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②]KAIST 어디로 가야 하나? - 현장의 목소리
구성원들 무엇을 원하는가…"학생-교수, 함께 극복해 나갈 것"

"우리는 꿈을 키워주는 학교를 원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겨야 하는 경쟁 위주의 제도시스템을 벗어나 꿈꿀 수 있는 학교에 다니고 싶습니다."(학부 총학생회)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여러 제도들이 효율과 개혁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시행되는 것을 막지 못한 교수들의 책임을 통감합니다."(교수협의회) "영어강의 수업의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잘 이해 안되고, 교수님이 영어로 농담할 때는 무슨 말하는지 멍합니다."(무학과 학부 1학년생)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내에서 만난 학생과 교수들이 학교의 진정한 발전과 변화를 위해 저마다 가슴에 묻어둬왔던 것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총학생회 일부 학생들은 대자보에 성명서와 학우들을 향한 호소문을 붙이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경쟁을 넘어 꿈을 키워주는 학교를 원한다는 학부 총학생회의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KAIST 교수협의회에서는 이날 오후 교내 터만홀에서 긴급 의견수렴 모임을 갖고,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요구와 함께 총장의 학교 운영방식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사퇴 요구 의견 등을 취합했다. 현장의 학생들은 그동안 곪아있던 고름을 터쳐내듯 저마다 다양한 목소리들을 쏟아냈다. KAIST 학생들을 비롯한 이들 구성원들은 과연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현장 목소리를 취재했다.
 

▲대자보를 붙이고 있는 학부총학생회. ⓒ2011 HelloDD.com

다음은 KAIST 구성원들의 현장 목소리를 가감없이 담은 것이다.

◆ 제도 변화 필요 시급…"경쟁보다 화합할 수 있어야 한다."

"등록금 수업료가 없었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의 등록금 제도가 학생들에게 공부해야 한다는 의욕은 주지만, 동시에 '너 이번에 장학금 못 받으면 어쩌려고 그래' 식으로 주변 시선으로부터의 부담까지 받게된다. 학생들에게는 공부 말고도 대학생으로서 할 일이 많은데 공부만 하게 되니까 다양성을 찾을 길이 없지 않은가."(2학년 학부생)

"경쟁보다 화합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지금은 성적을 상대평가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서로를 눌러야만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다 같이 잘 하면 다 같이 점수를 잘 받는 체제가 돼야 한다. 학생들 사이에 경쟁이 심화될수록 화합이 어려워진다. 앞으로는 카이스트가 경쟁을 부추기기 보다는 서로 간에 화합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물리학과 3학년 학부생)

"재수강 제한을 풀어야 한다. 재수강을 할 수 있는 과목 수는 몇 개로 제한돼 있다. 재수강으로 학점을 이수할 때는 아무리 잘 해도 B+ 이상의 학점은 주지 않는다."(3학년 학부생)

"KAIST는 이공계 영재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이다. 등록금 혜택이 있어 그나마 영재들이 온다고 생각한다. 등록금을 낸다면 같은 성적이면 서울대에 가지 뭐하러 대전에 있는 KAIST에 오겠는가. 또한 대학에 들어올 때는 마음속에 나름 기대하는 대학생활이 있는데 성적 경쟁을 하다보면 친구조차 마음대로 사귈 수가 없다. 징벌제 등록금부과로 면학분위기는 조성될 수 있으나 대학에 와서도 고등학교 때처럼 성적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대학은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시기인데 그런 기회마저 만들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석사과정 대학원생)

"07학번으로 입학하면서부터 징벌제 등록금부과가 시작됐다. 제도에 대해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에서는 단점만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 제도로 학생들은 더 열심히 한다. 문제는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를 하면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적이 안나온다는 점이다. 이에 따른 박탈감이 커서 좌절하는 것 같다. 공부 부담으로 학부생들의 동아리 활동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예전같으면 선배로서 조언도 하겠지만 평가에서 밀리면 당장 등록금을 내야하는 상황이니 뭐라 말할 수도 없다."(석사과정 대학원생)

"학교 시험이 기초과정은 생략한 채 바로 어려운 내용을 가지고 평가를 하기 때문에 다소 부담이 된다. 특히 일반계고 학생들이 체감하는 어려움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똑같은 수업 내용을 듣고도 과학고 출신 학생들이 더 유리하게끔 평가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성적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부과하는 시스템 때문에 학생들이 부담을 느끼고 타 학교로 떠나거나 휴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고생을 배려하는 평가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KAIST 무학과 1학년)

◆ "우리 언어가 있는데 우리 말이 더 좋습니다,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세요."

"영어수업에 변화가 필요하다. 영어로 수업할 때 가끔 교수님들이 국어로 말씀하실 때가 있다. 그럴 때 교감이 잘 이뤄지는데, 특히 농담은 영어로 하시면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은데 국어로 하시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고 서로 생각을 공유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도 영어로 말씀하기 시작하면 갑자기 '아, 수업이구나'하는 답답한 느낌이 든다. 영어수업이 정보만 준다면, 우리말로 진행하는 수업은 정보에 가르침까지 줄 수 있다. 학생들에게 영어수업과 한글수업 두 가지 중에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줬으면 한다."(2학년 학부생)

"영어수업이 수업의 질을 떨어뜨린다. 교수님들도 다 영어를 잘 하시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한국말로 하면 강의를 잘 하실 텐데 영어로 하면 강의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3학년 학부생)

"영어강의의 효율성에 대한 논란이 많다. 강의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전달력과 이해력 모두 뒤떨어져, 수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다. 선택권을 줬으면 좋겠다."(익명 요청)

◆ 신뢰형성이 중요…"학생은 학교를 위하고, 학교는 학생을 위해야"

"신뢰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교는 학생들을 위하고 학생은 학교를 위하는 분위기 쇄신이 절대적이다. 1차 간담회 때는 그 점이 부족해 부정적인 의견과 방향으로 많이 치달았다. 학생들이 마치 학교를 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너무 짙다. 학교 측과 학생들이 서로 발전을 도모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점이 매우 안타깝다. 2차 간담회 때는 서로 간 신뢰가 쌓인 분위기에서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물리학과 학부생)

"학교나 학생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다. 다른 학교와는 달리 학생수도 적은 편이고 그래서 의견반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학교 인원에 비해 먼저 행동하고 나서려는 인원의 비율이 낮은 편이다. 학교에 시위를 해도 눈에 띄지도 않으며 학생들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총학생회도 존재감이 미미하다. 학교생활이 빠듯하다보니 대부분 저항보다는 순응하려든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학교 측에서 배려해 줘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전에 밴드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그 때는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아니 불가능하다. 이런 점이 개선되었으면 한다."(산업디자인과 4학년)

"KAIST 학생들은 애교심이 부족하다. 특히 연대, 고대는 자기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큰데, KAIST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동시에 학생들이 학교를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2학년 학부생)

◆ "즐거운 학교생활을 꿈꿉니다."

"아직 실감이 안난다. 지금 생활이 즐거운데 만약 성적이 안나와 등록금을 내게 된다면 아마 휴학을 할 것 같다. 대학생활도 즐기고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1학년 학부생)

"개인적으로 여유 있는 학교생활을 꿈꾼다. 좀처럼 여유가 없다. 다른 대학에 비해 커리큘럼이 다소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무학과인 지금 다양한 것을 배우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디자인 수업 같은 과목은 좀 뺐으면 한다. 새로운 물품을 우리가 직접 디자인하고 개발해야 한다. 디자인 수업은 기초필수로 지정돼 있어 안 들을 수도 없다. 물론 다소 개인차가 나겠지만 나는 이런 과목은 없었으면 한다. 인문학도 강의 목록에 있긴 하지만 다른 기초 필수 과목에 밀려 학생들의 많이 참여하지는 않는다."(무학과 학부생)

"KAIST 문화를 바꿔야 한다. 학생들 측에서 의식을 강하게 가져야 한다.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자기가 하기 나름이다. 꼭 제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화 자체의 개선이 필요하다."(2학년 학부생) "근본적 해결책은 '분위기 쇄신'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서 총장이 물러나 해결될 일이 아니며 우선은 교내에 활기가 돌아야 한다. 옛날에 비해 동아리도 줄었고 운동도 심적 부담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 학생들이 숨쉴 수 있게 학교 분위기 자체가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KAIST 3학년)

◆ "학생 관련 정책회의에 학생 참여 길을 마련해 달라."
 

▲KAIST 학부총학생회가 기자회견을 갖고 학생 요구안 관철을 촉구했다. ⓒ2011 HelloDD.com

안상현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지난 9일 서남표 총장에게 '대학원생들의 문제점과 현황을 알리고, 학교 측의 조속한 조치를 요구'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고, 학생 관련 정책회의에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총학생회장은 지난 3개월 동안 연이어 발생한 교내 대학생 자살 사건이 다른 학생들이나 심지어 대학원생들에까지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학교 측의 적극적 예방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메일에 따르면 그는 "서 총장이 지난 8일 있었던 총장 간담회에서 원론적인 대답으로 일관했다"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요구안을 서 총장에게 보냈다. 첫 번째 안건은 KAIST의 연차초과자 관리 제도다.

학생들의 연구 진도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고, 연구와 무관한 프로젝트나 과중한 랩 업무를 요구하는 등이 연차 초과의 근본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안 회장은 학교 측에 연차초과자 관리 제도의 폐지 혹은 제도의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했다. 인건비 및 기성회비 부과 역시 요구 대상에 꼽혔다.

지난해 부터 부과되고 있는 100만원 상당의 기성회비가 학생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 안 회장은 학생들의 연구 사기와 의지를 꺾는 기성회비 부과의 합당성과 향후 지속적으로 오르게 될 기성회 예산의 명확한 사용처 공개를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안 회장은 교학부총장 이하 각 처장과 학생대표들이 참석하는 학생관련 정책 최고자문위원회 설립을 촉구했다. 정책의 실제 적용자인 학생들의 의견이 정책 입안 시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KAIST 대학원 총학생회는 이들 세 가지 요구안을 본격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 회장이 KAIST대학원생을 대변해 미리 공지한 만큼 학교 측에서도 실질적 답변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KAIST 총학생회도 오는 13일 오후 7시 진행될 비상학생총회에서 '연차초과자 문제' '학교 정책 결정 과정 참여'와 '서 총장의 경쟁 위주 제도 개혁 실패 인정' 등의 내용이 담긴 학생 요구안을 관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인호 부총학생회장(기계공학과)은 "우리가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무한 경쟁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이겨야한다'는 개혁제도에 묻어 있는 근본적인 철학"이라며 "우리는 KAIST가 꿈을 키울 수 있는 학교로 거듭나길 원하며 교수님들과 함께 극복해 나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총학은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교육개혁가'로 불리는 서 총장은 KAIST의 교육 정책을 바꿨고, 우리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어가고 있다"며 "바로 옆의 친구가 힘들어해도 과제 때문에 삼십 분도 낼 수 없고, 숨 죄어 오는 무한경쟁에 등 떼밀려 하루하루 과제를 틀어막기에 바쁜 '톱니바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서 총장이 만든 틀에 맞춰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학문의 길을 이어나가는 '생각하는 존재'"라며 "서 총장의 교육 철학은 우리를 숨 막히는 막다른 길로 몰아가는 만큼 서 총장은 상처받은 학우와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KAIST 교수협의회도 이날 학교당국에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나섰다. 교수협은 11일 오후 1시부터 2시간 가까이 비상총회를 열고 채택한 '교수협에서 드리는 글'을 통해 "지금 KAIST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수협은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과 잠재능력을 살리지 못하는 교육제도가 오늘의 불행한 사태에 일조했다는 점을 부정하기 힘들다"며 "이러한 제도가 효율과 개혁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시행되는 것을 막지 못한 우리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역설했다.

교수협은 "우리는 개혁에 반대하지 않으며 개혁에는 고통이 수반됨을 잘 알고 있다"며 "지속적인 개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과 입장을 존중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며 최대한의 공통분모를 찾아내 발전의 방향을 찾아간다'는 원칙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협은 "자살이라는 극한의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안됐던 어린 학생들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했던 우리 교수들을 용서해 달라"면서 "이런 마음 아픈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부모의 마음으로 학생을 지도하겠다"고 약속했다.
 

◆ KAIST 교수협의회에서 드리는 글(전문)

최근에 발생한 충격적인 사실 앞에 우리 KAIST 교수들은 슬픔과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한 캠퍼스에 있으면서, 강의실에서 만나면서도, 자살이라는 극한의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어린 학생들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했던 우리 교수들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는 이 아픔을 함께 하겠습니다. 학생들은 우리 교수들의 존재 이유입니다. KAIST를 믿고 귀한 자녀를 맡겨주신 학부모님들께 우리는 참으로 죄인입니다. 우리가 학생들의 아픔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고 학생들을 보호하는 일에 적극적이지 못했음을 사죄합니다. 이런 마음 아픈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부모의 마음으로 학생을 지도하겠습니다. KAIST는 학교입니다.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키우는 곳입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배우고 창의적으로 연구하도록 키워주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획일성과 일방통행은 창의성의 적입니다.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과 잠재능력을 살리지 못하는 교육 제도가 오늘의 불행한 사태에 일조했다는 점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가 효율과 개혁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시행되는 것을 막지 못한 저희의 책임을 통감합니다. 우리는 개혁에 반대하지 않으며 개혁에는 고통이 수반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과 입장을 존중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며 최대한의 공통분모를 찾아내어 발전의 방향을 찾아 간다'는 원칙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KAIST 구성원 모두의 의견과 지혜를 모아 시급한 제도적 보완을 이루고 근원적 대책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덕넷 기획취재팀(JOESMY@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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