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병곤 지질자원연 박사, 자연사면 산사태 조기 경보시스템 부재 지적
"피해 줄이려면 복구비용 확보보다 사전예방 비용 확보해야"

 

"뉴스를 보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봉우리를 채 피지도 못한 대학생들이 자연재해로 인해 스러져갔다는 것이 말이죠. 춘천에는 내일 가보려고 합니다. 그 지역의 정확한 지질 조건들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거든요. 인재(人災)라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인위적 훼손이 없다면 인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명확한 규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27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물에 잠겼다. 전국적으로도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가 잇따랐다. 그 중에서도 산사태는 최악의 수재(水災)였다. 새벽부터 시작된 집중 호우는 곳곳에 산사태를 유발시켰고, 이로 인해 9명의 사망자(27일 오후 5시 기준)가 발생하고 말았다.

산사태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채병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재해연구실장은 "방재청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사태로 인한 사망자의 연평균 85%가 자연사면(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산)으로 인해 발생한다.

보통 일반적으로 도로변에서 발생하는 절치사면 산사태로 인명피해가 많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자연사면에서 발생하는 산사태가 더 큰 인명피해를 준다"고 설명했다. 최 박사는 춘천의 경우 시골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더욱 안타깝다고 말한다.

"실제로 산사태는 넓은 지역의 산에서 많이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지점에서 발생하는지를 찾아내 막는 것은 어렵다. 게다가 우리나라 시골의 가옥들을 살펴보면 대개 배산임수 형태로 산에 붙어 집을 지어놓은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피해를 많이 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까지 자연사면에서 일어나는 산사태에 대한 대비책이 미비한 상태다. 이는 우리나라 국토개발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채 박사는 "국토개발을 진행할 당시, 도로나 철도같은 것으로 사면을 개설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사면에 대해서는 법이 만들어져 법에 따라 계측 시설을 구축해야만 했다.

그러나 자연사면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해야 하는지가 애매했다"며 "연구 목적으로 몇개 지역에 구축된 것 외에는 자연사면에 대한 계측 시설이나 조기 경보 시스템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자연사면에서 일어나는 산사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때가 불과 5년 전인 2006년부터였다.

그때부터 자연사면으로 인한 산사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부터 관심을 갖고 다양한 대책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채 박사는 "2007년에 '급경사지 재해 예방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자연사면을 포함한 재해에 대한 대책을 법으로 묶어 놓은 것인데, 아직까지는 어느 곳의 사면이 위험한지를 파악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산사태의 주요 원인은 집중 호우다. 때문에 강우에 대한 사전 분석은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다. 강우량이 많아질 경우에 대비를 미리 해야 조금이라도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채 박사의 지적이다. 채 박사는 "모든 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다 막을 순 없다.

최대한 인명 피해를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지점을 미리 예측해 지도를 만든다거나, 빗물이 흙속으로 들어가는 상태들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계측 장비들을 설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분석 자료들을 통해 주민들을 사전에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조기 경보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도를 보면서 설명하고 있는 채병곤 박사. ⓒ2011 HelloDD.com
하지만 시스템 구축도 사실 복잡하기 짝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설명에 따르면 각 지역의 사면을 계측한 지도들을 구축하기 전에 산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산지를 선별해야 한다. 산에 따라 지질학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장비를 구비해 놔야 하는 점도 난점에 속한다.

제대로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선 최소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것 역시 예산이 확보돼야만 한다. 채 박사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시간으로 최소 2년을 예상한다. 서두르기 보다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대피다. 앞으로 250mm의 강우가 더 쏟아진다고 한다. 집중 호우가 내리면 산지라던지 계곡에 있는 분들은 미리 대피해야 한다"며 "또한 집주변에 사면이 있으면 주시해야 한다.

땅이 갈라져 있다던지 나무가 쓰러진다던지 흙탕물이 쏟아져 나오면 바로 대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채 박사는 "사후약방문 격이지만 그래도 이번을 기회로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의 경우 재난재해에 대한 예산이 확보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때에 따라서 바뀐다. 일정한 예산의 수준을 유지해야 대비도 할 수 있다. 복구비용을 확보하는 게 아니라 사전예방 비용을 확보해야 더 큰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