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태관 KAIST 교수 부인, 11일 KAIST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 올려
"학자에게 명예와 자존심은 목숨과 같다" 피력…KAIST 문제점 지적

"감사가 인격적인 모독, 자존심을 바닥으로 내팽겨치는 것과 동의어일까요? 학자에게 명예와 자존심은 목숨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 남편에게는 그랬습니다. 감사를 받는 몇 달동안 남편은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 감사결과를 통보받고 고민하다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박태관 KAIST 교수의 부인이 KAIST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에 눈물섞인 글을 올렸다. 박 교수의 부인은 글을 통해 유족의 절절한 심경을 전하는 한편 KAIST와 감사기관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박 교수의 부인은 "저와 아이들은 남편과 아빠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힘겹게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며 "모진 시간 가운데 제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밀고 올라오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됐다. 가슴으로 읽어주길 부탁한다"고 현재의 애통한 심경을 전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연구환경에서 이런 식의 감사를 받을 경우, 이공계 교수라면 그 누구라도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조차 다 알고 있다"며 "연구비 실적이 높을수록 타깃이 될 가능성은 더 높다. KAIST에서 최우수교수와 올해의 KAIST인으로 뽑힐 만큼 훌륭한 연구성과를 보였던 교수를 연구비 유용이라는 문제로 걸어 세상에 알리는 것이 총장님과 KAIST가 도덕적이고 깨끗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방법이라 생각진 않느냐"고 물었다.

박 교수의 부인은 "우리 학교는 이 정도의 교수까지 철저히 조사한다는 식의 과시는 없었는지, 총장 개인과 교과부간 긴장관계가 이 일에 조금의 영향도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고 적었다.

또한 대학원총학생회를 향해서는 "관행적으로, 그리고 암묵적으로 교수와 학생들간의 동의하에 시행돼온 랩비 사용문제에 대해서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해 시정시키려는 노력없이 특정교수를 지목해 문제를 제기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냐"라며 "교수와 학생간이 사제관계라기 보다는 마치 노사관계처럼 되어버린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감사실을 향해 "학자에게 명예와 자존심은 목숨과 같다고 생각한다. 원칙은 중요하지만, 원칙이 적용되는 환경을 무시하고서야 불꺼진 방안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 칼에 누군들 안전하겠는가. 칼을 휘두르는 본인들조차 무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 부인은 "최소한의 경위설명을 들을 권리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학교로부터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며 "이 모든 일을 남편 개인의 일로 돌리고 넘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KAIST의 중단없는 발전을 위해 이런 희생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서둘러 덮어버리고 싶은 것이냐"고 섭섭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아래는 박 교수 부인이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에 남긴 글 전문이다.
 

총장님을 비롯한 모든 카이스트인들께 드리는 글 총장님을 비롯한 모든 카이스트인들께, 저는 지난 4월 10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 박태관교수의 안사람입니다. 남편이 간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남편과 아빠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힘겹게 시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모진 시간 가운데 제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밀고 올라오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머리로만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읽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지난 1월 14일(제 기억입니다) 남편이 연구실에서 오랫동안 아끼며 키우던 물고기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감사를 통보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고기의 죽음을 놓고 무척이나 가슴아파했던 그는 그 일을 자신의 일과 연관된 불길한 예감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습니다. 이제와 생각하면 남편을 지키지 못한 제 자신이 가장 원망스럽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그리고 이 일을 남편 개인의 일로만 돌리기에는 남편이 너무 가엾고 남은 가족들의 비통과 애절함이 너무 큽니다.

총장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과 같은 연구환경에서 이런 식의 감사를 받을 경우 이공계 교수라면 그 누구라도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조차 다 알고 있습니다. (속된 말로 재수없으면 당한다고 하더군요.) 연구비 실적이 높을수록 타깃이 될 가능성은 더 높겠지요. 제 남편은 카이스트에서 최우수교수, 올해의 카이스트인으로 뽑힐 만큼 훌륭한 연구성과를 보였던 교수였습니다.

그런 교수를 연구비 유용이라는 문제로 걸어 그것을 교과부와 세상에 알리는 것이 총장님과 카이스트가 도덕적이고 깨끗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방법이라 생각진 않으셨습니까? 우리 학교는 이 정도의 교수까지도 철저히 조사한다는 식의 과시는 없으셨습니까? 그리고 총장님 개인과 교과부간의 긴장관계가 이 일에 조금의 영향도 없다고 자신하실 수 있습니까? 이 일의 시작은 작년 4월 총학생회의 설문조사에서 비롯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총학생회에 여쭙니다. 관행적으로, 그리고 암묵적으로 교수와 학생들간의 동의하에 시행되어온 랩비 사용문제에 대해서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여 시정시키려는 노력없이 특정교수를 지목하여 문제를 제기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신 것은 아닙니까? 관행과 제도를 고치지 않는다면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겠습니까? 랩 소속 대학원생들이 학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근로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연구실험실 환경의 구조와 운영방식에 대해 여러분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교수와 학생간이 사제관계라기 보다는 마치 노사관계처럼 되어버린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감사실에 여쭙니다. 감사가 인격적인 모독, 자존심을 바닥으로 내팽겨치는 것과 동의어일까요? 학자에게 명예와 자존심은 목숨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 남편에게는 그랬습니다. 감사를 받는 몇 달동안 남편은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2200만원이라는 액수가 문제가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감사중에 혹시 실소(失笑)하진 않으셨는지요? 수억, 수십억, 수백억의 남용, 횡령사건을 수시로 접하고 사는 게 우리의 현실이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원칙은 중요하지만, 원칙이 적용되는 환경을 무시하고서야 불꺼진 방안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칼에 누군들 안전하겠습니까? 칼을 휘두르는 본인들조차 무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제게 최소한의 경위설명을 들을 권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카이스트로부터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습니다.

빈소를 찾아오신 총장님께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는 한 마디뿐이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제 남편 개인의 일로 돌리고 넘어가야 할까요? 카이스트의 중단없는 발전을 위해 이런 희생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서둘러 덮어버리고 싶으셨던 걸까요? 여러분들께는 지나가는 여러 사건들중의 하나일 수 있겠지만 저와 제 아이들은 평생을 안고 갈 상처를 입었습니다.

남편이 카이스트에 처음 부임했던 1996년이후 15년동안 카이스트의 가족으로 살면서 자랑스러웠습니다. 이제는 카이스트라는 단어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15년의 시간을 열정적으로 보냈던 카이스트를 원망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는 카이스트에서 학생들과 함께 했을 때, 카이스트에서 인정을 받았을 때 가장 빛나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카이스트에서 제 남편과 지내면서 정을 나누셨던 분들, 남편이 저리 되고 마음으로 함께 울어주셨던 분들께 머리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버지잃은 제 어린 자식들을 위해 강한 어미로 살아야겠지요. 부디 안녕하십시오. 안녕 카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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