科技 정책은 5년대계?…"연구현장-정부 불신의 골 깊어져"
정권 차원 넘어 국가 차원에서 출연연 변화 이끌어 내야

정부의 출연연 개편안이 실체는 드러나지 않은채 그림자만 보이는 상태에서 과학기술계는 흔들리고 있다. 연구현장에서는 우리의 과학기술은 백년대계는커녕 십년대계라는 말조차 부끄럽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재 거론되는 출연연 개편안이 한국 과학기술 미래를 위해 무슨 이득이 있는가."
"과학기술자들 스스로도 출연연의 구조조정과 변화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데 왜 현장과 소통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들어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출연연 개편과 관련해서는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며 안타깝다."

최근 만난 출연연 기관장들과 현장 과학기술자들은 일방적이고 성급한 출연연 구조개편 움직임에 이명박 정권의 과학기술 진흥 의지에 강한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오는 9월 출연연 개편안에 대한 국회 입법 로드맵도 거론되는 가운데 출연연 조직이 통폐합될 상황에 놓이면서 이에 대한 우려감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

정권 차원에서 출연연들을 손보기 위해서는 이번 정기국회가 중요하다. 올해 정기국회를 넘기고 내년에 처리해야 하면 임기 막바지기이기 때문에 사실상의 출연연 개편은 물건너 가는 셈.

때문에 이달 중에 관련 법령 정비와 공청회,법령 개정안 국회 송부 등의 작업을 마쳐야 한다. 현재로서는 15~20일 사이 공청회, 20일 이후 9월전 국회 송부 등의 일정이 예상된다.

현장에서는 출연연 개편안 추진에 대해 논의와 추측만 무성하고, 이에 대한 소통이 전혀 없다보니 정부와 연구현장 사이 불신과 갈등의 골만 깊어지는 양상이다. 청와대와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일부 연구기관장과 과학자들을 만나 의견수렴을 하고 있지만 출연연 개편 공감대 형성이 쉽지만은 않다.

출연연 구조조정은 이미 80년대 이후 정권 교체시마다 숱하게 추진됐던 일. 지난 정권에서도 출연연 연구 활성화를 이유로 ‘전문연구단’ 도입을 놓고 과학자들 마음을 흔들어 놓다가 없던 일로 했던 트라우마가 과학자들 마음에는 아프게 남아있다. 그 상황이 정권 후반기가 되면서 이번 정권에서도 반복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과학기술자들은 망연자실한 마음들이다. 정권 책임자들은 출연연을 흔들어 놓은 뒤 매번 바뀌고, 정작 출연연만 이래저래 휘둘리니 가해자는 매번 바뀌는 가운데 피해자는 똑 같은 사람으로 이런 상황이 정권마다 반복되니, 무기력증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연구현장에서는 이같은 출연연 개편의 졸속 추진이 국가와 한국 과학기술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열린 토론을 통해 과학현장의 의견을 정부측에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신들만이라도 토론회를 열 계획을 밝히고도 있다.

연구현장의 바람은 의외로 간단하면서 소박하다. 충분한 소통을 통한 자율적 변화다. 오히려 과학기술자들 스스로 출연연의 변화를 부르짖고 있다. 연구소의 변화 필요성을 공감하고 반드시 이뤄내야 할 사안이라 진단하고 있다. 정권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과학기술계를 바라보면서 출연연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정부와 연구현장은 현재 무엇이 진정 국가 과학기술계를 위한 길인지 깊은 성찰과 소통이 필요하다. 정부출연연은 대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70년대에 만들어졌다. 1인당 국민소득 1천달러 시대에 만들어진 출연연의 역할을 2만달러 시대에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도 변화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그 공감의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다음 세대, 더 나아가서는 백년대계로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한국 과학으로 만들려는 지혜가 정말 아쉬운 시점이다.

정부는 시일에 쫓겨 정권마다 반복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고, 진정으로 한국 과학기술의 신화 창조를 위해 현장과 더욱 소통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안부터 정확히 내놓고, 이를 기반으로 과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지지를 받아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 수 없는 개편안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갖고 움직이기를 현장에서는 소원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정권의 장래가 아닌 국가의 미래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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