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명장은 국가의 보물②]'질량표준 전문가' 정진완 표준연 박사
과거엔 저울 사러 22시간 비행기 타고 스위스行…"지금은 편한셈이죠"

m(길이), kg(질량), 켈빈(온도), 초(시간), 암페어(전류), 몰(물질), 칸델라(광도). 전세계 인류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기본 단위 7개다. 이들 7가지 기본 단위 중 ㎏은 유일하게 인공적으로 만든 원기를 표준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물리적 현상의 실현 방법에 관해 정의를 내릴 때 반드시 요구되는 기본 단위들 가운데 6가지와 달리 kg은 변화의 가능성이 크다는 게 늘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m의 경우도 처음에는 kg과 같이 가공 물체를 표준으로 삼았지만, 지난 1983년 '빛이 진공에서 29979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길이'로 정의가 바뀌었다. 인공 원기의 경우 물리적 특성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오류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것이다.

최근에는 m에 이어 kg의 정의를 새롭게 바꾸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 도량학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당연히 국내 학계에서도 kg 정의를 위한 기본 전제인 질량표준계가 모두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1986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김명수)에 들어간 정진완 질량힘센터장은 26년간을 질량표준계에서 한 우물만을 파 온 전문가. 전세계 과학계의 최근 움직임을 감안한다면 그에게 주변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정 박사를 만나자마자 듣게된 첫마디는 너무나 교과서적이다. "질량의 기준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중력의 계산에 중요한 오차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미세한 차이는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정 박사는 "1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kg 원기와 각국에 보관된 보조 원기들 사이에 조금씩 오차가 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현재까지 "약 ±50마이크로그램(㎍) 정도의 오차가 생기고 있다"고 현황을 설명해 주었다. 50그램도 아닌 50마이크로그램이라니, 아니 그정도 가지고 웬 난리?라는 게 우리네 문외한들의 일차적인 반응이겠지만 사실은 그게 보통 난리가 아니란다. 그럼 지금부터 왜 그런지를 그리고 그의 존재가 왜 요구되는지를 들여다 보기로 하자.

질량표준의 신(新)정의와 관련해서는 표준연에서도 얼마전부터 긴박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부터 기획팀이 꾸려졌다. kg의 신정의에 대한 특별기획팀이다. 하지만 연구방향은 선진국의 흐름과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구개발 쪽으로는 그들 나라와 비교해 시설이나 투자 면에서 턱없이 모자르기 때문에 아이디어 쪽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에서다.

정 박사는 이런 방향 설정에 대해 "다른 것을 카피해서는 의미가 없다. 우리만의 모델을 디자인해서 발표한다면 연구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현재는 기획 보고서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기술로는 질량표준계의 기준 설계가 한계점에 와 있다. 게다가 선진국 역시 한 계단을 올라가기 위한 투자를 계속 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있을 정도다. 정 박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왜 보통 난리가 아닌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일 앞서 있는 곳은 미국 표준기술원이다. 그곳에서 나온 표준을 국제적으로 인정하게 되면 모든 값은 그곳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선진국들은 적어도 2개 이상씩의 측정 방법을 연구·실험 중이다. 그래야 비교를 할 수 있고, 불확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표준을 확립할 때는 적당히라는 자세야말로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국제 수준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확립을 한 후에도 계속 불확도를 적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가다. 새로운 정의 역시 물론 신경써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로서는 국내 산업에 미치는 역할이 크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된 R&D를 주로 진행하고 있다"고 주변 사정을 전했다.

◆ 국내 질량표준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까지…"국가 브랜드 가치 높였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국내에서 만들어낸 질량표준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제도량형국 웹사이트에 등록이 되려면 상호인정협약에 의해 ISO 17025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표준연의 경우 다른 길을 택했다. ISO 9001 품질 시스템에 대한 인증을 받고, 기술적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해외 표준기관의 전문가를 초청해 직접 평가를 받았던 것(피어 리뷰). 결국 2001년에 평가를 받고 2004년 7월에야 정식으로 등록할 수 있었다.

"등록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국가의 질량표준 수준이 어디까지 와 있다고 하는 것을 전 세계에 공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정보를 올리려면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하고, 샘플을 가지고 각 나라의 표준기관들과 비교 측정도 해야한다"며 "그 결과를 가지고 서로 얼마나 일치되는지, 실질적인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

이런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그는 뜻밖의 일로 심각한 좌절의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스승이나 다름없던 실장의 급작스런 죽음이었다. "사실 실장님이 모든 것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갑자기 그분이 돌아가셨다. 그 때문에 얼떨결에 내가 모든 것을 이어받아 준비를 도맡아야 했다." 이어 그는 "등록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기 때문에 실장님이 살아계셨다면 아마 무척이나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지우지 못했다.

정 박사가 나중에 질량표준계 국제자문위원에도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런 시련들을 하나하나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국제자문위원의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증거들이 많이 필요하다. 국제적인 논문 수준이라든지 기술 발표 등이 그것이다"며 "이렇게 해서 13번째로 가입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현재까지 22개 기관이 등록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표준연이 대표로 가입돼 있다"고 전했다.

정 박사가 국제자문위원이 된 것은 연구원의 입장에서도 큰 수확이었다. 우리나라의 수준이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큰 성과는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선진국과 함께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 박사에 따르면 표준과학의 경우 '그들만의 리그'가 심화돼 있는 연구 분야로, 상위국 안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의 노력과 투자를 요구한다.

물론 오늘의 영광 뒤에는 불만 가득했던 어제가 있었다. 표준과학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지난 오랜 세월 우리나라는 장비도, 투자도, 인력도 글로벌 수준에 미치질 못했다. 장비의 경우는 직접 개발하기가 쉽지 않아 새로 개발된 장비들을 도입해 활용하는 식으로 사용해야 했다. 국산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작은 부품의 고장에도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됐다.

"국제적 논문을 쓰려고 해도 모든 것들이 선진국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니까 논문을 쓰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국제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며 "인고의 시간이 흐르고 많은 이들의 노력이 축적되면서 겨우 국제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수준이 됐고, 또한 해외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면서 투자도 뒤따를 수 있었다. 새로운 장비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바탕이 있었기에 우리의 아이디어를 집어 넣어 우리만의 결과를 낼 수 있게 됐다."

그는 "이제는 우리나라도 국제 행사를 주관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와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의 경우 개발도상국이 많기 때문에 우리의 표준 값을 기준으로 지정할 수도 있다"며 "싱가폴, 인도, 태국 등이 우리와 협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저울 사러 22시간 비행기타고 스위스行…"지금은 그냥 웃어요"

정 박사의 전공은 원래 전자 쪽이었다. 처음 표준연에 들어와 맡은 미션도 전자 저울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만들지 못하는 저울을 기존에 나와있는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 내야했다. 200g에 최소 눈금이 1mg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산화에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선진국에서 완료해 놓은 성과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뭘 한다고 하면 가격을 치고 들어와 연구개발을 방해하는 주변국의 관행이 똑같이 반복됐고 연구팀은 결국 쓴 잔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표준이 국제적 수준이 되지 않는한 산업현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기도 쉽지 않다. 재료를 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정 박사는 "모든 재료를 구하러 다니는 데에도 특성을 정확히 모르니까 어려움이 많았다. 시장이 형성돼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선진국에서 만든 시작품을 가지고 개발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표준연에 들어오고 2년 뒤, 그는 국내 질량 표준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저울을 사러 스위스로 날라간 적이 있다. 당시의 국제 정세는 러시아와 중국의 영공으로 항공기가 지나가지 못할 때였다. 때문에 그는 11시간 소요 거리를 무려 22시간이나 걸려 스위스에 다녀왔다.

정박사는 "꼭 사가지고 와야 국내 질량 표준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는 생각만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22시간을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너털웃음을 지었다.

현재 정 박사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피어리뷰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일본과 중국, 인도네시아, 대만 등에 과거 연구 경험이나 기술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연구원 차원에서도 개발도상국의 인재들을 불러 교육을 시키고 있다"며 "이런 사업을 통해 동남아시아에 있는 표준기관에서 한국표준연의 위상이 많이 올라가 있다."

그는 "질량표준에 대해서는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실 별로 없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과 표준연이 전부인 것 같다"며 "함께 일하는 모든 분들이 전문가다. 앞으로도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과 질량표준 불확도를 줄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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