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곽재원 중앙일보 중앙종합연구원장

일본의 제94대 총리에 오른 간 나오토(63)씨는 동경공업대학 응용물리학과를 나와 4년간 특허사무소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이때 그는 변리사 자격증을 땄다. 일본 총리로는 처음있는 일이다. 세계적으로도 지금까지 변리사가 국가 수장이 된 경우는 없을 듯(?) 싶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마작 점수계산기'를 발명해 특허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 특허를 게임기 메이커인 닌텐도에 넘겼지만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시장에 나오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시민사회 운동권으로 들어가 활약하다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하지만 그의 생각과 행동의 바탕에는 늘 과학주의와 현실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 정치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는 이른바 3점 세트(지반, 간판, 가방) 즉, 백 그라운드와는 전혀 무관한 샐러리맨 가정 출신이다. 정치 2세· 3세가 거의 총리를 독점해온 일본 정치풍토에서 서민재상이 출현한 것은 엄청난 이변에 속한다. 그는 시민운동출신이지만 처음부터 이데올로기와는 관계가 없었다.

1946년 전후 소위 단카이세대(團塊: 2차대전전 세대와 그 후의 50년대 세대에 걸쳐 있는 독특한 중간세대로 70년대이후 일본경제발전의 핵심을 담당했으며 미국에서는 전후 베이비 붐 세대에 해당한다)로 동경공대에서 학생운동에 깊이 관여 했음에도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처음부터 회의적이었다.

지난 77년 집권당 자민당과 야당 민주당이 대토론회를 열었을 때 30세의 젊은 간 나오토는 "자민당도 민주당도 필요 없다. 시민이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고 일갈해 정치인들을 놀라게 했다. 성향이 비슷한 민주당의 편을 들었을 법도 한데 그는 자기 소신을 피력한 것이다.

그는 여성지위향상에 초창기 정치역량을 집중시켰고 중년이 되어 후생장관(한국의 보건복지관련 장관)에 올랐을 땐 에이즈치료약의 부작용을 공무원들이 은폐한 사실을 조사해 전 국민에 까발리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게 하는 계기가 된 유명한 사건이다. 그의 저서 '대신(장관)'은 일본을 폐색국면으로 몰고 온 관료민주주의를 진정한 정치중심의 의회민주주의로 바꾸려면 장관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장관에 어떤 역할이 필요한 지를 경험을 바탕으로 적시한 '현대 장관론'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만년 여당 자민당의 아성을 깨고 민주당을 집권당으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역시 공대출신인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아래서 신설된 국가정책 총괄부서인 국가전략장관을 맡았고 이어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8개월여 사이에 겪은 일이다. 당당하게 등장했다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진 하토야마와는 달리 그는 7전8기의 도전정신이 있어 이번에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들이 있다.

하토야마까지 총리가 최근 4년동안 4명이나 바뀌었다. 변리사 총리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민주당 정권이 출범하면서 추진해온 과학기술정책 의 변화다. 그 핵심은 자민당시절 유지해온 종합과학기술회의(한국의 국가과학기술회의)를 명실 공히 과학기술정책 사령탑으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 계획을 이달 중에 발표할 ‘신성장 전략’과 맞물려 추진할 심산이었다. 게다가 총리실에 있는 ‘IT전략본부’ 와 ‘지적재산전략본부’를 종합과학기술회의에 통합시켜 ‘국가과학기술전략회의’로 한다는 계산이었다. 이 아이디어도 실은 간 나오토 총리한테서 나온 것이다.

그동안 종합과학기술회의가 각 성·청의 관료들이 만들어 온 정책을 미세조정하는 역할 밖에는 못했으나 새로 만들 국가과학기술전략회의는 총리주도의 사령탑으로서 과학기술정책과 국가 이노베이션 전략을 일체화 시키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일본 과학기술계는 간 나오토 총리가 릴리프가 아닌 본격파 투수로 21세기 과학기술정책을 진두지휘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학원투쟁과 시민운동을 거친 변리사 간 나오토 총리의 행보는 현재 과학기술정책과 행정 거버넌스 시스템을 바꾸려는 우리에게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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