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발전에 큰 기여…기존 제도에 반기들며 성공적 개혁 추진
과학기술계 원로 과학자들, "개혁은 절대 퇴보해선 안된다"

최근 연이은 자살 사건으로 KAIST(한국과학기술원·총장 서남표)가 세상으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다. 국가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요람이었던 KAIST가 가슴앓이를 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교육정책에 새바람을 몰고왔다고 평가받아 왔던 서남표 총장의 영년직 심사제도와, 차등등록금제, 100% 영어 수업 등이 학생들을 막무가내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잘못된 제도로 내몰렸다.

이에따라 KAIST 내부의 교수협의회와 학부총학생회, 대학원 총학생회는 비상위를 잇따라 개최하며 KAIST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봇물을 이루는 상태다. 내우외환의 위기다. 그렇다고 마냥 KAIST만 비난할 수는 없다.

KAIST는 변함없이 한국 과학기술계의 희망이다. KAIST가 어떤 성장통을 겪던 간에 우리 사회의 미래는 과학기술인들을 더 많이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불행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과학기술 인재 양성은 한치의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KAIST는 물론이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간과할 수 없다. 올해까지 KAIST가 우리 사회에 배출한 이공계 인력은 4만2715명에 달한다.

학사 1만1341명, 석사 2만2796명, 박사 8578명 등이다. 4만 명 이상의 이공계 인력을 배출한 KAIST는 이미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점은 KAIST 개혁에 대한 언론의 지대한 관심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KAIST는 이미 수위권을 다투는 경쟁력있는 대학이다. 지난 2000년 '아시아위크' 지의 아시아지역 이공계 대학평가에서는 2년 연속 종합 1위에 올랐고, 더타임스·QS공학·IT 분야 세계 대학 평가에서는 8위(전체 14위)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IT 분야에선 이미 세계 수준의 연구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정보시스템분야 국제학회인 'AIS(Association for Information System)'가 아시아 지역 정보시스템 관련 논문과 연구자들의 영향력을 분석한 결과, KAIST가 홍봉시티대학, 싱가포르 국립대학에 이어 종합 3위를 기록했고, 국제 과학전문 학술지인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가 발표한 논문에서는 KAIST가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분야 세계 1위로 꼽혔다.

지난 3년간 '국내 대학 교육 개혁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던 KAIST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지난해 세계의 중심에 한 발 더 다가서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온라인 전기차는 타임지가 선정한 '2010년 세계 50대 발명품'으로 선정됐고, 미국·말레이시아 등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UAE에는 KAIST의 교육과 연구모델을 수출했다.

국내 대학 최초로 하계 다보스 포럼에 초청돼 인류를 위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 KAIST의 연구진들은 노벨상에 근접한 연구 성과를 세계 과학계에 발표해 주목을 받았고, 유수 국제 저널의 표지를 장식하고는 한다.

◆ KAIST, 기존 제도에 반기를 들다…산업발전에 큰 기여

KAIST는 철저히 실험적 대학이었다. 도제식 교육으로만 일관했던 대한민국 사회는 그 자체를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교육 실험을 획기적으로 추진했으며, 라이벌 대학들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기존 제도에 대한 아웃사이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한 때 규모가 큰 서울대학교로부터 역풍을 맞기도 했었지만, 정부는 과감히 역풍을 막아주었다. 국내 산업발전에의 기여도를 충분히 인정받고 있었던 덕분이다. 1970년대 KAIST 대학원이 출범하면서 '조국의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설립 목적을 내세웠다. 이후 1986년 학사과정 설립 때는 'MIT보다 좋은 대학, 세계 1위의 이공계 대학'을 목표로 했다.

자원빈국으로 과학기술밖에 의지할 데가 없는 상황에서 KAIST는 대한민국의 희망이었다. 우리 사회는 KAIST에 치열한 경쟁 속에 천재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발휘해줄 것을 요구했다. 1971년 설립된 KAIST(설립 당시 한국과학원)는 애초 석·박사의 대학원 과정만 갖춘 한국 최초의 이공계 연구 중심 대학이었다.

전원 기숙사 제공과 학비 전액 면제, 국비 장학금 지급 등의 혜택이 제공됐다. 교수 채용에서부터 파격적이었다. 이전까지 국내에서는 교수 채용을 할 때 공고를 내는 학교가 없었다. KAIST는 1971년 설립부터 교수 채용 공고를 실시했다. 최소 채용 조건은 박사학위 소지자. 당시 서울대 교수도 박사 학위 소지자는 많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이공계 교육 수준이 낮아 서울대에서도 대학원 교육을 포기할 지경이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유학을 가라고 권했을 정도니 당시 국내 상황이 얼마나 척박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KAIST는 대학원에서 사람을 키워 대량으로 박사를 배출해냈다.

당시 국내에서 유일한 인재양성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1970년대 말 KAIST에서는 서울대 교수도 힘들 정도의 요건을 만들어 박사 학위를 심사했다. 박사 학위 논문 일부를 반드시 해외 저널에 출판해야 한다는 놀라운 요구조건이었다. 1980년대에 와서야 서울대도 일부 이공계 내규를 정해 KAIST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KAIST는 늘 선도적인 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 시행하곤 했다. 현재 교수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대표적인 제도로 꼽힌다는 테뉴어 제도도 마찬가지다. 교수가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충격적인 일이었다. 물론 순기능과 역기능이야 있겠지만, 이 테뉴어 제도가 교수들의 질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쉽사리 부인하기 어렵다. 논문은 갯수가 아니라 질이 더 중요한 평가를 받았다.

교육이 양에서 질로 바뀐 것은 큰 혁명이었다. 애초 KAIST의 정체성은 한국 산업체를 위한 고급인력 배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에따라 산업체로 인력이 대거 진출했다. 서울공대 출신의 60%가 교수가 됐다면, KAIST는 60%가 산업체나 연구소로 진출했다. 전문가들은 KAIST가 기술을 모방하던 시기에 고급인력 배출 목표를 달성하면서 한국 산업사회를 성장시키는 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 우리나라 최초로 진정한 이공계 교육을 펼친 KAIST

KAIST의 전신은 한국과학원(KAIS)이다. 여기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학부 교육을 받고 입학한 학생들이었다. 석사과정 합격자의 80%가 서울대 출신이었다. 이는 당시 서울대가 한국 대학가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고려할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과학원에 입학한 학생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학부 교육을 받고 입학한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이공계 교육에 필수적인 실험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교과서 중심의 문제 풀이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학생들이었기에 공학도로서의 재교육은 절실했다.

1996년 발행된 '한국과학기술원 사반세기'에는 '밀도 높고 치열한 한국과학원 생활을 겪으면서 학생들이 입학 당시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로 바뀌어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학문이 무엇인지, 엔지니어란 무엇인지를 경험했다'고 적혀있는 것을 보더라도 그때의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한국과학원의 설립이 이공계 학생의 두뇌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만큼,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의 유출 방지에 대한 여러가지 방지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당연히 경쟁력있는 학생들의 확보를 위해 획기적이고 다양한 특혜가 주어졌다.

가장 중요하고 파격적인 특혜정책으로 꼽혔던 것은 병역특례였다. 한국과학원법에 따르면 한국과학원 학생에게는 10주 이내의 훈련으로 병역을 대체하는 대신 졸업 후 3년간 국내의 기관에서 복무해야 한다.

이는 치열한 남북대결 속에 반공 이념을 국시로 내걸었던 박정희 정부 아래에서 진행됐던 매우 파격적인 조치였다. 경제적 혜택도 주어졌다. 입학과 동시에 학비를 면제받았고, 기숙사를 제공받았다. 이외에도 한 달에 2∼3만원의 장학금을 지급받았는데, 당시 연세대와 고려대 등 사립대학의 등록금이 10만 원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상당한 혜택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 KAIST 설립부터 지켜본 과학자들, "개혁이 퇴보해선 안된다"

"현재 제가 있는 연구소의 25% 이상이 KAIST 출신입니다. 과학기술인재 양성은 물론이고 연구 성과에 이르기까지 KAIST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이 퇴보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보완을 할 필요는 있지만요."

요즘 KAIST 상황을 보면 마녀사냥을 방불케해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진다는 J 박사(원자력연구원)는 "언론이 대학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방법론적으로 완벽한 제도는 있을 수 없다. 지금에 와서 후퇴할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서남표 총장이 잘한 것도 있는데, 못한 것들만 부각시켜 몰아가고 있지 않은가"고 말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등록금 문제와 영어 강의에 대해서도 말을 보탰다. 그는 "전공과목만큼은 이공계 학생이면 영어로 수업을 해야 한다. 세계화 속에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영어 강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해가 된다. 유학을 해봤지만 나 역시도 자신은 없다. 그러나 물러나서는 절대 안 된다. 안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속 연구원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J 박사는 "등록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KAIST는 혈세로 운영되는 학교다. 공부를 못하면 당연히 등록금을 내야한다"며 "스러져간 젊은이들은 너무나 안타깝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나약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세계화에 발맞춰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연구원의 K 박사는 우리 사회가 이 시점에서 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는 "국회 청문회에서 많이 실망했다. 사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서남표 총장이 누굴 위해서 그런 개혁을 했겠는가를 직시해야 한다. 국회 청문회에서 한 사람 쯤은 그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해줬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청문회라는 것이 사람을 코너로 모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과학기술계를 위해서 일한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인정은 필요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물론 세대 간의 갭은 있다. 우리 세대 사람들이 보기에 이해하지 못할 부분들도 많지만, 그래도 시간이 흘렀으니 이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을 슬기롭게 넘길 필요가 있다. KAIST가 지금까지 기여해 온 바를 생각해 보고, 어느 것이 정답인지 이성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대변화에 발맞춰 KAIST의 정체성도 다시 한번 재고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도 이들의 평가다. K 박사는 "산업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국가의 두뇌들에 대해 단순 모방이 아닌 창조형 인재가 돼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저 기술을 베끼던 시대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시대로의 변화가 인재의 조건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이 문제는 KAIST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는 KAIST와 한국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고 조언했다. 대덕넷 기획취재팀(joesmy@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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