.

국과심은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의사결정기구로 국무총리와 13개 부처 장관을 비롯해 과학기술·인문사회 인사 등 총 25명으로 구성된다. 이날 이들은 ▲국가중점과학기술 전략로드맵 ▲출연연의 중소·중견기업 R&D 전진기지화 방안 ▲3D 프린팅 산업 발전전략 ▲해양수산 R&D 중장기계획 등 12개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세월호의 교훈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어디에도 세월호 참사 이후 필요성이 제기된 대형 재난구호 관련 무인로봇 등 연구개발은 언급되지 않았다.

로드맵에 ▲자연재해 모니터링·예측·대응 기술 ▲복합재난 저감기술이 포함됐으며, 해수부의 '해양수산 R&D 중장기계획'에 해양로봇과 선박평형수 관리기술 등이 짧게 거론된 정도다.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예방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해수부의 해양로봇의 정체도 불분명하다. 이번에 사고 해역에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개발 중인 '크랩스터'가 투입됐지만, 처음부터 해저지형 탐사와 광물 채취 목적으로 제작돼 인명구조 기술은 없다.

이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자원 개발과 해양연구, 인명구조 등에 활용될 수 있는 시스템과 핵심기술이 필요하다는 취지"라며 "무인로봇의 용도 등 구체적 내용은 없다. 중장기 계획인 만큼 개략적 밑그림 수준"이라고 답했다.

세월호 사건 초기, 한국 바다의 거센 조류를 이겨내고 극히 제한된 시야에 구애받지 않는 해양로봇이나 인명구조로봇이 있었다면 희생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후회섞인 회한이 많다.

세월호 관련, '과학 강국'을 자처하는 우리나라의 해양 재난 시 인명구조에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을 취재한 바 있다. 결론은 기술은 많은데 사람을 살릴 기술은 없었다. 늦게나마 사고 현장에 무인로봇이 투입됐지만, 서해의 강한 조류를 이기지 못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회 일각에서는 정부가 꼭 필요한 때에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더불어 '국가가 국민을 버렸다'는 한탄까지 흘러 나오고 있다. 또 과학계에서는 "사고가 난 뒤 책임 소재와 원인 규명으로 호들갑을 떠는 것이 우리 정부의 행태"라고 꼬집은 이가 있는가 하면 "사고가 나면 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시일이 지나면 바로 돈 되는 사업으로 관심이 쏠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들이 마실 식수원이 오염되지 않도록 녹조를 예방하는 기술, 또 건강을 위협하는 초미세먼지를 없애는 기술 역시 중요하다. 또 두 가지 기술 모두 건강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끼칠 경제적 파급효과가 막대하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10년에 한 번, 100년에 한 번 사용하더라도 그 한 번의 상황에서 국민의 목숨을 최대한 책임져 줄 수 있는 과학기술을 만드는 것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 R&D의 책무란 생각이 든다.

선진국은 경제규모만 성장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 가치로 환산된 장미빛 전망만을 담은 정책과 계획이 아닌,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정책을 만드는 국가가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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