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⑧-좌담회]경쟁 부추기는 교육시스템, 다양성 존중 부재
학생들의 자발적 수용 여부 중요…제도적 보완 필요 강조

KAIST의 위기. 그 출발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학생 4명과 교수 1명의 자살로 촉발된 KAIST 사태는 학교당국과 교수협의회, 학생들 간의 대화를 통해 나름대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지만 근본 원인이 치유되지 않는 한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덕넷은 최근 KAIST 위기 사태를 진단하고 치유책을 찾기 위해 KAIST 안팎의 관계자들이 참여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석봉 대덕넷 대표가 사회를 맡은 이번 간담회는 김기홍 대전광역시 과장, 김병진 쎄트렉아이 부사장, 안상현 KAIST 대학원총학생회장, 안종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오준호 KAIST 교수, 최영명 대덕클럽 회장 등(가나다순) 6명의 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간담회 참가자들은 KAIST 사태가 인성 교육보다는 경쟁만을 부추기는 교육 시스템과 서로간의 소통 부재,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에 의견을 같이 했다.

과학기술계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임인 대덕클럽의 최영명 회장은 "서로 경쟁하는 문화가 가속화 되고 있다. 세계 톱 레벨이 돼야한다는 실적 위주의 교육 정책이 개선돼야 한다"며 "과학 기술 쪽 역시 인성교육과 다른 학문과의 밸런스를 맞추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병진 쎄트렉아이 부사장은 "우리 때는 성적 안 좋은 학생들이 되레 주변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기타를 치는 학생, 게임을 하는 학생 등 전문적인 다양성을 존중했었다"며 "딱히 문제가 있던 친구들이 아니다. 기회를 주고 인정을 해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이 없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다 교수들이 돼 있다"고 말했다.

안종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어려서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학생들의 눈이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접점들이 부족하다"며 "과학기술계 쪽에서도 KAIST의 문제를 전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배의 입장에서 잘 이끌어 줄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학생들과 함께 사태의 중심에 서 있는 오준호 KAIST 교수는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러나 경쟁을 피할 수는 없다. 학생들도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경쟁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정해야 한다. KAIST에 안 맞는다고 해서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니다"라며 "학교에서 제공하는 모든 제도들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안상현 KAIST 대학원총학생회장은 "대부분의 학부생들은 어린 나이에 학교에 들어와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그들의 말을 학교 측이 무시하지 말고 들어주길 바란다"면서 "KAIST가 그들에게 효율성을 둘러싼 격전장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경험의 단련장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토론회 전문

▲KAIST 위기 사태 조명을 위해 6명의 각계 전문가가 모였다. ⓒ2011 HelloDD.com
◆ 이석봉 대덕넷 대표 = KAIST가 힘들어지면 과학기술계에도 영향이 간다. 어떻게 해결하면 좋은가. 공동체의 관점에서 의견을 들었으면 좋겠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다.

◆ 김병진 쎄트렉아이 부사장 = 쉽지 않은 문제다. 선배들이 멘토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그런 지적이 나오는 것은 그동안 멘토가 학생들에게 없었다는 이야기로도 풀이된다. 스승 역할을 해주는 교수나 선배들이 없기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과연 교수님들의 시간이 100이라면 연구하는 시간과 교육하는 시간 중에 몇 퍼센트를 학생들에게 할애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KAIST의 정체성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는지도 점검이 필요하다. 국내 대학 쪽에서는 KAIST가 교육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지만, 다시 돌아볼 필요도 있다. 과연 논문을 많이 쓰는 교수들이 승진하고,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 안종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어려서부터 과학분야에 관심이 있고, 재능을 인정받은 학생들의 눈이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 다양한 학생들이 접촉할 수 있는 접점이 부족하다.

◆ 최영명 대덕클럽 회장 = 서로 경쟁을 하는 문화가 더욱 더 가속화되고 있다. 영재로 불려져왔던 KAIST 학생들이 쉽게 좌절감을 느낄 수 있는 문화다.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을 하면 그런 극한 상황을 택하게 되는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극복을 해야 하는데, KAIST의 커리큘럼이 이에 대해 과연 어느 정도의 합리성을 띠고 있는지 궁금하다. 과학 기술 쪽 역시 인성교육과 다른 학문과의 밸런스를 맞추는 교육이 필요하다.

◆ 김기홍 대전광역시 과장 =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KAIST라는 세계적인 대학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대전 시민으로서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기본적으로는 교수님들이나 학부모, 동문들이 교과부와 협의해서 좋은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지켜보는 입장이다. KAIST가 폐쇄적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돼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학생들이 지역 사회와 연계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었다. 그런 부분들이 좀 더 확대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 오준호 KAIST 교수 = 상황이 조금 과장돼 있다. 이 문제를 본질적인 부분과 현상적인 부분으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KAIST의 분위기 삭막하다. 영어 강의 때문일 수도 있다. 대화 능력이 제한되다 보니 말수가 적어지고, 농담도 적어진다. 강의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학생들이 밖에서는 영재라고 인정을 받지만 교수 입장에서는 바보로 느낄 수도 있다. 밖에서 학생의 능력이 85라면, 우리는 95를 시킨다.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보다 그 이상을 시키면 바보가 된다. 자기 위치에 따라 천재에서 바보로, 바보에서 천재로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교수나 학생들도 이점을 알고 있다. 내 능력을 벗어나는 것들이 많다 보니까 올바른 시스템을 만들어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없다. 인성교육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삭막함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다. 피할 수 없다면 정면 돌파할 수 밖에 없다. 잔인한 이야기지만 극복할 수 없다면 자신이 KAIST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KAIST에 안 맞는다고 해서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니다. 다른 대학에 충분히 진학이 가능하다. 테뉴어 못 받으신 교수님들 보면 유수 대학에서 잘 활동하고 계신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그들의 의견은 간단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노력하면 넘어갈 수 있고, 아니면 떨어진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문제다.

◆ 안상현 KAIST 대학원총학생회장 = 멘토 프로그램도 좋고, 인성 교육도 좋다. 그러나 당사자가 학생이라는 걸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저런 제도는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고교 동문 문화가 발달돼 있는 KAIST에서 선배와의 대화를 통해 무엇을 풀어간다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총장의 개혁 드라이브 기조가 무한 경쟁이다. 어린아이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가고, 거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압박감으로 작용한다. 대학원생들이 좀 풀어져 있으면 학부생들을 챙기고 이야기를 좀 할 수도 있을텐데, 그들조차도 여유가 없다. 자기들끼리의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바쁘다. 이야기를 하고 숨을 쉬고 싶다라는 점을 요구하는 것 같다. 숨이 트이면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 본다. 숨이 트이고, 인성 교육을 할 수 있는 것들로 기반이 닦이면 자발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멘토라는 게 또 하나의 수업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를 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 입장에서 이미 충분히 싸워서 이기는 법을 배웠다고 본다. 대학에 와서 기대하는 것은 나름대로 자기 주변을 이해하고, 견문을 넓히고, 미래를 정립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현 교육 시스템은 이전(고등학교)의 과정을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효율성에 대한 격전장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격전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오준호 교수
= 동감한다.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 현실이다. 지금 말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즐기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데, 과연 학생들이 그렇게 움직여 주겠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면 문제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 안상현 회장 = 대학원생들의 경우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학부생들이다.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서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했었고, 창의성을 강조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온 학생들에게도 잣대는 하나 뿐이다. 오직 성적뿐이다. 로봇 특기생으로 들어온 학생에게도 평가 지표가 따로 없다. 그렇게 되면 점수를 못 받게 되고, 좌절감만 심어주게 되는 것이다. 너무 급하게 진행돼 왔다.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개혁이 진행됐다.

◆ 김병진 부사장 = 수습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서 총장은 일을 벌려놓는데, 수습하는 건 학생들이다.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KAIST가 학교라는 점이다. 특히 학부생들에게는 학교보다는 KAIST의 특수성만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이석봉 대표 = 경쟁이 필요한 것은 인정한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과정에서 보완책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KAIST가 사실은 국가적인 기관이고 세계적인 기관이지만 대덕에 있다. 대덕은 과학기술의 메카다. 선배들도 많다. 과학 공동체로서 KAIST가 좀 더 넓은 안목을 가지고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안종석 책임연구원 = 그런 문화를 장려하고 있다고 본다. KAIST 학부생들이 우리 연구원의 연구실에 왔다 가면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공부만 하는 아이들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다. KAIST 학생들은 여러모로 뛰어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생들은 모든 것의 우선이 사람이 아닌 과학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다양한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준이 아예 없어진 것이다. 여전히 똑같은 길로만 가고 있다. 그에 안 맞으면 다른 길로도 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길에서 벗어나면 탈락한다고 생각한다. 자연히 스트레스가 커진다.

◆ 김병진 부사장 = 우리 때는 성적 안 좋은 학생들이 주변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었다. 기타를 치는 학생, 게임을 하는 학생 등 전문적인 다양성을 존중했었다. 문제가 있던 친구들이 아니다. 기회를 주고 인정을 해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이 없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다 교수들이 돼 있다.

◆ 안상현 회장 = 학부생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할 제도니까 반영을 해달라는 것이다. 예전에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을 존중해줬다라는 점이 중요한 것 같다. 그때엔 패배감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 같다. 현재의 KAIST는 공부하라고 자꾸 몰고 가니까 기숙사 내에서도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것이 아니라 성적으로 몰고가니까 무조건 공부가 전부구나라고 느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 오준호 교수 = 개선될 것 같다. 교수들도 많이 깨닫고 있다.

◆ 안상현 회장 = 학생회장을 하면서 안타까운 점은 이공계인들이 잘 뭉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대덕에 많은 분들이 계시다. 바로 옆이 내가 나온 학교이고, 사회적으로 후배가 될 친구들이 많은데 아무도 관심을 안 주시는 것 같다.

◆ 안종석 책임연구원 = 학생들이 접해볼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것이 부담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보겠다. 여러 과학공부를 하고서 많은 경험을 하면 긍정적으로 변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기회를 많이 만들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관심을 표해야 하는 부분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KAIST 학생들의 문제를 과학기술계 전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KAIST 내부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그것을 전체 문제로 확산시켜 볼 필요는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양한 진출의 길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 오준호 교수 = 토대를 만드는 것은 엉뚱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물론 제도 면에서는 충분하다. 그런 것들을 자발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과도기인 것 같다. 너무 좋은 제도를 만들려다가 이런 안타까운 일이 생긴 것이라고 이해를 해주길 바란다.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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