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 읽기]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인간 배아를 연구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일명 생명윤리법)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생명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남모 씨 부부가 낸 헌법소원에 대해 각하 판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모체에 착상되거나 원시선이 나타나지 않은 초기 배아는 인간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체외수정에 사용하고 남은 잉여 배아의 보존 연한을 5년으로 하고 그 이후의 배아에 대해서는 연구목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경우 폐기하도록 규정한 생명윤리법 조항 역시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올해 바이오앤디오스텍에게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제의 임상시험을 국내 최초로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스타가르트병(눈의 망막색소상피세포가 파괴되는 희귀성 유전질환으로, 이 질환이 있는 사람은 50퍼센트 이상이 50세 이전에 완전 실명에 이르며, 적절한 치료법이 없다)이라는 희귀 안질환에 대한 치료제의 인간 대상 임상시험을 승인한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는 생명공학에서 가장 각광받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는 약 210종이 있다. 성숙한 세포, 즉 체세포는 아무리 분열해도 다른 세포가 되지 않는 특화된 세포다.

반면에 줄기세포는 아직 완전히 분화되지 않은 세포이며, 따라서 분열을 통해 다양한 체세포로 발전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줄기세포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면 인체 조직 및 장기 손상, 각종 퇴행성 질환 등 난치병에 대한 획기적인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반포의 내세포괴에서 추출한 배아 줄기세포는
인체의  어떤 세로로도 분화될 수 있는 만능세포다.
ⓒ2011 HelloDD.com

또 다른 측면에서도 줄기세포 연구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윤리적, 종교적, 상식적 거부감 때문이다.

남모 씨 부부가 생명윤리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것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가 "배아의 생명은 배아에게 고유한 것이므로 배아를 생성하게 된 부모도 배아의 생명을 박탈할 권리가 없다"고 항변한 것 등은 이런 거부감을 보여준다.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1998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의 제임스 톰슨(James Thomson) 교수 연구진에 의해 처음 배양에 성공된 이후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고 논란도 불러왔다.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한 두 가지 쟁점은 윤리적인 면과 기술적 부분이다.

줄기세포 연구의 역사가 짧고, 줄기세포의 비밀 대부분이 여전히 인간에게 이해되지 않고 있어 줄기세포 치료법의 효과와 안전성 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이도 적지 않다. 이 글의 초점은 윤리적인 데 있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심각한 윤리적 부담을 야기한다.

가장 민감한 사안은 배아의 윤리적 지위에 관한 것이다. 또 하나는 난세포(난자)의 소모에 관한 것이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불가피하게 배아의 파괴를 수반한다. 그런데 생명의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배아와 성체 인간 사이에는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과 같은 분명한 구분점을 찾기 어렵다.

형태상으로 볼 때 인간배아를 인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수정란으로부터 성체 인간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간임과 인간 아님의 구분점을 명확히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또한 인간 배아는 적절한 조건만 유지된다면 자연 상태에서 성체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줄기세포 연구는 난세포를 소모시킨다. 난세포는 여성의 몸에서 채취해야 하는 것이며, 기부에 기초한다고 하더라도 난세포의 소모는 여성의 몸의 도구화 문제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줄기세포주를 수립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며 높은 실패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소모되는 난세포의 양이 많다. 여성의 몸에서 한 달에 1개씩 만들어지는 난세포를 연구목적으로 다량 확보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난세포의 채취가 위험이 수반되는 일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줄기세포 연구가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줄기세포 연구라고 하면 '배아 줄기세포 연구'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줄기세포에는 적어도 세 종류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전능 세포다.

인간의 수정란은 분열해 16개의 세포가 되면, 내세포괴인 배아 배엽과 외세포괴인 영양 배엽으로 구성된 이른바 배반포가 형성된다. 배아 배엽은 체세포로 분화될 세포이며 영양 배엽은 태반을 형성할 세포이다. 영양 배엽의 세포 하나 하나는 인체를 구성하는 약 210개의 세포 어느 것으로도 분화될 수 있는 미분화 세포이며 만능(pluripotent) 세포라고 불리는 줄기세포이다. 이 만능세포는 전능성은 없다. 태반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A-미분화 세포인 인간 배아 줄기세포군 B-분화된 세포인
신경세포. ⓒ2011 HelloDD.com

만능세포를 확보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배아의 내세포괴에서 세포를 분리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배아는 파괴되고 만다. 다른 방법은 태아의 생식세포로부터 만능세포를 얻는 것이다.

유산된 태아로부터 채취한 초기 생식세포를 적절한 배양 조건에서 미분화된 만능세포로 돌려놓는 것이다. 이 방법은 배아의 내세포괴에서 만능세포를 확보하는 방법보다 기술적인 어려움이 더 많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체세포 핵치환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핵이 제거된 난세포에 체세포 핵을 이식해 복제하는 방식으로 배아를 확보하고 그 배아에서 만능세포를 얻어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수정된 배아를 파괴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난세포의 소모를 막을 수는 없다.

만능세포 이외에 다능(multipotent) 세포라는 것도 있다. 배아뿐 아니라 성체에도 완전히 분화되지 않은 세포들이 있다. 골수, 혈액, 피부 등에서 이런 세포를 찾아낼 수 있다. 이 세포들은 만능성은 없지만 제한적으로 다른 세포로 분화될 수 있다. 예컨대 골수에서 찾은 줄기세포는 혈액에 있는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다능세포를 성체 줄기세포라고 흔히 부른다. 성체 줄기세포는 배아의 파괴나 난세포의 소모를 유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능성이 아닌 제한적인 다능성만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점이 단점이다.

여기서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두 가지다. 하나는 난치병 치료 등 의료적 효용이 매우 크다는 기대감이다. 또 하나는 발생 초기 단계 등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 증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결국 이 두 가지 이유는 인간의 행복이라는 하나로 수렴된다.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인류의 건강과 행복이 증진된다면, 이런 연구를 거부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이유가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정당화는 것 같지는 않다.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기술적 회의주의를 배제하고라도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심각한 윤리적 반대에 직면해 있다. 더욱이 이런 대부분의 윤리적 반대로부터 자유로운 줄기세포 연구도 있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적인 용이성에 있지 않나 의심해 본다.

2006년 일본 교토대학의 야마나카 교수팀이 리트로바이러스를 이용해 피부세포로부터 질병에 특화된 줄기세포를 배양하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은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질병치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더 읽어볼 만한 자료

▲존 브라이언트 외, '생명과학의 윤리'(이원봉 옮김), 아카넷, 2008. ▲Insoo Hyun, "Stem cells", From Birth to Death and Bench to Clinic, ed. Mary Crowley (Garrison, NY: The Hastings Center), 2008, pp.159-162. ▲Søren Holm,, "Going to the roots of the stem cell controversy", Bioethics 16, No.6, 2002, pp.493-507.
 

▲이상헌 교수 ⓒ2011 HelloDD.com
이상헌 교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전담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연구분야는 신생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논의,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기술의 대융합(공저)' '대학생을 위한 과학글쓰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읽기'를 타이틀로 신생과학기술들을 윤리적 관점에서 되새겨 보며 인간의 행복 증진을 위해 최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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