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총깡총, 우리는 이렇게 뛴다-⑮ KIST 편]
"작가, 배우, 연출 따로있듯 연구도 아이디어, 분석, 실험으로"

"드라마는 작가, 연출, 배우가 따로 있지만 연구는 그렇지 않다. 우리 연구원만해도 연구자가 아이디어를 내고, 분석하고 실험한다. 세분화하면 연구 효율성이 높아질 것 같은데 연구자 입장에서는 그게 또 쉽지 않다. 그러나 원장이 되면 꼭 실현하고 싶었고 아직 그 꿈을 포기 못했다."

지난해 12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원장으로 취임한 문길주 박사의 포부는 의외로 드라마 제작을 책임지는 연출자다. 물론 그 드라마는 연구 프로젝트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점에서 TV드라마와 다를 뿐이다.

1966년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소 중 최초로 설립된 연구소 KIST는 지난 40여 년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등 약 20개 가까운 전문 연구소를 분가시켜 왔다. 과학인재의 산실로서도 위치는 확고하다.

그동안 4000여 명의 석·박사급 과학자를 키워냈다. 한마디로 출연연의 맏형급인 셈이다. 취임하고 약 4개월이 지난 문길주 원장. KIST의 수장을 맡으면 어떤 도전을 하고 싶었냐는 질문에 연구도 드라마처럼 분석과 실험, 아이디어를 나눠서 하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는 게 제1성이다.

드라마를 위해 연출과 코디 작가 배우가 따로 있듯, 연구도 '아이디어'를 내고 '연구'하고 '분석'하는 팀을 따로 두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대형과제의 경우 세분화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분화 연구시스템이 자리잡기 어려운 이유는 누구나 다 자기가 주연을 맡고 싶어 하고 또 성과를 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연구가 주연일 수밖에 없고, 아이디어와 분석은 보조가 되는 관행 탓에 누구나 연구 책임자를 하고 싶어하고 결국은 다 맡아서 하게 된다는 것. 문 원장은 도핑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마약을 했는가 안 했는가를 실험하는 도핑은 매우 중요한 연구 중 하나다.

그러나 도핑을 주제로 연구하는 연구진들은 일을 하기 매우 힘들어 한다. 도핑은 성과가 나오기 힘든 연구이기 때문이다. 그는 "외국 연구소나 기업 연구소는 세분화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세분화 연구체제가 갖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라면서 "사회가 다양하기에 세분화 연구가 맞다, 안 맞다 말할 순 없지만 아직도 그 꿈을 갖고 있고 포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연구도 융합으로…"KIST 산하 융합연구소 세울 것"

"종합연구소로서 KIST의 장점을 살린 융합 연구소를 추진하고자 한다. 한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원은 이를 해내기 어렵다. KIST연구자뿐 아니라 외부 연구자와 교수, 외국 랩(Lab) 연구 주체들과의 연계를 통해 KIST에 전문 특화된 연구소를 만들겠다"

KIST는 지금까지 한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들을 배출시켰지만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융합을 연구와 접목시켜 종합연구소의 장점을 살린 새로운 형태의 작은 연구소를 탄생시키려 한다. 일례로 연구를 하다 보면 BT(바이오기술)와 IT(정보통신기술)가 접목된 분야가 필요하기도 하다.

로봇은 기계공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앞으로 로봇은 사람이 느끼는 것을 감지하고 생각하며 판단해야 하므로 BT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문 원장은 "KIST 산하에 전문적이고 특화된 융합연구소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한없이 많이 만들 순 없지만 몇 년 내 5~6개 정도의 전문연구소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나름대로의 전망을 내놓고 있다.

"KIST가 45살이 됐다. KIST가 이제 국가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바람직한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머리역할도 해야 한다. 융합연구소는 종합적으로 다방면을 볼 수 있기에 그 역할을 하기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름만 전문연구소일뿐이지 연구부와 똑같은 역할을 수행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그는 "연구소와 연구부는 확연한 차이를 둘 것"이라고 다짐한다.

문 원장은 각 전문연구소장에게 평가와 과제 선정 등에 대한 책임권한을 줄 계획이다. 즉 자율적인 연구환경을 제공하되 책임도 엄격하게 묻겠다는 것이다. 그는 "각 연구마다 자체 구성원이 다르고 시스템 자체도 다를 수 있다. 때문에 연구와 연구진에게 맞춘 평가 시스템과 과제 선정 등이 가능하도록 연구소장에게 모든 권한을 맡길 것"이라며 "획일적이 아닌 고유의 평가 목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 "국과위 민간R&D인력 적어도 미래관과 소견 있다면 문제 없어"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인력 구성이 애초 예상했던 민간·대 공무원 비율 5대5가 아닌 3대1수준(민간이 1)으로 밝혀지면서 과학기술계는 요즘 과학정책이 관료주의 문화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에 빠져있다.

그러나 문 원장은 "30명, 50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 3명이라도 소견과 미래관이 있고 창의관과 지혜가 있는 사람으로 구성된다면 충분할 것"이라며 때이른 걱정이라는 의견을 비춘다. 그에 따르면 국과위 공무원들도 과학기술에 대한 식견과 생각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될 것이며, 아직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무원 수가 많다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엔 이르다는 것.

추후에 그 가설(3대1 비율)이 틀린 것을 드러났을 때 반발해야지 무조건 숫자로만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현실적인 문제로서 연구자들이 출연기관에서 지속 연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신경써 주길 부탁한다.

"출연기관의 많은 사람들은 5~10년 후 직장을 학교로 옮기는데 정부는 교수들이 출연기관으로 돌아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면서 "어떻게 해야만 교수로 이직한 박사들이 출연연으로 되돌아올지는 정부가 잘 알 것이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과학기술은 우리나라의 보험이고 성장동력"이라며 "출연연이 잘 돼야 젊은이들이 연구하고 싶어질 것이다. 과학 꿈나무들에게 과학에 대한 꿈을 주어 이공계 기피 현상을 없애자"고 덧붙였다.

문 원장이 마지막으로 KIST 구성원을 위해 힘쓰겠다는 말을 잊지 않은 것은 자신이 지금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잘 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KIST 고객은 우리 연구원이기도 하다. 연구원들이 맘 편하고 건강하게, 창의성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임무인 만큼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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