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성아 과학칼럼니스트

독감은 감기의 한 종류일까? 흔히 독감을 감기의 한 종류, 또는 독한 감기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감기와 독감은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는 콧물과 재채기, 코가 막히는 증상이 같기 때문에 인식을 못 하지만, 독감은 갑작스러운 고열, 전신 근육통, 관절통 등 전신 증상이 훨씬 심하게 나타난다. 또한 감기가 시기를 타지 않는 것과 달리 독감은 유행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

감기는 휴식과 충분한 영양공급이 있으면 수일 내에 회복되지만, 독감은 그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항체, 즉 백신을 신체에서 자발적으로 생산하거나 외부로부터 공급받지 못하면 치료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독감 백신을 만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그러나 독감을 치료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바이러스 종류가 다양하고 수도 방대하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 국내 연구진이 국내외 독감 바이러스 게놈 서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는 소식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고려대와 국립보건연구원이 지난 10여 년간 국내외에서 유행한 인플루엔자 1만 6000여 개의 유전자 서열정보를 발표한 것인데, 이를 토대로 독감 발생 의료 정보와 계절별, 지역별 독감 바이러스 변이 분석 및 향후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 예측 등 체계적인 대응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독감은 한 국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유행, 즉 전염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함께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 보건 기구(WHO)는 해마다 그 해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를 발표하고, WHO의 협력 기관인 영국국립생물기준통제연구소(NIBSC)는 관련 균주를 전 세계에 보급한다.

각 제약회사는 이를 토대로 백신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전 세계 제약회사는 다른 경쟁사보다 먼저 백신을 만들기 위해 무한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구촌이라는 말처럼 다른 국가의 사람과 접촉이 잦은 현재 또는 미래에 독감은 더욱 무서운 질병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와 중국처럼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독감 백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관련시장도 2006년 기준 22억 달러에서 10년간 연평균 8%가량 성장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이제 독감 백신 제작은 한 국가의 산업,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백신 제작 현실은 어떨까? 국내 한 제약회사가 최근 백신 자체 생산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12번째 자체 생산국이 되었다. 2008년도에 우리가 독감 백신 수입을 위해 들인 돈이 약 1000억 원에 이른다고 하니, 그 자체로 수입대체 효과도 있을뿐더러, 우리도 독감 백신 수입국에서 수출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우리의 백신 제작 과정은 이렇다. 10일 동안 부화 과정을 거친 '유정란'을 사용하며, 이 유정란을 낳는 닭에는 항생제나 백신을 투약하지 않고, 양계장 자체는 철저한 방제를 한다. 이 유정란에 독감 바이러스(균주)를 접종하고 이를 배양, 추출, 희석, 정제하는 과정을 거치면 백신 원액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쓰이는 '유정란'의 수만도 13만 5천 개라고 하니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비상 시에는 조류독감 백신까지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독감 백신에 대한 중요성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각종 독감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영화도 적지 않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개봉한 '블레임 : 인류멸망 2011'이라는 일본 영화 역시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에게 닥친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공포를 다루었다. 이 영화상에서 2011년의 아시아는 조류독감으로 인한 신형 인플루엔자가 생명을 위협하는 시대로 그려져 있다.

단순히 흥미 위주의 블록버스터라고 생각하고 넘겨 버리기엔 얼마 전 아시아 지역에서 성행했던 사스나 조류독감의 경우를 보았을 때 약간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독감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지만, 만일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서 국내 연구진과 제약회사가 독감 바이러스 개발에 계속해서 힘써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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