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포항공대 통한 과학인재 육성 등 높이 평가

한국공업화의 주역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달 9일 호흡 곤란으로 흉막-전폐절제술을 받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회복되지 못했다.

그는 포항제철 건립시 모래바람속을 누빈 탓에 평소 각종 폐질환으로 힘들어했다고 지인들은 말한다. 빈소는 서울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옥자씨와 진아·유아·근아·경아·성빈씨 등 1남 4녀가 있다.

고(故) 박 명예회장은 포항의 모래땅 위에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을 세우고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포문을 연 인물로, 해외에서는 '한국의 철강왕' '한국의 카네기'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인 1927년에 경상남도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다.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내면서 조국해방과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1945년 일본 와세다 대학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으나 해방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와 국방경비대에 입대했다. 이때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이 있었다.

박 명예회장은 1963년 군 예편 후에는 경제인으로 변신해 1964년 대한중석(현 대구텍) 사장으로 임명됐다. 임명된지 1년만에 대한중석을 흑자기업으로 바꾸면서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행되던 시기 공업국가 건립에 사활을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은 40세의 박태준을 종합제철소 추진위원장으로 내정한다.

박 명예회장의 사람됨됨이를 알아본 박 전 대통령은 일명 '암행어사 마패'로 불리는 문서를 박 명예회장에게 주며 제철소 건립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돼줬다. 박 명예회장은 포항에 롬멜하우스를 짓고 새우잠을 자며 제철소 건립을 진두지휘 했다.

그는 '제철보국, 짧은인생 영원 조국에' 기치와 실패하면 바다에 빠져죽는다는 의미를 담은 '우향우' 각오 아래 1970년 제철소 착공식을 갖고 1973년 국내에 첫 쇳물을 출선하는데 성공시켰다. 그리고 10년만에 연 550만톤의 철강을 생산하는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직원들의 복지와 교육을 가장 중요시 한 그는 제철소 인근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세우고 임직원 자녀들과 지역의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제철장학회를 설립했다. 1985년 미국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을 방문한 박 명예회장은 숲속의 연구소같은 분위기에 놀라며 한국에도 연구중심대학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는 '교육보국'의 건학이념을 바탕으로 초대 총장 예정자인 김호길과 대학 부지를 조성했다. 이런 과정이 '세계적 연구중심대학'과 '소수정예의 이공계 인재양성'이란 건학목표로 문교부와 씨름끝에 1986년 포항공대를 개교한 배경이다.

포스텍은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듬해에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설립했다. 1991년 박 명예회장은 방사광가속기 건설을 위해 가속기 건설은 포항제철이 하고 운영비는 정부예산으로 하자고 과학기술처에 제안했고 이뤄냈다.

이는 국내 최초의 산학연 연구개발체제로 산업계 전반에 새로운 모델이 됐으며 포스코가 전세계 철강업계의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는 원동력이 됐다. 1993년 광양제철소 4기 설비 준공식이 열리면서 1968년 창업이래 25년만에 조강연산 2,100만 톤의 제철소 건설의 대역사를 마무리 했다.

박 명예회장은 이를 완성한 직후 박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지시를 완수했음을 알리는 보고서를 올렸다. 현재 포스코는 세계 4위의 철강업체로 지난해 기준 생산량이 3370만톤에 이른다. 박 명예회장은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경제 제1위원장에 취임한 것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32대 국무총리(2천년 1월~2천년 5월)를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 포스코에는 청암재단이 운영되고 있다. 박 회장이 회사 설립과 함께 세운 제철장학회가 포스코 청암재단으로 확대돼 아시아권을 대상으로 하는 권위있는 복지장학문화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 포스코는 박태준 명예회장의 업적을 기리고 포스코 창업 이념인 창의 존중, 인재 육성, 희생·봉사정신을 확산시키기 위해 포스코청암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과학기술계 현장에서도 고 박태준 회장의 별세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포항방사선가속기 건설로 고인과 인연을 맺었던 남궁원 포항공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는 고 박태준 회장은 "과학에 대해 가장 우선순위를 높이 두고 과학자들을 사기진작시켰다"고 설명했다.

남궁원 교수는 "과학자에 대해 박태준 회장은 포항제철 임원과 동등하게 대우해 줘 과학자들이 몸둘 바를 몰랐다"며 "그는 특히 포항가속기를 세울 때 결정적인 결단을 내렸고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과학자들을 지원했다"고 회상했다.

장인순 전 원자력연 소장은 "박 회장은 '우리나라 산업화 최고의 기수'다. 자동차 선박산업 우리나라 산업의 기반을 닦은 일등 공신"이라고 평가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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