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령 박사, 한국형 원전 개발 및 수출 관련 한 맺힌 절규
'웨스팅하우스 마피아'횡포로 수출 길 지장, 한전 등 변화 역설

이 땅의 이공계 사람들은 왜 일은 열심히 하고도 제대로 보상을 못 받는 것일까? 조선조의 위대한 발명가 장영실은 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말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이렇듯 기술자 천대의 역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난 달 29일 대전 원자력 연구원 앞 연수원내 우남홀에서는 원자력 관련 '역전의 용사'들이 모인 가운데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두권의 책 모두 기술개발 과정에 대한 자랑스런 회고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형 원전을 만든 과정과, 이의 수출 등을 둘러싸고 '어이없었던' 방해 세력들을 폭로하는 내용들도 있다. 전자는 김병구 박사의 'Nuclear Silk Road', 후자는 이병령 박사의 '무궁화 꽃을 꺽는 사람들'이다.

김 박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에 근무하면서 '한국형 원전이 있는가'라며 외국 전문가들이 의문을 표하는 것을 보고, 우리의 원자력 기술 발전사를 서술하기 위해 일부러 영문으로 펴냈다. 비슷한 시기에 이병령 박사는 한국형 원전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것이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인 데도, 일부 기술 매판 세력들이 우리의 기술력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서는 외국으로 수출을 못하도록 방해까지 한 현실에 비분강개 해 붓을 들었다.

두 권의 책 가운데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병령 박사의 책. 현재 엄존하고 있는 한국전력과 계열사인 한국수력원자력 회사를 실명으로 거론하며 '기술 매판'의 본거지라고 직접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형 원전을 갖고 있고, 우리가 중국 시장 등 외국에 수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이를 부인하고 수출을 방해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는 중앙부처와 공기업의 일부 인사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라면서, 핵심 기술을 이전 받지 못한 데다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웨스팅하우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이는 궤변이라고 일갈한다.
'그들'이 웨스팅하우스의 원천 기술이라고 주장한 냉각재펌프(RCP)와 계측제어시스템(MMIS)은 전자는 외국에서 수입하는 중간상 역할일 따름이고, 후자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현재의 디지털 시스템에는 맞지도 않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 박사는 "거짓말을 하면 나는 감옥 간다, 그 거대 공룡기업인 한전과 한수원을 상대로 어떻게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자신의 주장이 사실에 입각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는 "86년 웨스팅하우스에 연수 가서 한국형 원전을 만들겠다고 담판하고, 94년 북한에 만들어 주는 경수로를 한국형으로 하자고 주장한 이후 내 인생은 험로로 접어들었다"며 "국가적으로는 UAE에도 수출하게 되고, KEDO사업에 한국형이 채택되기도 했지만 본인은 연구소에서 잘리고, 낭인이 되었으며, 나이가 60을 넘겼음에도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라고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그는 이 기술매판 세력과의 싸움을 멈출 수 없어 책을 냈다며, 원자력계의 거대 공룡 한전과 한수원이 중국에의 원전 수출을 방해했음을 시인하고 국민에게 사죄한다면 이 싸움을 접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온힘을 다해 싸울 것이라고 다짐한다.

원자력계의 한 원로는 이와 관련해 "엽전이 무슨 원자력"이냐면서 원자력 연구를 폄하한 세력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들이 여전히 원자력계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에너지 자립을 위해서도 한전과 한수원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 백발의 원자력 자립의 주역들 모여 에너지 기술 자립 의지 재확인

이날 출판 기념회에는 1986년 원자력 설계 자립을 각오하고 만세삼창을 하며 떠났던 상당수의 원자력계 인사들이 참석해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오늘날의 성과를 가져온 과정을 회상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이 보였다. 86년 미국으로 떠날 당시 새까맣던 머리카락들은 이제 허옇게 색이 바랬고 기력은 쇠했지만 그래도 눈빛은 여전히 반짝였다. 특히 그 당시의 고통이 오늘날 한국 번영의 밑거름이 됐다는 자부심으로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있었다.

원자력 연구계의 대부로 여겨지는 한필순 전 소장은 "목숨을 건 애국심에, 불타는 노력이 있어 원자력 기술 자립이 가능했다"며 "무수히 많은 견제세력이 있었지만 원자력 기술 자립을 통한 국가와 민족의 생존권 확보란 역사적 목표를 가졌기에 해냈고, 함께한 동지들이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행사가 열린 장소는 우남홀.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미래를 내다보고 1959년 원자력 연구소를 만든 것을 기려서 이름 붙인 것이다. 역사를 보면 잊은 듯하면서도 기억되고, 잊혀진 듯하면서도 새롭게 반복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로는 홀대받았고, 때로는 핍박받아야 했던 과학자들과 그들이 남긴 업적이 긴 역사적 안목에서 이제나마 제대로 평가받을 때가 왔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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