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대 총장이 초대 이사장, 향후 영향력에 대한 거부감 급증
KAIST 수준의 지원 이뤄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정부 신뢰 오락가락"

한국해양연구원(원장 강정극)의 단독 법인 '한국해양과학기술원'으로의 전환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과의 통합 여부를 둘러싸고 골머리를 앓던 해양연이 이젠 정부가 내놓은 새로운 청사진을 그대로 수용할지, 거부해야 할지 양자택일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럼 당사자인 해양연 연구자들은 어떤 입장일까. 현재로서는 기대 반 우려 반인 듯하다. 정부는 29일 오전 해양과기원 설립과 관련해 설명회를 열고, 독립법인으로서의 해양과기원 설립에 대한 필요성을 피력했다.

기존 해양연의 해양과기원 확대 개편을 통해 ▲기관 고유 미션에 집중하도록 기관출연금의 예산 비중을 확대하고 ▲해양대 석·박사 과정의 젊은 우수인력을 R&D 수행에 활용하고 ▲학·연 협력 강화로 인한 시너지를 창출하며 ▲우수 연구원의 인센티브를 확충하는 등의 파격적 지원을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해양연으로서는 이같은 정부안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식의 입장을 표명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정부안을 29일에나 받아본 탓도 있지만, 아직까지 개괄적인 부분만이 오픈된 상황에서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통폐합의 그늘 역시 걷어내기 어려운 부분 중 하나다.

공공연구노동조합은 해양과기원의 이사회 이사장을 당연직 이사로 수정 합의했지만 여전히 지역사회 단독 대학교 총장을 당연직 이사로 포함했다며, 이사장으로 가는 포석을 깔아놓은 것은 향후 해양연과 해양대의 통폐합을 유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무시할 수 없다.

출연연 관계자는 "정부가 지원을 하겠다고 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건 없다. 다른 여타 출연연들과 함께 연구회에 속해 있는 게 좋은 건지, 단독법인으로 가는 게 나은 건지도 예측 불가능"이라며 "설명회 분위기 역시 '일단 해보자'는 식 아닌가. 그래서 더욱 불안할 수 밖에 없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연구노동조합은 해양과기원 설립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선 상태다. 노조는 "정치적 목적으로 진행된 정부안에 찬성할 수 없다"며 "해양 과학기술의 발전을 근간으로 놓고 생각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 해양대 총장이 초대 이사장? 향후 영향력에 대한 거부감 급증

정부안에 따르면 해양과기원의 초대 이사장은 해양대 총장이 맡게 된다. 정부의 입장은 학·연 협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겸직제도 도입 등 해양대 차원의 제도 마련과 적극적인 참여를 장려하고자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하다. 해양대 총장이 이사장이 될 경우, 이사장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게 될 지에 대한 부분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 정부가 내놓은 안에서는 해양분야 전문가 등으로 독립 이사회를 구성하고 해양과기원을 집중 지원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사장이 해양대 총장일 경우 지원은 자연히 해양대 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해양과기원장과 이사장의 역할을 명확히 분리하고 해양과기원의 독립적 운영을 법률에 명시한다는 내용 역시 논쟁의 여지가 있다. 향후 해양과기원이 설립되면 예산과 결산, 사업계획 등을 이사회에서 심의하고, 해양과기원장은 업무와 직원 임명 등을 총괄하게 된다.

정부와 이사회에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부여해 준다고는 하지만, 해양연 직원들 입장에서는 또 한 명의 시어머니가 생길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 KAIST와 광주과기원 수준에 걸맞는 지원이 이뤄질 것인가도 의문

교과부와 국토해양부가 지원을 약속한다지만, 과연 KAIST나 광주과기원 수준에 걸맞는 지원이 이뤄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해양과기원 설립시 안정적 인건비를 48%에서 75%로 늘리고, 기관 고유임무 수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묶음연구예산 지원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해양 분야 강점기관 간 협력 강화로 연구개발 저변확대 및 역량을 강화하고, R&D 실용화센터를 설치해 기초·원천기술의 실용화와 상용화 인프라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핑크빛 미래가 약속돼 있는 듯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렇게 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는 정부가 내건 조건들 속에서도 담겨 있다. 단적인 예로 우수연구자에 대한 정년 연장 부분이다.

현 KAIST나 광주과기원은 65세로 정년 제도가 정착돼 있다. 그러나 이번 안에서는 선별적으로 정년이 환원된다. 해양연 관계자는 "우수연구자에 대한 정년 연장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선별하다보면 내부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며 "더욱이 문제는 그게 그대로 될지 어떨지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희망하기로는 전 직원의 정년 연장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해양과기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다면 지원 수준도 연관 기관들과 같게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해양대와의 협력을 법제화한다? 다른 기관과의 협력 위축 우려

향후 해양과기원은 해양대와의 겸직제도를 통해 대학원 기능을 강화하고 활발한 인력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게 된다. 이를 통해 해양과기원 연구원들은 강의와 논문지도 등의 역할 강화로 사기를 고양시키고, 해양대 교원들은 해양과기원의 R&D 역량을 활용해 대학원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겸직제도를 법제화해 젊은 우수인력과 R&D 역량을 결합해 학·연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다. 우선 법제화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해양대와의 협력을 법제화 해놓으면 다른 대학이나 연구기관과의 협력이 위축될 수 있다.

해양 분야의 R&D가 해양대와의 관계로만 한정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가야 한다. 물론 지리적인 요소를 감안해 협력이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제도적인 측면에서 협력 관계를 묶어 놓는다면 향후 골머리를 썩게 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해양연은 파트너에 아무런 제약없이 국내외적으로 협력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실제로 연구 파트에서도 협력 연구에서의 제약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교육과 연구 기능에 대한 혼재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은 상황이다.

교육 기능을 강화하게 되면 기존의 연구기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상황때문에 해양연의 갑작스러운 변화보다는 해양과기원으로의 변화 과정에서 우수한 인력 확충과 연구비 지원, 기본 시설에 대한 인프가 구축 등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게 연구원들의 바람이다.

해양과기원의 교육 기능 강화는 부산지역의 유수 대학에서도 반대하는 사항이다. 일단 해양과기원의 대학원 기능은 UST에만 국한될 예정이다. 현재 UST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대학원 제도를 유지하고, 장차 점진적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 몇 십년간 구축해왔던 브랜드가 없어진다는 데에 대한 아쉬움

지난 40년간 국내 해양과학기술을 주도해 온 전문연구기관으로서의 브랜드가 사라진다는 데에 대한 아쉬움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도 연구 성과와 역량을 인정받아 이름 자체가 브랜드화 된 마당에 기존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않은 도전이라는 것.

이윤호 해양연 연구전략본부장은 "해양연이 우리나라에서 해양과학기술에서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대학과 기업들과의 협력 연구에서도 중심에 서 있었다"며 "국제적 위상 역시 해양연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제는 바꿔야 한다니 아쉬움이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앞으로도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도 많다. 해양과기원이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하는 한편 다른 걱정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는 "기대반 우려반이다. 그래도 큰 방향으로 보면 확대 개편이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도 교수 정원이 있는데 해양연 교수 겸직제를 도입하면서 구조조정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 외에도 해양연과 해양대의 일치되지 않는 연구부분 등에 대한 각 기관의 수용능력 확대 등 풀어야할 문제가 많을 것"이라며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 학과·연구원 평성 등이 제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각계반응] "취지는 나쁘지 않으나 시간 가지고 구체적 그림을 그려야"

해양연 확대개편을 추진과 관련해 해양대 기획평가과의 J관계자는 "확대 개편추진 취지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학은 교육의 기능을 하되 연구원은 연구 기능을 하는 것에 대한 구분은 확실히 지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도 교수 정원이 있는데 해양연 교수 겸직제를 도입하면서 구조조정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 외에도 해양연과 해양대의 일치되지 않는 연구부분 등에 대한 각 기관의 수용능력 확대 등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을 것"이라며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 학과·연구원 편성 등이 제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양대의 E 교수는 "공동으로 연구인력을 배출하는 것은 좋으나 광주과학기술원과 같이 타지역 과기원처럼 학위과정을 따로 둘까 우려된다"며 "학위과정을 공동으로 해야지만 찬성하겠다는 것이 교수들의 전반적 의견"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겸직제 도입에 따른 예산충당은 어느 부처가 해 줄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며 "대선을 앞두고 있어 구조조정 관점에서 성과를 내려는게 아닌지 걱정된다. 내일 대학교수들과 모여 의견을 나누고 내부 방향을 잡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기철 청와대 과학기술 비서관은 "해양연을 해양과학기술원으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교과부가 추진 중이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이고를 떠나 지금은 방안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타 출연연과 관련해서도 확대 개편 움직임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 강소형 연구소로 출연연을 추진하는 것만 보고 있는 상태"라고 말을 아꼈다.

임요업 교과부 원천연구과장은 "어제 설명회는 이런 안이 어떻겠냐고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로 모든 기관이 만족할 수 있는 안을 만들기 위해 2차 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그러나 그룹별로 할지 설명회를 할지는 더 생각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들의 의견수렴은 9월까지 진행해 의장실에 전달할 예정으로 우리가 제시한 기본 방향에 대해 대부분 찬성이었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이면 시간 안에 가능하다고 본다"며 "겸직제 관련해서는 해양연 우수연구원 선정 기준을 마련해 국립대 교수 수준의 정년으로 연장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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