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9월 10일 인간이 만든 커다란 기계인 거대강입자가속기(LHC : Large Hadron Collider)를 가동했다. 95억 달러라는 엄청난 예산과 14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진 LHC는 아쉽게도 며칠 만에 고장으로 실험이 연기되기는 했지만, 역사 이래 최대의 과학 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렇다면 왜 물리학자들은 LHC의 가동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데모크리토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 중의 하나는 과연 물질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이것을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뜻의 원자(Atom)로 불렀다. 그로부터 2000년 후 돌턴은 근대적인 원자론을 제창했고, 이를 바탕으로 화학은 급격히 자리를 잡게 된다.

하지만 원자 내부에 전기를 띤 전자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원자가 쪼개지지 않는다는 신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궁극의 알갱이를 알아내기 위한 머나먼 여정이 다시 시작되게 되었다. 이 여정에서 첫 번째 성과를 올린 사람은 러더퍼드였다. 그는 알파 입자 산란 실험을 통해 원자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오늘날 입자가속기에 비한다면 그의 실험은 겨우 원자를 살짝 두드려 보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이 실험 결과에 대해 "화장지에 대포알을 쏘았더니 튕겨 나왔다"라는 말로 그 놀라움을 표현했다.

오늘날에는 원자는 물론 원자핵을 구성하고 있는 핵자를 깨트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입자를 빠른 속력으로 가속하여 충돌시켜 그 내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입자가속기(particle accelerator)있기 때문이다. LHC는 강입자의 하나인 양성자를 가속시키는데, 전기장으로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까운 빠른 속도로 가속시킨다. 양성자를 더 빠르게 가속시키는 것은 더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를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빠르게 가속되는 입자는 잡아두기 위해 둘레가 27km나 되는 거대한 가속기를 만든 것이다.

LHC에는 지구 자기장의 약 10만 배나 되는 초전도 자석으로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는 양성자가 궤도를 탈선하지 않게 한다. 이번에 LHC의 고장 난 부분도 바로 초전도 자석의 연결 부위라고 한다. 이 연결 부위에서 초전도 자석을 만드는데 필요한 액체 헬륨이 새어 나와 안타깝게도 가동이 중단되었다. LHC는 양성자를 7TeV(테라전자볼트)까지 가속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양쪽에서 7TeV씩 정면충돌시킬 경우 14TeV의 에너지로 실험할 수 있다.

하지만 14TeV라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양성자 하나와 중성자 하나로 이루어진 중수소의 경우 핵자 결합에너지는 2.2MeV(메가전자볼트) 정도이다. 1MeV의 에너지는 온도로 환산하면 백억 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용광로에서 아무리 가열한다고 하더라도 2.2MeV의 결합에너지를 가진 핵자를 분리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핵자를 쪼갤 때는 온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입자를 빠르게 가속시켜 충돌시키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엄청난 능력을 가진 기계로 무엇을 할까?

LHC를 통해서 우리는 미니 블랙홀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미니 블랙홀이 지구를 삼킨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LHC는 중력에 의해 형성되는 거대한 블랙홀과는 달리 질량이 1.67×10-27kg밖에 안 되는 양성자에 의해 만들어진 수명이 기껏해야 10-12초밖에 안 되는 미니 블랙홀밖에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이 미니 블랙홀이 지구를 삼켜버릴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또한 LHC는 빅뱅 직후의 초고온 고밀도였던 우주를 모습을 재현해 낼 것으로 기대했다. 우주는 지금으로부터 137억 년 전 빅뱅이라고 하는 거대한 폭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어진다.

빅뱅 후 10-43초 후 우주의 온도는 무려 1,032℃나 되었으며, 이렇게 초고온인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뒤엉켜 존재했다. 빅뱅 후 1초가 지나자 온도가 1,012℃로 내려가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만들어지고, 3분이 지나자 최초의 원자핵이 생겼다는 이론을 실험으로 재현해 보려는 것이었다. LHC 실험의 가장 큰 목표이자 '신의 입자'인 힉스 입자는 무엇일까? 중학교 과학 시간에 물체가 자신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인 관성에 대해 배운다. 즉 모든 물체는 가속도 운동에 저항하는 성질인 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관성을 쉽게 배우지만 아쉽게도 물체들이 왜 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힉스 입자의 발견은 바로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것이다. 즉 우주는 힉스장이라고는 하는 바다 속에 잠겨 있는데, 물체를 움직이려고 하면 물체가 힉스장과 입자를 교환하면서 저항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광자가 질량이 없는 것은 힉스장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며, 쿼크의 질량이 다양한 이유 또한 힉스장과의 다양한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모든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것이 힉스장이며, 힉스장을 매개하는 것이 힉스입자이기에 이를 '신의 입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LHC의 고장으로 내년 봄까지 가동 중단 예정이라고 하니, 힉스 입자의 발견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힉스 입자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에는 자연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표준모형의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지고 그 자리를 다른 이론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일반상대성이론을 포함시키지 못하는 표준모형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초끈이론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LHC의 실험은 아인슈타인의 꿈이었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에 도달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들은 우주에서 단지 5%밖에 되지 않으며, 나머지는 25%의 암흑물질과 70%의 암흑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LHC가 정상가동 되어 실험결과를 쏟아낸다면 이 궁금증을 풀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린 신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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