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한의학은 뭘 하는가요? 병 치료는 양의학이 하니까, 보약을 지어주는 정도인가요? 거기에 큰 연구비를 들일 필요가 있나요?"

필자가 연구원의 주요 사업을 추진하러 부처를 찾아갈 때마다 많이 듣는 이야기다.

얼핏 생각하면 그렇다. 실제로 우리는 질병이 의심되면 일단 양방 병원을 찾아간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약과 주사 처방도 받으며 필요하면 수술도 한다. 그러다 그러다 안되면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찾아가는 한의원을 두고 '4차 의료기관'이라 일컫는 씁쓸한 별칭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 뿐일까?

현재 세계의학의 흐름은 예방의학, 맞춤의학, 자연치료 크게 세가지 방향이다. 최근 들어 인공적으로 성분을 만들어내는 합성 신약은 전세계적으로 그 발굴이 크게 위축되었다. 안전하고도 효능 있는 성분을 찾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일단 안전성이 확보되는 천연물 신약의 발굴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나아가 천연물에서 성분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천연물을 통째로 가공하여 만든 건강식품도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바로 자연치료의 흐름이며 한약은 이에 부합한다.

유전자 연구가 결정적으로 활발해진 21세기 초반에는 같은 질병이라도 유전자형에 따라 치료제를 달리 쓰자는 맞춤의학이 적극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비록 아직 결정적인 성과는 없지만 모든 공산품이 다품종 소량 생산을 통해 소비자 맞춤형으로 흘러가는 추세에 비추어볼 때 의학 역시 그 방향으로 가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한의학은 수천년 전부터 이미 같은 기침 감기라도 체질에 따라 다른 한약을 쓰는 맞춤의학이다.

중세의 세균성 전염병은 위생과 영양 조건의 향상으로 더 이상 인류에게 큰 위협이 아니다. 지금 인류의 질병사 상위에 랭크되는 질병은 암과 대사성 질환이다. 대사성 질환이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심근 경색 등 불완전 대사로 인해 체내 영양물질이 과도하게 축적되어서 생기는 질병군을 이른다. 이들 질병군은 일단 발병하면 치료가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예방의 중요성이 더 높다.

'한약은 보약'이라는 뜻은 대개 절반만 이해하는 듯하다. 아이들 클 때 거름 한번 주듯이 먹이는 보약, 정력이 약해질 때 정력강화제로 먹는 보약, 육체노동 많이 하는 분들이 일년에 한번씩 먹는 보약, 산후에 몸조리하며 먹는 보약…등.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약은 그 사람의 면역력이 취약한 부분을 정확히 찾아서 보충해주는 것이고 그래서 다가올지도 모를 커다란 질병을 예방해주는 예방약이다.

한나라 때 '황제내경'의 음양론으로 보면 모든 생명체는 서로 반대되는 음과 양의 균형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이 균형에 변화가 올 때 병이 든다. 음양은 그늘(陰)과 볕(陽)이라는 뜻인데 음지와 양지가 바뀌고 밤과 낮이 교대되듯이 모든 생명은 두 기운의 변화와 균형으로 유지된다. 맥의 음양, 안색과 광택의 음양, 차고 더운 기운의 음양 등을 면밀히 살피면 장차 큰 질병이 다가올 것을 예측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맞춤 한약을 써서 다스린다.

유전자의 차이를 보아 맞춤 치료를 하겠다는 유전자 맞춤의학은 최근 들어 유전자 구조의 차이 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매우 적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세계 학자들을 당황케 하고 있다. 임상까지 가려면 갈 길이 한참 먼 것이다.

반면 한의학은 형태, 색깔, 소리, 맥과 같은 표현형의 차이를 음양론적 관점으로 분석해 맞춤치료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길은 매우 실용적이어서 이미 임상 현실을 갖고 있으나, 객관화된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대학 제도권 내의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발전이 더딘 것이다.

세계 의학계는 바로 이 시점에서 방향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의학이 기존의 틀 안에 머무를 것인가? 스스로 객관화, 표준화에 성공해 세계의학에 새로운 활로를 제시하며 미래 의학으로 발전해나갈 것인가? 그 길을 택한다면 어떻게 가야 하는가? 이는 과거와 미래 사이, 외줄 위에 서 있는 우리에게 던져진, 아무도 답을 가르쳐 준 적이 없는 스핑크스의 물음이다.

▲김종열 본부장 ⓒ2011 HelloDD.com
김종열 한국한의학연구원 체질의학연구본부장은 공학을 공부하고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연구하던 중 사상의학에 매료돼, 다시 한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8년간 임상을 통해 연구자료를 축적한 후,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이제마프로젝트를 통해 사상의학의 과학적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김 본부장은 한의학의 과거, 현재 및 미래와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정책과 연구과제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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