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박사, 한국인 최초 '해양기술박람회 명예의 전당' 올라
석유 시추·생산 필수장비 해양라이저 설계 등에 응용

"Are you Dr. T. Y. Chung, Right?" 메일에 담긴 내용은 정중하면서도 황당했다. 어느 날 정태영 한국기계연구원 시스템다이나믹스 연구실 박사에게 본인 확인과 함께 당신이 발표한 논문이 OTC(Offshore Technology Conference) 명예의 전당 논문으로 선정이 됐다는 메일이 왔다.

 "무슨 소리인가 했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MIT에서 함께 수학한 김양한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축하한다고 해서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미국의 지도교수한테서 메일이 왔는데 제 메일주소를 물으며 제가 지도교수님과 함께 OTC에서 상을 받게 됐다고 하더라는 거예요.

그때 수상 사실이 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지요." 세계 최고 권위인 해양기술박람회(이하 OTC)는 정 박사가 25년 전 쓴 '비균일 유체 속에 놓인 유연 실린더의 유체동력학적 감쇠(Hydrodynamic Damping on Flexible Cylinders in Sheared Flow)'에 대한 연구 논문을 명예의 전당 논문(Hall of Fame Paper)으로 선정했다. 해저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의 채굴을 위해서는 해저의 매장지로부터 해상의 플랫폼을 연결하는 긴 파이프 관 형태의 라이저가 필요하다.

이 라이저는 조류의 흐름이 강해지면 진동이 발생하게 된다. 정 박사의 논문은 그 진동에 대한 감쇠모델링을 한 것으로, 현재 석유시추와 생산에 쓰이는 필수장비 중의 하나인 해양라이저의 설계 및 해석 등에 응용되고 있다. OTC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 기술 관련 박람회로, 지난 1969년 미국토목학회(ASCE) 주관으로 발족한 뒤 미국 휴스턴에서 매년 5월 초 개최돼왔다.

이 박람회를 통해 해양 구조물(offshore infrastructure)의 설계 및 건설과 관련해 현재까지 10000편이 넘는 논문이 발표됐다. 미국토목학회는 과거 박람회 개최 초기 발표됐던 논문 가운데 현행 기술의 핵심이 되고 있는 우수한 논문을 '명예의 전당 논문'으로 선정하고 있다.

한국인이 발표한 논문이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말 단순히 명예입니다. 상금도 없고, 부상도 없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새삼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고생했던 옛날 생각이 납니다."

▲정 박사가 당시 썼던 논문. ⓒ2012 HelloDD.com

MIT는 과학재단의 장학금으로 갈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논문을 쓸 수 있게 도움을 줬던 은사를 만났다. 정 박사는 "1970~80년대에는 석유 시추가 많아 미국에서는 해양 플랜트 분야가 각광받고 있었다“며 ”조선공학을 전공했지만 해양 플랜트가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해 접근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 박사의 당시 지도 교수였던 밴디버 교수는 연구 조교였던 정 박사에게 늘 너에게 보수를 주고 있으니 자기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사가 되려면 그 주제에서만큼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켰다.

정 박사는 "밴디버 교수의 지도 방식에 동감한다“며 "한국의 많은 교수님들도 그런 정신으로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환갑인 정 박사는 지금 중요한 것은 퇴직을 앞둔 과학자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그동안 여러 보직을 거쳐 일을 한 뒤 제자리로 돌아와 현재는 처음 연구소에 들어왔을 때 시작했던 연구인 진동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며 "함정의 진동 해석 및 계측 과제를 포함해서 지금 수행 중인 몇 가지 연구과제의 매듭을 잘 지어야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퇴직 후에는 여러가지 신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 논문으로 산업계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 수치로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니 너무나 뿌듯합니다. 논문을 쓰려면 이 정도는 써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말해 주고도 싶습니다. 농담이지만..." 평생을 연구에 매진해온 노장 과학자의 웃음소리가 여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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