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석 생명연 박사, 인간과 침팬지 정자 유전자 비교 분석
성문화 차이가 정소 기능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 초래

인간과 침팬지의 DNA 정보는 1%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불과 500만 년 전에 공통 조상에서 분리돼 독자적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고 추정된다. 그렇다면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수수께끼는 현대 생명과학에서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수수께기를 풀 수 있는 열쇠 중 하나로 '유전자의 변화'가 꼽히는 가운데, 인간과 침팬지의 서로 다른 성문화(性文化)가 진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직무대행 최용경) 박홍석 박사 연구팀이 주도하고 일본 국립바이오의학연구소(하시모토 박사)와 동경대학교(스가노 박사) 등이 공동으로 참여한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인간의 일부일처와 침팬지의 다부일처가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 변화의 한 근거가 된다는 결과를 도출했다고 28일 밝혔다.

연구팀은 인간과 침팬지를 확연하게 구별짓는 중요한 특징이 생리적 활동이라는 사실에 주목, 침팬지 수컷의 정소에서 1933 종류의 유전자 정보를 발굴해 인간과 침팬지의 정소기능(정자생성력, 운동력, 지구력, 수정력 등)과 관련된 유전자들을 포괄적으로 비교 연구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인간과 침팬지의 정자 생성 및 정자 기능에 관련된 50%(30/78개) 유전자들에서 유전자 구조와 유전자 정보가 서로 다름을 밝혀냈다. 특히 정자의 숫자와 운동속도, 지구력과 밀접한 관련성이 깊은 3개 유전자(CD59, ODF2, UBC)에서 침팬지만의 특이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인간과 침팬지에서 정소에서 유전자 변이가 큰 원인은 인간과 침팬지들이 갖고 있는 뚜렷한 생리적 차이, 즉 전혀 다른 성문화의 방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했다. 일례로 인간은 대부분 '일부일처' 사회구조이며, 침팬지는 '다부일처'의 성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인간의 경우 후손을 만드는 난자에 대한 소유 경쟁이 불필요한 반면, 침팬지 사회에서는 한 마리의 암컷에 대해 여러 수컷들이 다발적으로 교미를 하는 성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난자의 소유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소의 기능과 관련된 유전자의 기능 강화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과 침팬지의 성문화의 차이가 유전자 변화에 영향을 줬으며, 궁극적으로 인간과 침팬지의 생태적·기능적 차이를 만드는 데 공헌했을 것이라 분석했다.

박홍석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최초로 규명한 정소관련 유전자 정보는 향후 선천성 남성 불임의 원인규명 등 정자의 기능과 관련된 남성의 비뇨기 질환 진단과 치료 연구를 위한 원천정보로 활용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기대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유전체분야의 권위있는 전문 학술지 '기능 및 통합 유전체' 18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 "인간이 어떻게 인간으로의 본 모습을 갖췄는가에 대한 해답"
 

▲박홍석 박사. ⓒ2011 HelloDD.com

"2001년부터 침팬지 유전체 해독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에 논문을 내기도 했지만 근원적 질문에 대한 해답은 구할 수 없었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이 됐는지에 대해 궁금증이었다. 그래서 침팬지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인 생리적인 부분에 대해 비교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박 박사는 명실상부한 국내 침팬지 연구의 대가다. 지난 2004년에는 침팬지 22번 염색체를 완전 해독해 인간 21번 염색체와 비교 연구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가 어떻게 인간이 됐나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지도 어느덧 4년째다. 물론 질문만큼이나 연구 수행도 어려웠던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시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한 마리를 가지고 연구에 임했다. 많은 개체를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면 좀 더 명확하게 결과를 밝힐수도 있었을테지만 시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며 "이는 모든 동물실험에서의 장애물"이라고 털어놓았다. 연구 과정도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시료를 일본에서 제공받고 있었기 때문에 넉넉한 실험은 불가능했다.

박 박사는 "일본에서 침팬지 정소에서 뽑은 DNA 시료를 제공해 줬다. 침팬지는 실험이 끝났다고 해서 도살할 수 없다. 수명이 40-45년 정도인데, 1년에 사육비만 해도 1000만 원에 육박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부담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 그를 이끌었던 것은 연구의 연속성에 대한 책임감과 호기심 덕분이었다. 박 박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생명공학에서 정점에 있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앞으로 인류학에 철학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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