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서울성모병원서 서 IAEA사찰관 영결식 열려
참석자들 눈물로 환송 "짧은 생 마쳤지만 큰 흔적 남겨"

"그는 국제사회 피스메이커였습니다. 짧은 생을 마쳤지만 그 분 흔적은 우리에게 영원히 남을 것 입니다" 3일 오전 8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약 90여명의 인사들이 고(故) 서옥석 IAEA 사찰관 영결식을 위해 자리를 함께했다.

사람들의 기도 속에 그는 조용히 영면했다. 고인에 대한 묵념을 시작된 영결식은 약력보고와 추도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추도사에서 오규진 원자력통제과장은 "서옥석 사찰관은 이란 정부와 IAEA가 있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입장차이로 사망 후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하고 수일간 차가운 냉장시설에 있어야만 했다"며 가슴 아파했다.

이에 고인의 가족들과 그의 선후배들 역시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그는 "원자력의 평화를 위해 국제기구로 삶의 무대를 옮겼고 IAEA에서 15년간 근무하며 성실과 책임감으로 믿음과 사랑을 받았다"며 "핵무기 비확산을 위한 사찰업무는 지구촌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IAEA는 2005년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님은 진정한 수상자였다. 선배님의 온화한 미소를 기억하면서 명복을 간절히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예정에는 없었지만 허남 전 기술사협회회장이 서 사찰관에게 마지막 인삿말을 남겼다. 허 전회장은 "너무 슬프다. 그는 국제사회 피스메이커로 짧은 생을 마쳤지만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하늘에 편안하게 잠들어달라"고 말했다.

영결식이 끝난 후에도 그의 마지막 모습을 배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평소 천주교 신자였던 그를 위해 천주교 관계자들은 성가를 부르며 슬픔을 달래보기도 했다. 장례식장에는 교육과학기술부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LG화학 등 과학기술계 인사들의 화환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특히 서 사찰관이 생애 인연을 맺은 김대석 과우회 사무총장, 오규진 원자력안전위원회 과장, 이성규 KINS 부원장, 이승구 과우회 회장, 이헌규 KAIST 교수, 윤지완 외교통상부 1등서기관, 장상구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원장, 조청원 과학기술인공제회 이사장, 차상호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정책위원, 권오갑 한국나노기술원 이사장, 허남 하국동위원소협회 국제협력조정관 등 과학기술계인사들은 그의 마지막 길을 끝까지 지켰다.

차상호 원자력통제기술원 정책위원은 "서 사찰관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컸던 분으로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허물없이 도와주기도 했다. 동료로부터 신망을 많이 받은 분"이라며 그를 추억하기도 했다. 고인과 유족들은 장지를 위해 버스를 타고 경기도 용인 천주교공원묘지로 향했으며, 과학기술인 관계자들은 버스를 향한 묵념으로 그의 마지막 길을 따뜻하게 배웅했다.

서 사찰관은 과학기술처 원자력국에 근무한 원자력계 전문가. 90년대 초 남북 상호사찰을 대비해 과기처에 원자력통제과를 신설할 당시 창립멤머로 사찰과 검증을 담당했다. 1998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IAEA 사찰관으로 파견을 자처했다.

서 사찰관은 지난달 초 이란에 입국, 8일 오전 수도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250㎞ 떨어진 혼다브 지역에서 중수로를 사찰하러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고 서옥석 사찰관의 영결식이 3일 오전 8시에 열렸다. ⓒ2012 HelloDD.com

▲그를 위해 기도하는 유족들과 선후배들. ⓒ2012 HelloDD.com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보낸 화환. ⓒ2012 HelloDD.com

▲고 서옥석 사찰관의 선후배 동료들이 그의 마지막 모습을 배웅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찾았다.
ⓒ2012 HelloDD.com

▲오전 9시 장지를 향해 버스로 이동하고 있다. ⓒ2012 HelloDD.com

▲오전 9시. 그가 탄 버스가 장례식장을 떠났다. ⓒ2012 HelloDD.com

▲고 서옥석 사찰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선후배들 모습. ⓒ2012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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