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종진 ETRI 호남권연구센터 광전SOP연구팀 선임연구원

정부출연연구소 최초로 '중소기업 현장지원 인력파견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원장 최문기). 기술력과 고급 개발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기술 경쟁력과 품질 강화로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연구소는 현장 경험을 연구에 반영해 기술 상용화 성공률을 높이는 'Win-Win'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ETRI는 현재 17개 기업에 17명의 연구 인력을 파견, 기업 지원을 활성화하고 있다. 대덕넷은 현장 파견 후 복귀한 ETRI 연구원들의 목소리를 통해 기업과 출연연이 상생할 수 있는 소통을 모색하고자 체험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이종진 선임연구원. ⓒ2009 HelloDD.com

지난 3월 중순, 코셋이라는 중소 기업을 찾았다. ETRI에는 '중소 기업 현장 지원 인력 파견 제도'가 마련돼 있다. 우리 연구소가 보유하거나 개발한 기술을 활용해 사업화를 추진하는 중소 기업에 ETRI의 전문 인력을 현장에 파견하여 사업화의 성공률을 높이고, 중소 기업의 기술 경쟁력 및 제품 품질 향상에 기여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1회 연장 가능) 동안 현장 지원에 나서, 기업에는 기술 이전과 연구원에는 현장 경험의 기회를 주고 있다.

광주에 위치한 코셋은 산업용 및 의료용 레이저, 센서·계측·국방·우주용 레이저 등 기본적으로 레이저에 관련된 산업에 치중해 있는 회사다.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을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이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이들이 생산하는 고출력 레이저는 높은 열을 발산하기 때문에 이 열을 어떻게 가라앉히느냐가 문제로 남아 있었다. 쓰는 사람의 안전은 물론, 저전력·고효율이라는 강력한 사회적 요구로 레이저 제품의 냉각 요소는 무척이나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찾은 기업은 이제 갓 10년을 넘긴 중소 기업으로 레이저 제품의 냉각 분야에서는 전문성이 다소 부족한 상태였다. 나 역시 연구에만 전념해 있던 터라 산업 현장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었다. 적응하기 쉽지 않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어찌 됐든 이런 문제들을 최소로 줄이려면 파견 기업과 미리 업무 범위와 기간 및 내용들을 조율해야만 했다. 사실 한 달이라는 기간은 길다면 길지만, 연구 개발 분야에서는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과정이 아닐 수 없었다.

코셋의 제품 특성부터 파악해 나갔다. 레이저 제품 사용자들의 불만이나 갖가지 요구 사항들을 분석하는 지난한 과정이 시작됐다. 전반적인 사회적 요구 기술의 흐름을 읽어 냈고, 냉각을 위한 최적의 방안이 무엇인지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실험 검증 등의 과정을 거쳐 점검해 나갔다.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고민 역시 빼 놓을 수 없었다. 여러 산업체 연구소 관계자들은 정부 주도의 기술 개발에 대해 출연 연구소와 산업체의 시각 차이가 상당히 크다고 이야기한다. 기업은 2년 뒤의 먹을거리를 바라보며 개발하지만, 정부 출연 연구소들은 최소한 5년 뒤의 시장을 내다보고 있다는 점이 괴리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산업 현장은 지금 당장 대량 생산해,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간박 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 이에 반해 정부 출연 연구소는 현실적 문제에 한 발 떨어져 있는 것이 시각 차이의 또 다른 원인으로 보인다.

현학적인 자세로 문제의 원인을 밝히려는 우리와 달리 산업 현장은 시간과 가격의 싸움에 직면해 있다. 물론 학문적인 경험이 뒷받침되면 매우 효과적인 해결책을 도출해 낼 수 있지만, 많은 연구 결과들이 산업체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좋은 기술인데도 사장되고 마는 안타까운 운명을 맞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산업체의 여건에 어울리는 훌륭한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곧 적은 투자 비용으로 효과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수익 모델이 무엇이냐는 것인데, 연구자의 처지에서는 매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 기술력은 비단 수익성과 큰 관련이 없더라도 국가와 인류의 직면 문제를 해결한다는 큰 명제 아래 기술 가치를 추구하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중소 기업 현장 지원 인력 파견 제도'가 성공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연구원과 산업체의 시각 차이를 줄이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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