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나무들] 글 : 고규홍 나무 전문 칼럼리스트

아까시나무 꽃 향기, 손에 잡힐 듯 길가에 무너지더니, 어느 새 하나 둘 떨어집니다. 지난 해에는 이 아까시나무에 황화현상이라는 이상이 생기면서, 꽃이 제대로 피어나지 않았는데, 올해는 곳곳에서 잘 피어나 다행이었습니다.

실제 가치 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나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아까시나무입니다. 어쩌면 잘 자라는 나무라는 이유가 이 나무를 홀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리느냐보다 어떻게 죽이느냐는 질문이 더 많은 게 사실일 정도이니까요.

특히 조상의 묘 근처에서 자라는 아까시나무가 무성하게 퍼져서 골칫거리라는 이야기, 자주 듣지요. 하지만 아까시나무 만큼 우리네 삶에 그리 고마운 나무도 흔치 않을 겁니다. 여러 고마움 가운데에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양봉업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꿀 가운데 70%가 넘는 분량을 바로 아까시나무 꽃에서 채취한다고 합니다.

'아카시아 꿀'이 바로 아까시나무 꽃에서 채취한 꿀이지요. 아까시나무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은 그 뿐이 아닙니다. 아까시나무의 뿌리에는 질소 고정 박테리아가 있어서, 황폐한 땅을 비옥하게 하는 데에는 요긴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쟁 뒤, 산림녹화 사업의 첨병 노릇을 한 대표적인 나무이지요.
 

▲꽃아까시나무가 보랏빛을 뽐내며 활짝 피었다.  ⓒ2010 HelloDD.com

위의 사진들, 조금 헷갈리시지요? 이 꽃도 아까시나무 종류의 나무에서 피어난 꽃입니다. 아까시나무는 하얀 꽃이 대부분이어서 이처럼 보랏빛을 띤 꽃을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이 꽃은 꽃아까시나무(Robinia hispida)라는 나무의 꽃입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꽃은 빛깔만 다를 뿐, 생김새는 아까시나무 꽃과 다를 게 없습니다. 흔하디 흔하게 보는 아까시나무 꽃이 이처럼 보랏빛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니, 더 예쁘지 않으신가요? 꽃아까시나무는 아까시나무(Robinia pseudo-acacia)와 같은 콩과에 속하는 친척 관계의 나무입니다.

두 식물의 학명 Robinia 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아까시나무의 이름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네요. 아까시나무를 흔히 아카시아라고 부릅니다만 이는 잘못입니다. 아카시아나무(Acacia) 종류의 나무는 열대지방에서만 자랍니다. 온대 기후인 우리나라에서는 자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도감을 보면 아카시아나무는 꽃도 노란 색이어서, 우리가 지금 말하는 아까시나무와는 전혀 다릅니다.
 

▲옹기종기 피어있는 가침박달(Exochorda serratifolia). ⓒ2010 HelloDD.com

아까시나무의 잎이 아카시아나무의 잎을 닮았다고 해서 학명에 acacia 가 붙은 것 뿐인데, 그게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 잘못 불러진 것이었습니다. 아까시나무의 학명에 있는 pseudo 는 '가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가짜 아카시아나무'라고 불러야 맞는 거죠. 학명에 '이 나무는 아카시아나무가 아니다'는 뜻이 새겨져 있는 셈인데 거꾸로 우리는 이 나무를 아카시아나무라고 부르는 겁니다.

워낙 오랫동안 우리가 아카시아 나무라 불러온 바람에 이제 와서 고치기가 참 어렵게 됐지요. 하긴 어릴 때 흔히 부르던 동요 '과수원 길'의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었네'라는 노랫말을 '아까시나무 꽃이 활짝 피었네'라고 부르려니, 어울리지도 않고, 우스꽝스러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잘못이라는 걸 알고, 차츰 바로잡았으면 싶습니다. 아까시나무의 한 종류인 위의 꽃아까시나무는 크게 자라는 나무는 아닙니다. 잘 자라야 2미터 정도까지 자라는 나무인데, 우리 수목원에 이 꽃아까시나무가 곳곳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흰 꽃잎속 노란 수술이 상큼함을 더해주고 있다. ⓒ2010 HelloDD.com

꽃아까시나무의 보랏빛 꽃 사진 아래로 이어진 다섯 장의 하얀 꽃 사진은 가침박달(Exochorda serratifolia)입니다. 하얀 색 꽃이 특별한 건 아닌데 가만히 보자니, 유난히 상큼한 분위기입니다.

이 사진은 보름 쯤 전인 지난 5월 17일 오전에 촬영한 것인데, 어제 보니, 이토록 화려하던 꽃이 다 떨어지고, 겨우 한 송이만 간당간당 남아있더군요., 떨기나무인 가침박달에서 꽃은 가지 전체에 상큼하게 피어납니다. 꽃이 한창일 때 가침박달 주변의 여느 나무도 이 나무의 아름다움을 넘보지 못합니다. 가침박달이라는 이름도 재미있습니다. 우선 뒤의 박달은 박달나무에서 온 것이지요.

박달나무는 단단한 나무잖아요. 가침박달도 박달나무 못지 않게 목질이 단단하기 때문에 붙인 것이지요. 앞의 '가침'은 뭘까요? 아리송한 이름입니다. 여자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바느질에 '감침질'이라는 것 있지요? 남자들도 학교 때 '실과'라는 과목에서 배운 적이 있을 겁니다. 바로 그 감침질의 '감치다'에서 따온 말입니다. 이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가 마치 감침질을 한 것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다섯장의 꽃잎을 가진 가침박달은 가지 끝에서 작게는 3송이에서 많게는 6송이까지 피어난다. ⓒ2010 HelloDD.com

우리 수목원의 가침박달은 큰연못과 엣 사무실 사이의 화단 가장자리에 있습니다. 말채나무가 우뚝 서있는 바로 옆입니다. 낮은 키의 나무가 온통 하얀 꽃송이를 매달고 있어서, 누구라도 멈춰 서서 바라보게 되는 나무이지요. 가까이 다가서서 꽃송이 하나하나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나무의 진짜 아름다운 모습들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좀 소박한 듯한 모양인데, 그 하얀 색이 정말 우리네 심성을 꼭 닮았습니다. 하얀 색으로 4월부터 우리 산과 들에서 피어나는 가침박달의 꽃은 가지 끝에서 작게는 세 송이, 많게는 여섯 송이까지 모여서 피어납니다. 꽃 한 송이는 다섯 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지는데, 꽃잎 하나하나가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습을 했지요. 안쪽이 뾰족하고 조금 성글어 보입니다. 그 때문에 드러나는 약간의 빈 틈이 오히려 더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꽃 한 송이는 3~4센티미터 정도 되고, 암술 다섯 개와 스무 개가 넘는 수술이 가운데에 모여 있습니다.
 

▲멀리서도 흰 꽃잎들이 눈에 띈다. ⓒ2010 HelloDD.com

우리나라 토종 식물인 가침박달은 그리 흔한 식물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희귀식물로 분류되는 건 아닙니다. 가끔 보도되는 기사에서는 가침박달을 세계적 희귀종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좀 과장입니다. 산림청에서는 '약관심종'으로 분류하고 있으니, 아직 멸종 위기를 맞이해 보호에 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개체 수가 그리 많지 않으니 관심을 갖고 보호해야 할 나무이기는 합니다.

지난 해 겨울에는 경북 안동 지역에서 국내 최대의 군락지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가침박달은 주로 우리나라의 중북부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이고, 남쪽으로는 전라북도의 임실 지역까지 자랍니다. 임실의 관촌면 덕천리에는 가침박달 자생 남한지(南限地)로서 천연기념물 제387호로 지정된 군락지가 있습니다. 또 충북 청주의 절집 화장사에서는 해마다 가침박달 개화기에 맞춰 가침박달 꽃 축제를 열기도 합니다.
 

▲가침박달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듯 한 모양을 하고 있다. 2010 HelloDD.com

여름이라고 꽃이 없는 건 아닙니다. 여름에도 봄 못지 않게 많은 꽃들이 피어나지요. 이 여름에 피어나는 꽃들에는 흰 색이 많습니다. 녹음이 짙어지면 꽃을 피워도 새들이나 수분곤충의 눈에 잘 안 띄기 때문에 대비가 강한 흰 색으로 꽃을 피우는 게 식물에게 유리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침박달의 꽃 뒤에 이어지는 자잘한 꽃 역시 녹음이 짙어지는 초여름에 하얀 꽃을 피우는 나무 가운데 하나인 덜꿩나무 종류입니다.

덜꿩나무는 비교적 생소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황해도 이남, 즉 우리나라의 남한 지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우스꽝스럽게도 들리고 괴팍하게도 보이는 덜꿩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들에서 사는 꿩의 먹이가 된다 해서 붙었다고도 하고, 옛날에 땔감으로 쓰던 나무여서 땔감나무로 부르다가 이름이 바뀐 것이라고도 합니다만,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덜꿩나무의 한 종류로 가을에 잎 지는 활엽수의 낮은 키 나무. ⓒ2010 HelloDD.com

우리 수목원의 이 나무 앞에 세운 표찰에는 [가죽잎덜꿩나무 '바리에가툼' Viburnum rhytidophyllum 'Variegatum']이라고 돼 있습니다만, 이는 편의상 부르는 이름이지, 공식적으로 인정된 이름은 아닙니다. 그냥 덜꿩나무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같은 종류의 Viburnum 에 속하는 식물은 세계적으로 1백50종 정도가 있는데, 우리의 덜꿩나무나, 우리 수목원의 가죽잎덜꿩나무나 모두 그 종류의 하나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선 우리 식물인 덜꿩나무에 대해 알아보지요. 인동과에 속하는 식물 가운데 하나인 덜꿩나무(Viburnum erosum) 는 가을에 잎 지는 활엽수의 낮은 키 나무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저절로 자라는 나무로 대개는 햇살이 적당하게 드는 숲의 가장자리의 길섶에서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5월부터 꽃이 피는 이 나무는 잘 자라면 5미터 정도까지 자라는 나무이지요.
 

▲5월부터 꽃이 피는 이 나무는 잘 자라면 5미터 정도까지 자라난다. ⓒ2010 HelloDD.com

우리 수목원에서 자라는 Viburnum 종류의 나무 가운데에는 3월 쯤부터 피어나는 종류도 있습니다.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 역시 같은 흰 색이기는 합니다. 자잘하게 작은 꽃송이들이 무더기로 모여 피어나는 것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같은 종류의 나무이지만, 잎사귀에서는 다양한 차이를 보이는 것도 이 나무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확하게 나무를 구별(정확히는 '동정(同定)'이라고 하지요)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일테면 덜꿩나무와 가장 많이 비교하기도 하고, 가장 헷갈리기 쉬운 나무가 가막살나무인데, 역시 잎의 모양이 동정의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물론 가막살나무도 Viburnum 의 한 종류이기도 하지요. 사진으로 보여드리는 우리 수목원의 덜꿩나무 종류의 경우도 잎사귀가 덜꿩나무와 다릅니다.

덜꿩나무의 잎은 가장자리에 톱니 모양의 거치가 있지만, 가죽잎덜꿩나무라고 이름붙인 우리 수목원의 덜꿩나무 종류는 잎 가장자리가 매끈하지요. '가죽잎덜꿩나무'라는 것도 그렇게 잎의 특징을 놓고 붙인 이름입니다.
 

▲노란 길다란 꽃 술을 가지고 있다.  ⓒ2010 HelloDD.com

이처럼 아리송한 식물 동정은 제 깜냥에 어림 없는 일이지요. 그나마 우리 수목원에서는 나무 앞에 표찰이 붙어 있으니, '아항~! 이게 그 나무구나' 하고 보는 것이지, 숲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아마 이름도 떠올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 십상일 겁니다.

며칠 전에 제 홈페이지인 솔숲닷컴에 나무 한 그루의 사진을 보여주시며, 이름 좀 알려달라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많이 본 듯한 나무이기는 했지만, 그냥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글을 올려주신 분의 답답함도 해결해드리고, 이 참에 저도 한 종류의 나무에 대해 공부할 기회도 된다 싶어서, 도감을 펼쳐놓고 이리저리 찾아보았지만, 알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늘 제 식물 공부에 도움을 주는 수목원의 지킴이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지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워낙 바쁘게 지내는 통에 금세 답이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단 제가 찾아본 대로 답을 올렸지만 긴가민가 했지요. 특히 서울에서 보신 나무라 했는데, 제가 찾아낸 나무는 남쪽에서 잘 자라는 나무였거든요.
 

▲자잘하게 작은 꽃송이들이 무더기로 모여 피어나 더욱 앙증맞다. ⓒ2010 HelloDD.com

그러고 며칠 뒤, 수목원 친구들의 답을 전화로 들으면서, 제가 틀렸다는 걸 알았고, 그 친구 중의 한 명이 홈페이지 게시판에 답을 올려놓았지요. 처음에 질문을 올리신 분이 그 답을 확인하셨다는 댓글도 이어서 올리셨습니다. 사실 식물 동정이라는 게 저처럼 식물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나무 이야기를 하고 다니니, 그걸 묻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시원스러운 대답을 해 드리지 못해 늘 죄송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저 역시 하나 둘 배워간다는 게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궁금하신 게 있으면 함께 나누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가 대답하지 못할 때가 더 많을 겁니다.

가끔 제 홈페이지의 게시판에 들르셔서 어떤 질문이 올라오는 지도 살펴보시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직접 댓글로 답도 올려주시면 좋겠네요. 그렇게 하나 둘 겸손하게 배워가겠습니다.
 

▲파스텔톤의 화려한 파란 잎을가진 붓꽃. ⓒ2010 HelloDD.com

이제 우리 수목원은 붓꽃(Iris)가 한창입니다. 붓꽃도 어찌나 종류가 많은지, 일일이 다 짚어보려면 한참 걸리겠지요. 기회 닿는 대로 붓꽃 이야기 전해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줄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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