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어디로 가야 하나? - 심리·교육전문가 진단
"개인에만 책임묻는 문화 탈피 시급"…"교육제도, 장단점 있는 법"

"KAIST 학생들은 분명 뛰어난 영재들입니다. 일부에서는 영재들이 심적으로 취약하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하게되면 심하게 충격을 받습니다. 이 충격을 해소할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야 하는데 이는 KAIST뿐만 아니라 실패 책임을 본인에게만 지우는 한국 문화에서는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 및 심리 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연이은 KAIST 학생 및 교수의 자살 사태에 대해 학사운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문화와 시스템의 문제"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전우영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구조상 누구든지 성공하거나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청년에게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 다시 일어 설 수 있게 하지 않는다"면서 "이처럼 고정된 문화와 생각을 강조하는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강조했다.

박성익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 제도는 각 학교마다 지향하는 바와 보는 안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서 "KAIST 학생 평가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조언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KAIST 사태에 대해 각 학교마다 정책이나 특성이 있어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교육학과 심리학적 측면에서 분석하겠다는 전제를 분명히 했다.

◆마음도 조기 검진이 필요하다 

전우영 교수에 따르면 심리학적 측면에서 사람은 누구나 실패하지만 실패 원인을 어디서 찾는가에 따라 개인의 감정과 이후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패 원인을 외부에서 원인을 찾는다면 자존감을 지키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자기 발전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부에서 요인을 찾는 경우에는 개인의 수치심이 극대화 되고 이는 자살 시도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는 실패 책임에 대해 본인에게 돌리는 내적귀인 문화"라고 말하면서 "특히 청년 실패에 대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본인 책임제 문화가 만연돼 있어 젊은층의 자살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KAIST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에 대해서도 그는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전 교수는 "KAIST 학생 대부분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들로 분명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아직 어린학생들이라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서 좌절을 겪게되고 징벌제 등록금부과 등으로 부모에게 수업료 부담을 줘야한다는 생각 등이 학생들을 더 힘들게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소통할 수 있는 상담시스템들이 마련돼 있거나 소통 창구 역할을 할 시스템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학교 자체에 상담센터가 있지만 학생들이 이를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는 문화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그는 "사람이 갖는 우울한 증세나 불안한 마음은 감기와 같은 것이다. 우리가 건강검진을 받듯이 심리적인 상처나 질병도 조기 발견해야 치료도 쉽다"고 조언했다. 일부에서 제시되고 있는 KAIST 교수진의 학생 방치에 대해서 전 교수는 "단순히 그렇게 볼수 없다. 그런 문제를 넘어선 차원이다. 현재 시스템이 학생을 좌절시키고 있는데 교수가 나선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지금은 학생이나 교수 누구도 비난해서는 안된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시스템과 문화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그들은 다르다'는 시선(視線) 문화

"KAIST 학생과 교수도 보통 사람입니다. 그들도 일반인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서로 다르다는 생각이 앞서 여러가지로 부풀려진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단순히 KAIST의 교육제도로 자살했다고 보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이번 KAIST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에 대해 "KAIST만의 문제로만 보고 책임론으로 확대해석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대학에서도 자살하는 학생들이 매년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는 언론도 별 관심이 없는데 유독 KAIST 학생이 자살한 것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는 일반대학과 다르다는 시선과 문화때문이죠." 베르테르 효과로 인한 영향이 크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황 교수는 부정적이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신감을 상실하고 자살을 고민하게 된다"면서 "KAIST 학생 대부분 학교 안에서만 생활해 학교를 벗어나면 당황하게된다. 이를 해결하기 보다는 자신의 문제로만 보고 자칫 비애감에 빠져 극단의 선택을 하게된 것이지 베르테르 효과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KAIST학생들의 나약성과 교육제도가 경쟁을 부추킨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KAIST 영재라고 특별히 나약한 건 아니다. 모두들 경쟁에서 밀리면 충격을 받게된다"면서 "또 어느 대학이나 경쟁이 있게 마련인데 KAIST는 국가가 주도하는 대학이라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일련의 상황들을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패 경험으로 다시 일어설수 있는 문화 확산돼야

교과부 자료에 의하면 2000년대에 들어서서 자살하는 대학생 숫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1년 195명, 2002년 237명, 2003년 268명에서 2004년에는 172명으로 잠시 주춤했으나, 2007년 232명, 2008년 332명, 2009년 249명으로 연간 평균 230명정도의 학생들이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

전체 자살자도 1999년 7056명에서 2009년에는 1만5413명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표준 인구기준으로 환산한 자살 사망률 역시 28.4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20대의 사망 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이 40.7%에 이를 정도로 청년 자살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KAIST에서도 이런 심각성을 알고 학생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상담센터, 클리닉, 새내기 지원실, 튜터링·멘토링, 리더십 센터 등 인성 및 학교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시스템이나 제도가 자리를 잡기 전에도 문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카이스트 자살 사건도 학생들을 위한 지원제도를 마련하고 적용하는 과정 중에 발생한 일이라고 본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서 "그러므로 중간에 생기는 문제를 보완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꼭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 전반적인 문제보다는 제도의 장단점 있을 수 있어

"KAIST 학생들이 영재집단인건 맞습니다. 그렇다고 교육방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상황으로 카이스트의 교육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평가 방법에 장단점이 있는데 그에 따른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 KAIST 사태로 일부에서 영재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고 있는 가운데 박성익 교수는 영재교육 전반적 문제라기보다는 학교마다 가지고 있는 교육방법의 차이로 분석했다. KAIST에서는 현재 상대평가에 의한 징벌적 등록금부과제도를 실시 중이다. 일부에서는 상대평가로 인한 박탈감이 크다면서 절대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박성익 서울대 교수는 두 평가제도가 서로 장단점이 있다고 말한다. 박성익 교수에 따르면 절대평가는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어떤 절대적인 기준에 비춰서 평가하는 방법이다. 이는 각자의 성적을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에 각 개인이 목표에 얼마나 도달하였는지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우수한 학생이 많은 경우(특히 열등한 학생이 많은 경우도)에 효율적이다.

그러나 절대적 기준 방식이 평가자의 주관에 의해서 결정되므로 평균점수가 지나치게 높거나 낮게 나올수 있는 단점이 있다. 박 교수는 "상대평가는 개인의 학업성과를 다른 학생의 성적과 비교해 집단내에서의 상대적 위치로 평가하는 방법으로 이론적으로는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그러나 전체적으로 우수한 자가 많은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같은 비율로 평가할 경우, 평가의 결과에는 형평성이 결여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KAIST에서도 각 분야 전문가가 내면적 특성을 고려해 결정했을 것이다. 단편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면서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모두 장단점이 있어 단순히 어느쪽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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