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벨트 선정 이후 과제②]정부의 일관된 정책·지속적인 지원 필요
"단계별 이용자 그룹 개발로 효율성 높여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위원회(이하 과학벨트위원회)는 지난달 13일 회의를 통해 과학벨트의 핵심인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의 통합 배치 원칙을 결정했다. 중이온가속기는 기초과학연구원의 중심 시설이라는 점에서 통합 배치는 당연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이온가속기의 이용과 성과 연계에 대한 논의는 아직 많지 않은 편이다. 또 중이온가속기 이용자 그룹은 따로 있다는 생각에 과학기술인들 조차 상당수가 이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고민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경우도 있다.

◆중이온가속기, 과학기술 선도와 국가위상 강화위한 존재목적 이해해야

중이온가속기 개념설계 총괄 책임자인 홍승우 성균관대 교수에 따르면 기초과학연구원의 핵심시설인 중이온가속기(KoRIA)는 1.08km²(약 32만평) 용지에 지름 10m의 원형가속기(사이클로트론)와 길이 약 200m의 선형가속기, 실험동과 연구동 10여채로 구성될 전망이다.

상암 월드컵경기장의 10배 정도에 이르는 규모다. KoRIA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형가속기와 선형가속기가 연결된 구조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 지하 10m깊이에 설치되며 원형가속기는 70KW로 양성자를, 선형가속기는 400KW로 우라늄(U)같은 무거운 중이온을 가속하게 된다.

200MeV(메가볼트)의 높은 에너지로 자연의 거의 모든 이온을 가속할 수 있는 가속기로는 유일하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중이온가속기는 물성·재료, 바이오, 화학, 원자력, 원자·분자, 의학, 핵물리 등 다양한 분야의 첨단 연구에 사용될 전망이다.

이제까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희귀 동위원소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실제 일본은 2004년 새로운 핵종을 발견하고 주기율표의 원소번호 113번에 '자포니움'이란 이름으로 올렸다. 또 독일의 '게르마늄', 프랑스의 '프란슘' 등이 대표적인 예다.

새로 발견되는 원소에는 발견한 국가나 도시, 발견자의 이름을 붙일 수 있어 국가 위상 강화에도 큰 몫을 한다. 자연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원소가 1만여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만큼 중이온가속기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무한하다.

이에따라 각국의 중이온가속기 건설 경쟁은 치열하다. 현재 미국, 독일, 프랑스, 유럽연합 등에서 앞다퉈 중이온가속기 건설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 알려진 KoRIA 활용 방안은 ▲우라늄을 사용하지 않고 방사능 폐기물도 나오지 않는 차세대 원자로 개발을 위한 핵입자 연구 ▲신소재 개발과 단백질 연구 ▲별 안에서 일어나는 핵반응 재현을 비롯해 치료를 위해서도 활용될 전망이다.

올해 11월까지 개념설계를 완료하고 내년부터 상세설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홍승우 교수는 "기초과학연구의 핵심시설이 중이온가속기다. 바이오·의학 기초연구, 우주원소지도 완성, 재료기초연구 등에서 중이온가속기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이온가속기 지금도 예산 부족인데 지속적인 지원 가능한가

과학벨트 내에 건설될 중이온가속기의 예산은 4600억원 정도다. 중이온가속기 상세설계는 비용만 300억원이 필요하지만 올해 과학벨트사업에 배당된 예산은 100억원에 불과했다. 전체 설계 및 건설을 감안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과학기술계에서 과학벨트 선정 이후 중이온가속기가 제대로 설치될 수 있겠는가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현재는 정부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어 별도 예산이 마련돼 있다지만 그 이후 기존 정부 R&D에 포함될 경우 별도의 독립 예산을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누구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도 예산이 부족한데 막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게 과학기술계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A 박사는 "지금은 중이온가속기 건립을 위해 대통령이 정부정책으로 예산을 마련해 지원하고 있지만 지원 기간이 끝나면 그냥 정부의 R&D 예산에 포함될 것이다. 그때도 독립 예산 편성이 가능할지 걱정된다"면서 "중이온가속기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예산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연연의 B 박사 역시 "일부에서는 가속기를 사용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꼭 만들어야 하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많다"면서 "그러나 중이온가속기는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의 기초과학과 원천연구를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럴수록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밀고나야가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의 P 교수는 "2015년까지 완공시키려면 정부의 충분한 지원과 인적자원이 필요하다"면서 "그렇지만 과학계에서도 정부의 지원과 지지를 지속적으로 받기위한 명확한 목표와 성과를 내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미국이 계획한 중이온가속기(MSU-FRIB)가 성능 면에서 KoRIA와 비슷하지만 현재 진행 상황으로는 한국이 한발 빠르다"면서 "그러나 지금처럼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입지 선정 문제로 우왕좌왕 하다보면 그 위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며 일침을 가했다.

세계 최대 기초과학연구소인 유럽 CERN의 호이어 사무총장도 올해초 한국을 방문해 중이온가속기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며 중이온가속기를 성공적으로 구축해 나가려면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요구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완성후 논의는 늦어, 중이온가속기 설계부터 단계별 이용자 그룹 모집해야

과학기술인들은 중이온가속기 상세 설계에 앞서 가속기 이용자 그룹이 누구인지 개념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출연연의 H원장은 "중이온가속기를 건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계당시부터 단계별로 가속기에서 파생되는 기술을 산업체와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를 검토하는 한편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을 모집해야 한다"면서 "중이온가속기의 최종 목표는 기초과학연구와 이후 성과를 통한 노벨상을 기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완성된 이후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그룹은 사실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중간 중간 이용자 그룹을 개발해 나가야 과학비스니스벨트의 성공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성자가속기도 에너지가 100, 300, 500등의 정도에 따라 이용자 그룹이 따로 있다. 중이온가속기도 중간중간에 이용자 그룹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가속기를 완성한 다음에 이용자를 찾는다는 것은 자칫 이용 효율도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면서 "상세 설계 시기부터 이용자 그룹을 키울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 대학의 E 교수 역시 "지금 과학벨트 입지 문제로 신경전을 펼치고 있어 정작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다"면서 "기존의 가속기 운영 사례 자료를 토대로 중이온가속기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한 계획도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원로 과학자는 입지 선정과 관련해 "중이온가속기는 기초과학연구의 중요한 툴 중에 하나다. 따라서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과학기술인의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동감을 표시하면서 가능한 한 국내외 연구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연구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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