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 이정표…진미식품과 동아연필
장수기업에는 이유가 있다

대전시가 올해로 지방자치제 실시(1949년)에 따라 대전부에서 대전시로 개칭된 지 60주년을 맞는다. 또 올해는 일반시에서 직할시로 승격(1989년)된 지 20년이 돼 2009년의 의미는 더 크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35.7㎢에 규모에서 539.78㎢로 60년 만에 무려 15배나 외형을 확장한 대전시는 인구 또한 150만명에 육박하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1949년 8월 15일 법률 제32호로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대전부에서 대전시로 개칭한 뒤 이어온 급격한 성장세 뒤에는 사람과 토지, 자본의 고리를 연결할 수 있는 경제활동 능력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이는 대전의 발전과 성장, 역경을 함께 하며 지역경제사의 흐름을 만들어온 온 향토기업을 주목받게 하는 이유다. 대전의 탄생을 지켜보며 대전의 역사를 온전히 간직한 향토기업은 많지 않다. 대덕산업단지(구 3·4공단)에만 360여개가 넘는 기업이 자리잡았고 특구에도 1000여개에 달하는 기업들

이 지역경제를 위해 잰걸음을 내딛지만 60여년의 긴 역사를 거쳐 온 장수향토기업은 찾기 어렵다. 그렇기에 대전시가 보듬은 60년의 세월보다 더 오래된 진미식품과 동아연필은 지역 경제의 이정표로, 때로는 안개속을 걷는 대전경제에 훈수를 두고, 때로는 휘청거리는 신생기업들을 이끄는 큰집 역할을 한다.

대전 경제 1번지 중구 문화동에서 출발해 반세기를 넘는 동안 대전시민과 함께 하며 대전을 넘어 한국 식품 경제의 한축을 담당하게 된 진미식품과 학생들의 동반자로 우리들의 학창시절을 지켜온 동아연필은 장수기업이 적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한 곳에 터를 잡고 긴 시간을 지역속에서 시민들과 함께해온 향토 장수기업은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으로 구성원과 자본, 기술력을 집결시켜 전통 속에 첨단을 담는 강한 자본주의를 일궈 내기 때문이다.

◆진미식품
 

진미식품 사옥 전경 ⓒ2009 HelloDD.com

전통에서 성공을 보고 믿음에서 부를 얻은 기업이 있다. 강산이 6번 바뀔 동안 3대가 이어오며 전통장맛을 고집해온 진미식품. 먹거리가 없던 시절 황후의 찬을 준비하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탄생한 기업이 진미식품이다. 고 송희백 회장은 해방 후 나라 전체가 궁핍에서 허덕이던 1948년 대전시 중구 선화동에 대창장류사를 세웠다.

창업주인 송 회장은 정미소를 운영하며 모은 자금으로 직원 1명과 함께 가내수공업으로 이 곳에서 장을 담가 팔게 된다. 그 뒤 곧바로 맞닥들인 한국전쟁은 큰 시련을 안겨 줬지만 전쟁이 끝나고 먹거리를 잃어 버린 사람들은 전통간장 맛을 담은 대창장류사로 몰려든다.

사업의 번창으로 1957년 중구 오류동으로 사옥을 확장이전하면서 급상승을 타게되고 특히 후발주자들이 간장의 단맛을 위해 사카린을 사용한 것과는 달리 감초를 이용, 건강에 맛을 담아 낸 송 회장의 고집으로 탄생한 진미식품의 대표 상품 '감로간장'이 성장세를 이끌게 된다.

또 지역주민들과 호흡하며 소비자들이 원하는 맛을 찾아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이런 성과로 1982년 국무총리상을 수상한데 이어 1987년 유망중소기업체로 선정되고 대통령표창을 받는다. 1988년 창업주로부터 본격적인 경영권을 이어 받은 2대 송인섭 회장은 한국의 전통을 세계시장에 알리는데 주력했다. 한국 최고의 맛은 해외시장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시장확장에 나서 제2의 창업을 이끌게 된다.

회사의 성장속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한국전쟁 동안 회사의 맥은 끊겼고 1965년에는 공장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또 1990년대부터 외환위가 파동과 대형식품업체들의 공략은 중소기업인 진미에 위협이 됐다.

새로운 상승곡선은 2007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3대 송상문 사장이 전통에 첨단을 가미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된다. 벤처기업 이노비즈 인증을 받고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으며 웰빙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청국장을 주원료로 만든 건강식이지만 냄새와 트랜스지방산을 없앤 나또볼, 술안주와 간식용으로 제격인 쇠고기치즈샌드 등 전통에 현대의 맛을 접목시킨 신제품들은 모두 송 사장의 작품이다.

송 사장은 "대외 경쟁력 향상을 위해 혁신경영체계를 도입하고 인재육성에 주력했다"며 "회사 체질을 현대식으로 개편하면서 진미의 최대 목표는 '맛'에 있다는 점을 강조, 경쟁업체와 차별화된 상품을 선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안전한 먹거리 창출과 새롭고 올바른 식문화 개선이 우리 회사의 역할 중 하나로 본다"며 "60년이 넘는 동안 진미가 소비자의 사랑을 받아온 만큼 더 휼륭한 회사로 성장시켜 사랑에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세기가 훌쩍넘는 60년의 세월속에 3대를 이어오며 장류만을 고집하는 진미식품의 성공비결은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신뢰와 한국의 맛을 잇겠다는 고풍스런 고집에 있다.

◆동아연필
 

▲동아연필 사옥 전경. ⓒ2009 HelloDD.com

국내 최초로 탄생한 연필회사가 대전에 있다는 것은 대전시민들도 잘 알지 못한다. 학창시절은 물론 지금도 한 자루 이상의 펜이 우리 곁에 있고 지금의 40~50대의 장년층이라면 누구나 이 회사가 만든 제품을 손에 쥐고 글을 썼을 것이다.

동아연필(대표 김학재)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창립됐다. 동아연필이 광복이후 한국 기록의 역사로 불려지는 이유는 최초이 문구회사라는데 있다. 연필의 제조와 유통은 종이의 발명에 견줄 정도로 기록과 교육에 있어 중요한 인류문화로 받아 들어지기 때문이다.

김로원 초대회장이 일본인이 운영하던 회사를 인수해 동아연필이란 회사를 설립하게된 이유는 교육사업을 위해서라고 한다. 해방 뒤 혼란한 사회에서 인재의 중요성을 절감한 김 회장은 교육의 기반이 문구라고 판단, 한국 교육시스템의 초석을 놓는다는 의지로 연필생산과 개발에 전념했다.

동아연필은 꾸준한 연구개발로 1955년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1963년부터는 연필수출을 시작하게 된다. 이어 문구상품의 다각화를 위해 1974년 동아교재를 설립한 뒤 본격적인 재품개발을 시작, 1978년 3월에는 연필의 혁명이란 샤프연필과 샤프심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1993년 수채 색연필 개발, 1997년 중성볼펜 생산 및 수출 등 잇따라 신제품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얻어 고속성장한다. 또 1990년에는 국내 최대규모의 사출설비 시설을 갖춘 동아엔지니어링을 설립해 품질개발에 주력하는 동시에 제품에 대한 안정성 확보에 노력한 결과, 1999년 중성펜과 그림물감 등 생산제품에 무독성 마크(AP)도 1999년 획득, 문구의 안정성을 공인받는다.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해 1999년에 중국 광주동아문구를 설립해 시장규모 확대에 나섰으며 이런 결과들로 2005년에는 국위선양 및 국가발전 국무총리 표창을 받게 된다.
 

▲중국 광주동아문구. ⓒ2009 HelloDD.com
"연필과 펜은 기록을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입니다. 교육시스템 안착과 인재양성에는 문구라는 수단이 뒷받침돼야 하기에 문구사업은 사명감이 남다릅니다."

국내 최초의 연필회사인 동아연필이 탄생되던 시절에는 흑연에 진흙 등을 첨가해 낮은 수준의 연필로 시작됐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실용성과 경제성을 갖춘 문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 뒤 1980년을 시점으로 문구의 경제성에 패션화와 고급화라는 새로운 유형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팬시문구가 상륙된 것이다. 이에 따라 동아연필도 국내 문구제품에 화려한 디자인이 적용, 캐릭터 삽입부터 향수나는 중성펜, 일반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색연필, 채크와 마크가 동시에 가능한 싸인텐 등 실용성에 화려한 디자인을 접목시킨다.

동아연필의 장수비결은 유아부터 청소년, 장년층 까지 누구나 하나씩은 갖고 있을 필기구를 상업적 시각이 아닌 교육을 위한 시스템 구축으로 봤다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소비자에게 정직과 신뢰를 심어주고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희망을 전달하는 제품을 만들려는 철학으로 기업을 운영했기 때문에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남을 수 있었다.

또 문구에 다양성과 화려함을 융합시켜 갖고 싶은 문구를 생산했으며 꾸준한 기술개발로 새로운 시장유형에 대응해가며 소비자들의 성향을 이끈 것도 성공요인중 하나다.

김학재 대표는 "60여년의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문구시장을 선도할 다양한 상품을 개발 할 것"이라며 "지역사회는 물론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기업이 되도록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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