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의 한의학 이야기]

요즘 의사 형제가 나오는 드라마에서 한약 먹는 얘기가 눈길을 끈다. 의사도 한약을 먹느냐는 물음에 한의학의 좋은 점은 취해야 한다는 대답이 대사로 오가고 있었다. 아직은 초기 단계인 침을 이용한 한방 성형도 거론되어 반갑기도 하고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한의학에 대한 국민적 감정은 '좋기는 한데 확실히 신뢰는 가지 않는' 정도가 아닐까? 양방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으면 신뢰가 간다. 하지만 한의원에서 어떤 진단을 받으면 반신반의하면서 치료 여부를 선택하게 되고 나중에 치료가 잘 된 후에야 그 진단을 믿게 되는 것같다.

이것은 서양의학이 여러 진단기기와 검사장비를 이용해서 객관적 진단기준으로 보여주는 반면 한의학은 한의사의 주관적 진단에 의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관적 진단이기에 한의사에 따라 서로 다른 진단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의학 과학화의 선결 과제는 진단 객관화다. 한의사의 오감을 이용한 진단을 오감형 센서로 객관화시키는 작업이다. 시각, 청각, 촉각 등 사람의 감각을 높은 정밀도로 구현할 수 있는 센서들이 개발된 지금 시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당대에 가장 과학적 태도로 전혀 새로운 체계의 의서를 저술했던 허준과 이제마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도 이 일부터 착수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런 정서도 있다. '맥진은 신비한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걸 모두 기기 측정으로 바꾸어버리면 한의사는 무엇을 하는가?' 맥진의 신비감이 무너지는데 대한 거부감이다.

사람이 인식하기 어려운 어떤 영역이 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의미의 신비주의라면 옳다. 하지만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쓰는 의미처럼 ‘적당히 감추어 호기심을 유발하는 의미’의 신비주의라면 의학에서는 마땅히 버려야 하지 않을까? 맥진은 참으로 정밀한 감각과 판단이 필요한 진단기법이라 예로부터 구전심수로 전수되어 왔다. '

말로 전하지만 마음으로 받는다' 스승의 깊은 경지를 마음으로 이해하는 제자가 아니면 주고받기 어려운 경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정밀함이 객관적 방법으로 표현되고 논문으로 발표되면 맥진의 정묘함이 손상되는 것일까? 사실 한의학 교육이 과거 도제식에서 대학의 대중교육으로 전환되면서 구전심수 방식은 불가능해졌다. 현대 교육은 개인적으로 은밀히 전하는 사적 전수법이 아니라 교과서를 통한 공적 전수법으로 이루어진다.

현대 학문은 몇 사람이 모여 고담준론을 펼치는 닫힌 방식이 아니라, 논문 출판을 퉁해 누구나 공유하고 검증할 수 있는 열린 방식이다. 후자가 전자보다 경쟁력이 있음은 근대에 동서양의 문화수준이 역전된 역사가 입증하는 바이다.

물론 전통 한의학 속의 정묘함을 당장 모두 객관화하고 논문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미제로 남겨지는 그 부분에 대한 존중심을 지키자는 신비주의라면 기꺼이 동의한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한방진단기기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객관화시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자꾸 넓혀 나감으로써 신비한 경지가 점차 인간의 것이 되어갈 것이다.

별들의 움직임을 소수의 천문학자만 알던 신비주의 시대로부터 누구나 별자리와 세차운동을 알 수 있도록 진화시킨 천문학처럼. 그런데 수천년만에 처음으로 시도하는 이 작업은 서양의 학문을 배워 모방하는데서 출발한 여느 학문 분야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나가야만 한다.

아무런 객관적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객관화된 자료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과학적 연구를 하고 표준화를 해나가야 하는 과정은 사막에서 우물파기처럼 막막한 작업이다. 현대 천문학을 따라잡기 위해 우리는 망원경을 수입하고, 정밀한 현대 수학도 배워왔다.

한의학의 과학적 연구란 현대 생물학, 현대 공학을 그냥 가져다 적용하면 되는 일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망원경도 새로 만들고 수학도 우리가 스스로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자니 초기단계인 지금의 연구 수준이 한심해 보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 대해 우리나라 과학계의 이해가 있으면 좋겠다. 신비주의는 그냥 벗겨지지 않는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지구가 돈다는 명확한 사실 하나를 인정하는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듯이, 맥진이 무엇인지 정의하는데만도 갈 길이 아주 멀지도 모르겠다.

▲김종열 본부장 ⓒ2011 HelloDD.com
김종열 한국한의학연구원 체질의학연구본부장은 공학을 공부하고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연구하던 중 사상의학에 매료돼, 다시 한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8년간 임상을 통해 연구자료를 축적한 후,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이제마프로젝트를 통해 사상의학의 과학적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김 본부장은 한의학의 과거, 현재 및 미래와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정책과 연구과제에 대해 알기 쉽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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