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대와 '해양 KAIST' 통합 설립안 교과부-국토부 합의 끝
이 장관 "출연연, 대학과 실질적인 협력 필요"

한국해양연구원(원장 강정극)과 한국해양대학교(총장 오거돈)의 통합이 곧 실현될 조짐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정혁)과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통합 이슈도 다시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는 해양연을 국토해양부(장관 권도엽) 산하 연구기관으로 이전하고, 한국해양대학교와 통합해 단독 법인으로 '해양KAIST'를 설립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주호 장관은 지난 25일 가진 교과부 산하 출연연 기관장 간담회에서 출연연의 융합과 개방·소통을 화두로 던지며, 해양연의 지방 이전이 시너지 효과를 보려면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으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해양연이 부산으로 이전함과 동시에 단순하게 건물만 새로 짓고 이전하는 게 아니라, 대학과의 실질적인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장관은 이날 모두 발언을 통해 "출연연과 대학의 연계도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벽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협력관계가 형성됐으면 한다"며 출연연과 대학과의 연계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출연연이 해외 우수 연구원도 더 과감하게 영입해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며 "출연연을 지금보다 훨씬 더 개방하는 노력을 해야하며 교과부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출연연-대학 통합 반대 여론을 의식한듯 "출연연의 변화에 대해 피해의식과 막연한 두려움 같은게 있는 것 같다"며 "워낙 역대 정권에서 추진한 출연연의 변화가 불행하게도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가 나와 연구원의 자율적인 의사를 존중하기 보다는 톱다운 방식으로 추진하다보니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나 피해의식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정극 해양연 원장은 해양KAIST추진과 관련 "아직 이야기만 나온 상태이고 공식적으로 문건이 넘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고 평가는 못할 것 같다"며 "정확한 안이 나오면 내부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직접적인 논평을 피했다.

강 원장은 그러나 "두 부처 장관이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려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적극적으로 협의를 해왔던 모양"이라며 "부정적인 면에서만 바라볼 게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해양과학기술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와 정책을 가지고 새출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또한 이 장관은 이번 간담회를 통해 전례에 없던 장관-기관장의 정례모임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교과부는 해양연과 해양대학이 해양과학기술원으로 통합될 경우 해양과학기술원 교수(해양연 겸임교수)들의 정년을 65세까지 보장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해양연 연구발전협의회(회장 이희일)는 지난 24일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설립 법안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 "최근 교과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설립 법안'은 해양연을 일개 대학에 부속시키려는 의도가 명백함으로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생명연-KAIST 통합 재도전?

해양연과 해양대학의 통합이 확실시되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곳이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정혁)과 KAIST(한국과학기술원·총장 서남표)다. 해양과기원 설립 이야기는 3년 전부터 통합설에 시달려왔던 양 기관에 불안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는 상황이다. 통합 반대를 적극적으로 외치고 있는 생명연의 경우 일단 관망 상태다.

생명연 내부 관계자는 "계속 통합 반대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의견을 전했다"며 "그러나 교과부에서 일방적으로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전 계획에서 발전된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도 장관에게 통합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도 상황이 이렇다"며 "해양연 통합이 확실시 돼서 일단 우리도 굳게 마음은 먹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대학과 출연연의 발전 방향에 대해 꾸준하게 논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생명연 노조에서 진행한 '생명연-KAIST 통합' 관련 설문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 180명 중 2명만이 찬성했으며, 3명은 기권한 것으로 나타났다.

◆ 과학기술계 부정적 반응 보여…"명분과 실리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이주호 장관은 25일 원자력연에서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2011 HelloDD.com

출연연과 대학 통합 이슈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반응은 비관적이다. 해양연 J 박사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 식의 이기주의로 비춰질까 두렵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연은 국가과학기술 정책을 수행하는 국책연구기관이다. 지난 40여년간 세계적으로도 연구성과와 역량을 인정받고 있고, 해양연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고 있는데, 이 부분을 다 무시하겠다는 처사인 듯해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또 한 과학자는 "이미 출연연 개편이 진행되고 있다. 강소형 연구소로의 전환을 통해 단계적으로 소프트웨어의 변화가 추진될 계획인데, 왜 통합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연구 현장이 불안정해 연구에 몰입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무엇이 먼저 선행돼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통합 재추진에 대한 명분과 실리, 철학, 의견 수렴 등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는 의견들도 적지 않았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도대체 관계자들의 의사를 제외하고 추진하는 통합이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평소 아무런 대화가 없다가 이런 소식이 전해지면 가슴이 철렁 철렁 내려앉을 뿐이다"라며 "정부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위해 진행하는 일이라면 투명하게 실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일을 너무 밀실에서 진행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보여주기식 행정의 말로라는 지적도 많다. 출연연에 재직 중인 한 연구원은 "정부가 국가예산 절감과 국민들을 위해 해야 할 우선 정책은 국가 미션을 수행 중인 출연연과 대학의 통합이 아니라 과도하게 많은 대학들의 구조조정"이라며 "수없이 낭비되고 있는 대학지원 각종 프로그램의 구조조정을 통한 예산집행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또 다른 과학자는 "대학 자체의 구조조정의 시급함을 연구원과 연계시키려는 의도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인 문제점을 파악해야 한다. 대학은 대학대로, 출연연은 출연연대로 세계화하는 방안을 정책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출연연 한 기관장은 "이 장관이 소신있게 밀어붙일 경우 통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 출연연의 고질병이었던 정년이 보장되게 된다. 또한 대학과의 융합연구 활성화로 미래 해양과학기술의 첨병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다. 출연연에 새로운 방향성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고 의견을 표했다.

P 연구원의 K 박사는 "해양연에서도 국토부로 가는 것에는 별로 반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양연의 경우 R&D 과제가 교과부보다 국토부가 더 많다"며 "통합 부분이 걸리긴 하지만, 상위 부처와 집터를 동시에 이전하는 해양연으로서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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