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 읽기]

이번 달에는 전 세계에서 뇌주간(Brain Awareness Week)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는 뇌 연구의 발전상과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 등을 알림으로써 뇌 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방편으로 매년 3월에 전 세계에서 개최되는 캠페인이다.

나라마다 상황에 맞춰 자유롭게 행사를 기획하는데, 신경과학 실험실 일일 공개, 전시회, 주제 강연 등 다양한 행사가 기획된다. 우리나라는 12일부터 19일까지 8일 동안 전국 11개 도시, 15곳에서 행사가 거행되었다.

세계 뇌주간 행사는 1996년 미국에서 처음 개최되었으며,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시작하여 이번에 10번째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세계 뇌주간 행사는 오늘날 뇌 연구의 위상을 보여주는 실례다. 혹자는 20세기 후반이 생명과학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신경과학의 시대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만큼 뇌 연구가 큰 진전을 기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가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다양한 뇌 조영술 덕분에 뇌의 구조와 기능, 신경의 메커니즘에 대해 과학자들의 이해가 크게 증진되고 있다.

자기공명영상(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의 발전된 형태인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과 구조적 자기공명영상(sMRI),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positron emission tomography) 등이 대표적인 뇌 조영술이다.

뇌 연구는 뇌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해를 바탕으로 치료를 겨냥하고 발전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이런 치료술은 향상(enhancement)의 수단으로도 활용될 것으로 예견된다. 신경약물 처치는 물론이고, 뇌에 대한 외과적 처치와 신경자극술이 단기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생명공학의 발전과 더불어 기대되는 신경이식술,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기술 등이 긍정적으로 전망되고 있다.

뇌 연구가 빠르게 진전되는 것과 발맞춰 그것에 대한 윤리적 논의도 새롭게 강조되고 있다. 이른바 신경윤리(neuroethics)가 등장한 것이다. 20세기 후반 생명공학 기술이 급속한 진전을 보이면서 생명윤리를 통해 이 기술과 관련된 주요 윤리적 문제들이 제기되고 검토되었다.

1990년대 중반 체세포 복제 기술의 등장은 생명윤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에 비하면 신경과학과 신경윤리는 아직 대중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하고 있다. 발전된 신경과학과 생명공학 가운데 신경과학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더 중대하고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유전자와 인간의 행동, 유전자와 인간의 사고 사이의 관련성은 간접적이며 분명하지 않다. 반면에 뇌와 인간의 행동, 뇌와 인간의 사고 사이의 관련성은 훨씬 더 직접적이고 긴밀하다. 더욱이 뇌에 인간이 기술적 수단을 동원해 직접 개입하는 길을 신경과학이 열어가고 있다.

그런 개입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빠른 속도로 증대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신경윤리, 즉 신경과학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 반드시 시급하게 필요하다는 말이 이해될 수 있다. 신경윤리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2002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5월에 미국에서 '신경윤리학: 영역지도 그리기'라는 제목으로 국제적인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신경과학, 생명윤리학, 철학, 법률, 유전학, 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신경윤리의 핵심 쟁점들을 논의했다.

유럽에서도 2002년에 영국왕립과학연구소(Royal Institution)의 후원 아래에 '신경과학의 미래'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개최되어 신경과학의 사회적 함의가 논의되었다. 2007년에는 신경윤리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전문적인 연구자들의 모임인 신경윤리학회(Neuroethics Society)가 결성됐다.

신경윤리학회가 2008년에 개최한 첫 번째 연례 학술대회에는 미국, 캐나다, 일본, 영국, 멕시코, 이탈리아 등지로부터 200여명의 연구자들이 참석했다. 또한 같은 해에 신경윤리의 쟁점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신경윤리학(Neuroethics)'이라는 학술지가 창간되기도 했다. 신경윤리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는 뇌 영상기술에 관련된 것이다.

뇌에 관한 믿음이, 우리 몸에 관한 어떠한 믿음보다도 강력한 상식적 기반을 갖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뇌를 읽어내는 기술은 마음을 읽어내는 기술로 오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통적으로 생명윤리에서 문제시되었던 프라이버시 문제가 신경윤리에서도 주요 문제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20세기에 들어와서 프라이버시 개념은 유전적 프라이버시로까지 의미가 확장되었고, 이제 프라이버시의 개념을 신경정보로까지 확장할 필요가 생겼다. 사실 신경정보는 유전정보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다.

개인의 유전적 특성이 곧바로 개인의 성격 특성이나 행동 특성을 설명해주지는 못하지만 뇌 신경정보는 매우 직접적이고 실제적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다는 것과 그의 대뇌 변연계가 어떻게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 사이의 상관관계는 쉽게 추측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뇌 신경구조에 어떤 비정상이 존재한다고 이해된다면, 그 사람의 개인 신경정보의 유출은 어떤 방식으로든 개인의 이익에 배치되는 방향으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뇌 영상 기술은 책임과 비난에 대한 일반적 관념에 대해 도전한다.

이 기술이 인간의 행동에 대한 결정론적 견해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책임은 자유가 수반된다. 반면 강제된 혹은 저항할 수 없는 조건에서 이루어진 행위에 대해서는 윤리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뇌 영상을 통해 감정 통제 및 조절 영역에 심각한 이상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사람의 행위에 대해 우리는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만일 그 사람이 대부분 감정 통제에 실패한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면, 결과적으로 비윤리적인 그의 행위에 대해 우리는 윤리적으로 비난하거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만일 그 사람이 통계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거나 조절하는데 실패할 확률이 90%를 넘는다면 그 사람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문책이 가능할까?

가능하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뇌를 읽어내는 기술 덕분에 이런 문제들에 쉽게 답하기 어려워졌다. 신경과학은 특히 우리 뇌의 신경과학적 향상(enhancement)과 관련해 심각한 윤리적 고민거리를 우리에게 던진다.

그런 향상에 대해 우리가 긍정적 태도로 수용해야 할지, 부정적으로 태도로 저항해야 할지. 향상 문제는 신경과학은 물론, 나노기술, 인간기계인터페이스(BMI), 생명공학 등 최첨단의 신생 기술들과 관련하여 가장 진지한 고민거리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문제가 될 것이다.

세계뇌주간 행사는 오늘날 뇌 연구의 진전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뇌 연구에 대해 과학적, 기술적, 의학적 측면을 고려하는 것 이외에 윤리적, 사회적, 법률적 시각에서의 성찰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더 읽어볼 만한 자료

Adina Roskies, 'Neuroethics for the new millennium', Neuron 35, 2002, pp21~23. Martha Farah(ed.), Neuroethics: An Introduction with Readings, MIT Press, 2010. Michael S. Gazzaniga, The Ethical Brain, HarperCollins, 2006(김효은 옮김, 윤리적 뇌, 바다출판사, 2009) Steven J. Marcus (ed.), Neuroethics: Mapping the Fiel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2. Walter Glannon, Bioethics and the Brain, Oxford Univ. Press, 2007. 이상헌, '인간 뇌의 신경과학적 향상은 윤리적으로 잘못인가', 철학논집 18집, 서강대학교철학연구소, 2009.
 

▲이상헌 교수 ⓒ2011 HelloDD.com
이상헌 교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전담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연구분야는 신생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논의,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기술의 대융합(공저)' '대학생을 위한 과학글쓰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읽기'를 타이틀로 신생과학기술들을 윤리적 관점에서 되새겨 보며 인간의 행복 증진을 위해 최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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