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벨트 선정 이후 과제③]"명확한 비전 제시와 연구 환경 필수"
"외국 과학자 가족위한 교육·문화 시설 마련해야"

"기초과학연구원 전체 예상인력 3000명중 연구인력만 2500명이다. 그런데 국내에 기초과학 분야 연구인력이 2500명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국 우수 인력 유치가 대안이다. 외국 우수 과학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아무런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필요하다."(출연연 A 박사)

"기존 우수 연구자들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존 연구자가 기초과학연구원의 사이트랩을 맡아 연구를 진행하는 방식인데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이중소속제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출연연의 B 박사)

"부족한 연구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서는 외국 인력을 적극 유치해야 한다. 국내 연구진과 공동연구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과학자를 데려와야 하는데 우수 인력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충분한 처우와 연구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등과학원 J 교수)

과학벨트 운영이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성공하기 위해 과학기술인들의 내놓는 대안이다. 정부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의 핵심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 연구 인력으로 2500여 명을 선발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연구 인력들은 기존 연구기관이나 대학 등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기초과학이나 원천연구에 전념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국내 기초과학 연구 인력풀로는 기초과학연구원에서 필요한 인력을 충당하기에는 어림도 없다.

당분간 국내에서 이공계 우수인력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오래전부터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과학발전을 통한 성장동력 확보는 점점 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마지막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해외 우수 과학자 적극 유치다. 과학기술인들은 "기초과학연구원의 운영을 위해 외국의 우수 연구 인력 유치는 불가피하다"면서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연구 환경과 정주 여건으로 그들이 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지금 당장이라도 해법 모색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외국 우수 과학자…스스로 찾아올 수 있는 여건 마련해야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연구 인력 유치에 나서지 않는다. 연구자들이 스스로 오고 싶어하는 연구소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안정적인 대학 교수 자리도 포기하고 갈 정도다. 이유는 간단한다. 정부가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 때문이다." 출연연 K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막스프랑스 연구소는 그냥 지켜본다. 말도 안되는 연구계획서도 다 받아주고 실패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면서 "연구자들이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만 한다. 우리나라 연구 환경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출연연의 B 연구원 역시 우수한 외국 인력 유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구 전권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등 유명 연구소는 자율성이 보장된 연구 환경에서 세계 각국의 연구진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참여하고 있다.

그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통해 세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우수 과학자 간 네트워크 구성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외국 과학자들이 왔을 경우 그들이 리더십을 가지고 연구에 임할 수 있도록 자율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 대학의 J 교수도 과학벨트의 성공은 외국의 우수 과학자 유치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J 교수는 "초기에 외국의 우수 과학자를 유치하지 못한다면 기초과학연구의 허브가 되기 보다는 또 하나의 출연연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면서 "유명 과학자를 제대로 유치하는 것만으로도 기초과학연구원은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볼수 있다"며 인력 구성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외국 과학자 장기체류를 위한 정주 여건 마련도 필수

우선 외국의 우수과학자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필요하다고 과학기술인들은 지적한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 속에서 생활해온 그들이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은 일.

특히 자녀를 둔 외국 과학자들에게는 자녀교육 문제가 최우선이므로 불편함 없이 공부 시킬 수 있는 환경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출연연의 L 박사는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찾아와 연구하고 싶은 환경을 갖춘 연구단지를 만들자면 매력적인 연구시설과 연구환경이 필요다. 우선 교육, 교통, 의료, 문화시설 등을 갖춰 과학자와 가족이 편안한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면서 "또 박물관, 미술관, 음악당, 과학관 등 문화시설을 마련해 외국의 과학도시보다 문화와 삶의 질면에서 우수한 연구환경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로 과학자 역시 "외국의 우수 과학자가 국내에 잠시 머무르는 것으로는 안된다. 이들이 연구에 몰입하려면 가족과 함께 와야 하는데 외국인 과학자 가족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머무를 수 있는 정주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이들이 자녀 교육은 물론, 소비생활, 문화를 즐기는데 불편함이 없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교통 혼잡과 대기오염이 없고 자연을 만끽하며 생활에서도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기반 시설 마련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업을 운영하는 M 대표는 "한국은 과학 변방국이라 할 수 있다. 외국의 우수 과학인력들이 올지 의문"이라면서 "이들이 스스로 오고 싶어할 만한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매력적인 조건과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초과학연구원을 셋업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실패 용인하는 연구 환경 마련도 시급, 정부 정책 변화부터

기초과학연구원이 인적·물적 인프라를 갖췄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인들은 지금의 연구 환경과 정책속에서는 기초과학연구의 허브로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스라엘이 과학강국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특별히 지원을 잘한것 보다는 간섭이 없어서다. 우리나라는 5년 과제면 매년 보고서 쓰느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보고서로 평가를 하니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해야하는 상황이다." 한 원로 과학자는 현재의 연구 환경을 진단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연구에만 몰두해야 하는데 보고서로 시간을 많이 낭비한다. 5년 과제면 중간 보고는 간단히 하고 마무리 시기에 제대로 하는 방식으로 해야한다"며 지금의 과학정책을 질책했다.

그는 이어 "기초 연구는 당장 성과가 있기 보다는 긴 안목으로 지켜봐야 하는 연구가 많다. 또 실패 확율도 높다"고 말하면서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인들은 이밖에도 기초과학연구원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 중심의 연구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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