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넷-중앙일보 공동설문…과학동네 종사자들 불만·대안 토로
"정권 바뀔때마다 정책 오락가락" 과학정책 패러다임 변화 요구

과학동네 종사자들은 한국 과학기술 정책에 'F학점'을 부여했다. 낙제점이라는 것이다.

대덕넷과 중앙일보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과학기술인 10명 가운데 7명은 "과학기술 정책이 잘못됐다"며 "한국을 떠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 과학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꼽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그리고 대안은 무엇일까? 과학동네 종사자들은 '쓴소리'를 내면서도 누구보다 '대안 제시'에 적극적이었다. 국내 과학기술 정책과 과학기술계의 어두운 현실을 누구보다 답답해 하는 동시에 '애정어린 비판'의 목소리도 가감없이 쏟아낸 것이다.

대덕넷·중앙일보 공동 설문조사는 12개의 문항에, 조사기간 3일, 응답자는 300명을 채 넘기지 않았지만 '한국 과학기술 현실과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적어달라'는 주관식 문항에 거의 모든 응답자가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하나였다. "제발 눈앞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일관되고 장기적인 정책을 펴달라."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된 정책 펼쳐야

과학동네 종사자들이 가장 많이 제시한 대안은 '장기적 관점에서의 일관된 정책'이었다. 눈앞의 성과, 당장의 수익과 시장성만 생각하는 프로젝트,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연구분위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과학정책 등과 같은 '조급증'이 국내 과학기술계를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응답자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조삼모사 식으로 정책이 바뀌기 때문에 10년을 바라보며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심도있는 기술축적에도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과학동네 종사자는 "최근 R&D 정책은 상용화에 너무 집착해 장기간 꾸준히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연구보다 겉포장만 한 연구로 전락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 과학기술인은 "앞으로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 방향은 과거에 지향했던 단기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과학기술에 대한 '묻지마 투자'가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처가 변해야 한다"…관료 중심에서 과학기술인 중심으로

과학동네 종사자들은 한결같이 과학기술 전담 부처 부활을 주문하면서도 관료 중심의 과학기술 정책에서 과학기술인 중심의 정책으로의 변화를 강조했다.

과학기술 정책이 과도하게 부처 및 관료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많은 후유증과 폐단이 발생했고,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인 중심으로 정책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출연연의 한 연구원은 "부처 이기주의로 분산된 R&D 기능을 총괄하고 기존 부처보다 상위 개념의 실질적 콘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으며, 또 다른 연구원은 "장기 비전을 갖고 일관성 있는 과기정책을 펴지 못하고 단기에 가시적 성과를 지나치게 요구하면서 연구 효율이 떨어지고 연구원의 사기가 저하되고 있다"며 "과학기술 정책은 가능하면 관(官)이 아닌 과학기술인이 주도하고 장기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 과학동네 종사자는 "과학이나 과학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관료에 의해 정책이 수립되고, 전직 관료에 의해 집행되는 등 과학자가 관료를 위해 존재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관의 간섭을 최대한 막고 정치와 인맥에 의한 연구비 배분이 아니라 연구할 의지가 있는 연구자가 연구할 수 있는 굳건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학기술계에 만연해 있는 관료중심주의에서 탈피해야만 한국의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과학입국'이 가능하다는 것이 공통된 주문이다.

◆"출연연도 변해야 한다"…연구원 스스로의 책임의식도

과학기술인들은 현재의 왜곡된 모습을 만든 정부와 정치권에 거침없는 쓴소리를 내는 동시에 과학기술인들이 보다 더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공계 기피 현상, 갈수록 성과에 내몰리는 연구 분위기 등은 외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부분도 있지만, 한국의 과학기술을 책임지고 있는 과학기술인 스스로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연, 지연 등에 얽혀 있는 과학기술계의 패거리 문화와 3년마다 수장을 바꾸는 현재의 출연연 원장 선출 제도, 연구부서 보다 행정부서 위주의 운영 방식, 비정규직 문제 등을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스스로 타개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밖에도 과학동네 종사자들은 현재의 한국 과학기술 현실과 정책에 대한 문제점,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수많은 대안을 제시했다. 특히 과학자들이 '동기 부여'는 없고, 수익성과 단기적 성과에만 내몰리는 현실을 묘사한 응답자의 글은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이 어디를 향하고,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상을 받기 위해서 과학자가 된 사람은 없습니다. 스스로의 동기부여가 가장 큽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과학, 음악, 미술, 시 등 모든 것이 목적한 바가 없어도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동물과 다른 차원에서 살게 해준 원동력입니다. '돈이 되는 것이냐'는 질문은 기업에서 사업 아이템을 놓고 하는 것입니다."
 

◆대덕넷-중앙일보 설문조사 주관식 답변(한국 과학기술 현실과 정책에 대한 대안)

1.전담부처 부재에 따른 장기 플랜 부족
2.장기적인 과학기술 정책 부재
3.과학기술분야는 단기적인 연구성과 보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차원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4.국가 R&D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시스템 재점검을 통한 합리적인 연구비 배분 필요 - 응용과 기초, 공공분야 연구개발중 응용분야에 집중투자는 필요하지만 적어도 기초, 공공분야에 대한 균형감 있는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함 - R&D 관련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너무 낮음.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공무원 교육시스템 강화와 함께 과학기술 전 분야에 걸친(너무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는) 외부 전문인력의 적극적인 확충이 절실함
5.기초.원천기술 개발과 융복합 기술개발을 병행하여 국민의 실생활에 직결될 수 있는 정책 실현이 중요
6.공무원수준의 연금제도
7.과도한 정부주도의 과학기술 정책 2. 주도를 과학기술자에게 돌려주어야 함
8.국민소득 증대에 따른 국민의 생활의 안정과 안전에 대한 희구가 중대되고 있음. 따라서 종래의 산업(경제)개발 중심적 연구개발 투자 못지않게 비산업분야(안정과 안전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함. 선진국의 예를 보면, 비산업분야 연구개발 투자가 70% 이상이나, 우리나라는 50%에도 못미치고 있는 상황임.
9.현실은 기초과학보다는 단시간 내에 성과를 내기 위한 개발 위주의 과학기술을 선호함. 이를 위해 PBS를 폐지하고 과학자가 사명감과 과학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함. 따라서 정부는 근시안적인 정책이 아니라 백년대계를 위한 과학정책을 수립하고 전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정권이 교체해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 
10.과기정책의 일관성 - 특히 출연(연) 원장 임기 3년 마다 엄청난 변화- 뒤집어 엎기
11.전책의 우선순위가 좀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뀌어야 하며, R & D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각분야의 전문인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12.기본적인 연구비가 확보되어야 하고 한 쪽으로만 몰리는 것을 방지해야함. 경제성이 없는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필요함
13.*과학 : 후진과 연결/확대재생산이 안 되고 있다. * 기술 : 산업체와 과학기술의 연계가 유연하지 않다. * 인력 : 젊은이들에게 권할 만큼 안정적이지 않다. * 대안 : 과학기술인력을 공무원으로 처우하고, 공무원을 과학기술인으로 처우해봐라. 기술혁신 속도가 빠른 반면에 장수명인 역설의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20% 천재들이 과학기술에 몰두하여 산업을 글로벌로 선도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14.현재 한국에서 출원되는 특허는 특허다운 특허가 없음. 특허의 가치가 있고 돈이 되는 특허는 없는 상태임. 특허를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돈이 많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특허출원시 출원에만 급급하지 말고 특허의 방어기능 및 기타 고유한 기능이 포함되는 특허다운 특허를 출원하게 될수 있도록 변리사들의 역할이 매우 큼
15.현재 과학기술 종사자들의 과학기술 정책 참여가 절실하다
16.실패의 결론 보다 원인 에대한 검증이 필요함.
17.최근 R&D정책은 상용화에 너무 집착하여 장기간 꾸준히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연구보다 원천기술은 해외의존하고 걷포장하는 형식의 연구로 전락하고 있음. 너무 지나친 연구비 규제로 일부로인해 다수가 피해보고, 밥값눈치보는 연구원의 현실은 빨리 없어져야함. 원천기술연구분야는 다수의 방법에 의해 결과가 나올수 있음에도 선행연구명분으로 대부분 기술개발이 차단되어 기술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으므로 원천기술부분은 해외기술동향과 선진기술 사례를 참조하여 부족하다면 체계적으로 새롭게 추진하여 기술 선도할수 있는 길을 만들수 있도록 제도개설 필요(중복성을 너무 강조하여 성공연구를 강조하다 보면 추가 기술 개발 접근이 불가능해 기술주도권을 해외에 빼앗기는 사례가 있음)
18.기관장 공모제의 불합리성 => 과학계의 정치 및 관료화 => 비본질적 업무 확산 => 과학적 성과 미비
19.정치와 별도로 장기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지속적인 과학정책 추진 절실
20.여유 있는 과학기술 정책
21.연구 진행을 위한 견제수단으로 심사를 하는 건 좋으나, 많은 행정 업무 때문에 의욕이 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고려하셔서 대안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22.정책이 너무 유행을 탄다는 느낌이 듭니다. 연구자들이 자기 전공 분야에서 깊이를 확보할 시간을 줘야하는데 연구비를 유행처럼 각 분야에 돌려 뿌리다 보니 연구자들이 철새들 처럼 따라 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정책부터 장기적인 관점에서 확립하고, 정권과 공무원의 교체 주기와는 상관없이 일관성 있는 집행이 필요합니다. 또한 최근 노벨상에 집착한 나머지 지나치게 많은 연구비를 특정 스타 연구자에게 지원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효성이 의문입니다. 그 엄청난 돈을 분배해서 기초과학 분야에 안정적으로 중소규모의 연구비를 장기간 지원하는 것이 국가 기초과학에 더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23.현재, 출연연(전자통신연구원)은 제가 생각하는 출연연의 본연 업무인 기초/기반 국가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한 일보다, 시장성에 얽매여 있다. 시장성이 없으면 연구과제를 따기가 매우 어렵다. 기업에서 선뜻 시작하기 어려운 모험적인 내용의 연구를 국가차원에서 해 주는 것이 출연연의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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