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 읽기]

끝없는 탐구열정으로 인간은 신비한 자연을 한 부분씩 과학의 영역으로 옮겨놓고 있지만 우리의 이해를 완강히 거부해온 영역도 있다. 생명의 영역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크레이그 벤터(Craig Venter)가 '네이처'에 실은 논문을 보면 생명도 그 막강한 마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듯하다. 과거 인간의 생명 탐구 목표는 생명의 본성에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 재조합 DNA 기술의 등장, 1990년대 체세포 복제의 성공, 2000년대 인간 유전체 지도의 완성 등 생명공학의 발전은 우리가 생명을 조작하고, 나아가서 생명의 일부분을 모방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다. 벤터 등이 이룬 합성생물학 분야에서의 최근 성과는 생명 조작의 기대를 현실화시켰으며, 생명 창조의 희망(?)을 만들어내고 있다.

합성생물학 연구 동향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은 말 그대로 생명체의 구성 요소 혹은 생명체를 합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생물학적 연구 분야다. 자연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구성요소들을 재설계하고 재구성해 자연 속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학적 구성요소들이나 생명체를 창조하는 것이 목표다.

합성생물학은 공학적 처리(engineering)를 감행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생물학 영역들과 구분된다. 단지 개념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현재 합성생물학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이 신생 학문을 이해하는데 좀더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스탠포드대학 교수이며 바이오브릭스재단(Biobricks Foundation)의 창시자인 드류 앤디(Drew Andy)는 DNA와 여타 분자들로부터 생명의 구성 요소인 '바이오브릭스(생명의 벽돌)'를 창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벤터연구소(J. Craig Venter Institute: JCVI)라는 생명공학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크레이그 벤터(Craig Venter)는 최소 유전체(minimal genome)를 개발하고 있다. 최소 유전체란 박테리아 개체 하나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유전적 재료만을 함유한 유전체다.

이는 일종의 생명의 거푸집이며, 여기에 살을 붙이면 생명체가 탄생된다. 그 살은 드류 앤디의 생명의 벽돌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벤터는 한 종의 박테리아 유전체를 다른 종의 박테리아로 이식하는 작업에 성공하였으며, 한 박테리아의 유전체 사본을 만드는 작업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합성된 유전체 사본을 실제 세포 속에 집어넣어서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만일 이 작업이 성공한다면 하나의 기본 유기체로부터 다양한 물질을 생산해 내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하버드대학교 분자유전학자인 조지 처치(George Church)는 이른바 원세포(protocell)라는 인공세포를 합성하려고 한다. 원세포는 간단한 무기물이나 유기물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조립되는 것으로 마이크로 단위의 자기조직화 능력이 있는 진화하는 유기체이다.

원세포는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어서 박테리아 같은 단세포 유기체보다 더 단순하다. 스틴 라스무센(Steen Rasmussen)은 DNA 대신 완전히 인공적인 합성 뉴클레오티드인 PNA(Peptide Nucleic Acid)를 사용하여 원세포를 만들고 있다. 제이 키슬링(Jay Keasling)은 생체분자, 현재로서는 박테리아를 합성하는 연구에 초점을 두고 있다.

키슬링은 말라리아 치료 약물인 알테미신(artemisin)의 전구체인 알테미시닌(artemisinin)을 생산해내는 박테리아를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그는 살충제를 분해하는 박테리아를 개발하고 있으며,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박테리아 또한 연구하고 있다.

이처럼 합성생물학은 생명에 대한 공학적 접근을 통해 새로운 생물 구성요소를 설계하고 재구성하거나, 자연에서 발견되는 기존의 생물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방식으로 여러 가지 이득을 얻으려 한다.

이런 연구는 생명과 진화에 대한 이해 증진에 기여할 것이 분명하며, 과거에 불가능하거 진행하기 어려웠던 연구를 가능하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특히 합성생물학은 의료 약물은 물론 바이오연료 등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을 좀더 용이하게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장 직접적인 이득을 약속한다.

◆바이오테러 혹은 바이오해커

 

▲합성생물학의 잠재적 위험을 경고하는
애니메이션. ECT그룹 사이트에 게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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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생물학의 성공은 막대한 이득을 약속하지만, 인류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킬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2004년에 미국에서 합성생물학에 대한 국제학술대회가 처음 개최된 이후, 합성생물학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그것에 대한 윤리적 관심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합성생물학이 가져올 이득에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큰 해악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악용의 우려는 치명적인 생물무기 개발에 이용되는 것이다. 특히 테러 집단이 생물무기로 치명적 바이러스 등을 합성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 수준에서 생물무기 개발에 합성생물학의 기술을 활용할 수도 있다. 물론 방어가 목적이겠지만, 사실 방어와 공격 사이의 구분은 생각만큼 그렇게 분명하지는 않다. 합성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개발된 생물무기는 인류의 커다란 위험에 노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사실 생물테러보다 더 실현 가능성이 큰 위험으로 평가되는 것은 터커(J. B. Tucker)와 질린카스(R. a. Zilinkas)가 말한 고독한 연구자(lone operator)나 바이오해커(biohacker)의 위험이다. 고독한 연구자는 고도로 훈련된 합성생물학 전문가로서 특정인 혹은 특정 단체에 원한을 품은 자를 의미한다.

그가 아무도 모르게 합성생명체를 만들어내서 복수에 활용할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 있다. 바이오해커는 컴퓨터 해커와 마찬가지로 순전히 호기심에서 혹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합성생명체를 만들고 유포시키는 사람을 말한다.

합성생명체를 만드는 일이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드는 매우 난해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충분히 상상 가능한 위험들이다.

◆미국 생명윤리자문위원회 보고서와 ETC 공개서한

지난해 12월 미국의 대통령생명윤리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원회)는 합성생물학의 기술적, 윤리적 함의에 관해 6개월 간의 집중적 논의 후 보고서를 작성해 공표했다. '새로운 방향: 합성생물학과 신생기술의 윤리'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를 통해 자문위원회는 합성생물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을 확인했다.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도 인지하였지만 연방정부 차원의 추가적 규제나 모라토리움을 지지할 이유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론내렸다. 합성생물학은 연구하는 다양한 연구자 혹은 단체들과의 대화를 통해 소통과 협력의 길을 여는 한편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는 방식이 합성생물학 분야의 발전을 증진시켜 혜택을 극대화하고 잠재된 위험 요인을 제거할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하였다.

 

▲미국대통령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합성생물학과 관련해 채택한 보고서.
ⓒ2011 HelloDD.com
자문위원회 위원장인 거트먼(Amy Gutmann)은 인터뷰를 통해 이 방식은 과학이 제멋대로 돌진하도록 내버려두는 한 극단적이고 잠재적인 위험이라며 과학연구 자체를 중단시키기 위한 방안은 '중용'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화적 및 환경적 다양성과 인권의 보존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결성된 국제적 시민모임인 ETC 그룹은 즉각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ETC 그룹은 거트먼 위원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보고서가 합성생물학의 위험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그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보고서는 첫째로 사전예방 원칙을 무시했으며, 둘째로 합성생물학이 환경에 미칠 위험에 대해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으며, 셋째로 환경 안전성을 보장하는 방안으로 오로지 '자살 유전자' 기술에만 의존하고 있으며, 넷째로 실질적인 규제와 감독의 의미가 없는 '자율 규제'만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공개서한에는 22개국 58개 단체가 서명했다. 자문위원회의 보고서가 거트먼 위원장의 표현대로 '중용의 길'을 채택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의 재생이나 소아마비 바이러스의 합성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합성생물학의 위력은 결코 낮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와 유사한 정도의 잠재적 위험을 함축한 기술들 가운데 합성생물학 만큼 접근이 용이한 분야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거트먼이 파악한 대로 특정 연구 단체의 관리를 받지 않으면서 독자적으로 합성생물학은 연구하는 자가연구(DIY) 집단이 2000명 규모에 이른다. ETC 그룹도 지적하고 있듯이,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이루어지는 자가연구의 위험은 측정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소통을 통한 자율규제만을 외치고 있는 자문위원회의 보고서는 핵 기술, 우주항공 기술, 컴퓨터 기술 등에서 미국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태도와 사뭇 다르지 않은가 하는 의문도 든다.

국내에서는 합성생물학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자가 아직은 많은 것 같지 않지만 국제적인 합성생물학 경연대회(iGEM)의 참가 및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머지 않아 활발한 연구 분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합성생물학의 사회적, 윤리적 함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Erik Parens, Josephine Johnston, & Jacob Moses, Ethical issues in synthetic biology: An overview of the debates, 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2009. -J. B. Tucker & R. A. Zilinkas, "The promise and peril of synthetic biology", The Atlantis News, spring 2006. -S. Miller & M. Selgelid, "Ethics and philosophical consideration of the dual use dilemma in the biological sciences", Science and Engineering Ethics, vol. 13, (2007), pp.524-527 참조. -Presidential Commission for the Study of Bioethical Issues, New Directions: The Ethics of Synthetic Biology and Emerging Technologies, 2010. -'합성생물 연구 필요, 위험감독 강화' - 오바마 위원회;(오철우), 사이언스온http://scienceon.hani.co.kr/archives/13111

▲이상헌 교수 ⓒ2011 HelloDD.com
이상헌 교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전담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연구분야는 신생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논의,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기술의 대융합(공저)' '대학생을 위한 과학글쓰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읽기'를 타이틀로 신생과학기술들을 윤리적 관점에서 되새겨 보며 인간의 행복 증진을 위해 최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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