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오혜연 전산학전공 교수

이공계에 진출하는 여성들이 늘었다고 하지만 과학기술분야의 남초현상(男超現象)은 여전하다. 국내 대표 이공계대학 KAIST(한국과학기술원·총장 서남표)도 마찬가지.

KAIST의 학부생 중 남학생 대비 여학생 비율은 30.3%(2007년말 기준)에 불과하며, 위로 갈수록 격차는 더욱 심화돼 석사·박사과정에선 각각 24.6%, 18.2%까지 떨어진다. 여교수의 비율은 더욱 심각해 남교수 대비 5.6% 수준이다.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여덟 명을 제외하면 순수 이공계 출신 여교수는 더욱 적다.

▲오혜연 교수  ⓒ2008 HelloDD.com

"다른 이공계대학도 마찬가지에요. MIT(Massa 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도 학교 차원에서 여학생들을 모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도 학부에서는 좀 나은데, 대학원에서는 정말 여학생을 찾아보기 힘들어서 '왜 여학생들은 대학원을 안 가고, 교수를 안 하는가'를 놓고 문제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있죠."

이번 달 20일, 가뭄에 단비 같은 25번째 여교수, 오혜연(35) 전산학전공 교수가 KAIST에 부임했다.

오 교수는 카네기멜론대(Carnegie-Mellon University)·MIT 등에서 수학한 재원. 8월 MIT에서 CS(Computer Science)분야 박사학위 취득과 동시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학위 과정 내내 소수의 성(性)이었던 오 교수는 "이공계 분야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다"며 "기존에 있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생각하려면 다른 경험과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방법이 주효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창의성이 과학기술쪽에서도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며 "내 경우엔 육아를 통해 배우는 것들이 CS 연구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오 교수의 전공인 전산학의 CS분야는 컴퓨터시스템을 인공적으로 사람들과 유사하게 구현해내는 분야. 그는 '자연언어(일반 사회에서 자연히 발생해 쓰이는 언어. 인공언어의 반대의미)' 처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야구 게임을 보면 지역신문에 따라서 같은 경기결과를 두고도 다른 기사가 나오죠. 컴퓨터시스템도 같은 게임데이터를 두고 중립적 관점과 각 팀의 관점에 따라 세 가지의 각기 다른 기사를 쓸 수 있도록 구현해내는 것이죠."

오 교수는 "CS는 사람들의 인지·심리를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실현되는지를 연구하고 구현해내는 학문"이라며 "최고의 목표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이 장점이 된다"고 말했다.

오 교수가 이야기하는 '다양성'은 비단 성별에 그치지 않는다. 출신이나 전공 분야는 물론이고, 사회·가정생활의 경험 등도 모두 포함된다. 그는 "MIT의 입학생을 보면 전산학과 출신이 아닌 사람들도 많다"며 "선발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전산학 수업을 들었나 안 들었나 보다 잠재력과 열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직장생활의 경험 역시 연구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산업체의 연구·일 방식을 배운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며 "MIT 등 미국대학에서는 계속 학문을 하는 것 보다 중간에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권유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 역시 학사 졸업 후 오라클(Oracle Corporation)사에서, 석사 졸업 후 HP(Hewlett-Packard)사에서 1년씩 연구원 생활을 했다. 그는 "회사가 아무래도 학교·연구소보다는 뒤처지는 연구를 하고 있지만 대신 보다 큰 규모의 연구를 완벽하게 해낸다"며 "디테일을 중요시하는 프로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반대로 다른 분야에서도 이공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며 "경영·경제학은 물론이고 인문·사회에서도 과학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 "재미 좇다보니 여기까지···학생들에게 넓게 보는 법 가르쳐주고파"
 

▲재미있게 공부를 해와서 그런지 결코
7살 아이의 엄마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앳된 모습이다. 
ⓒ2008 HelloDD.com
연구에 있어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만큼 오 교수의 이력에도 변화가 많다. 수학-언어학-전산학 등 공부한 분야도 다채롭고, 중간에 회사생활도 했으며, 그 틈에 결혼과 출산까지 해냈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수학을 전공하게 됐는데 학부 말에 언어학에 관심을 갖게 됐죠. MIT의 언어학이 매우 유명한데 공부해 보니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그러다보니 CS를 하게 되더라고요. 재미를 좇아가다 보니 이렇게까지 왔어요."

재미있는 것을 공부하다보니 전산학을 전공하게 됐다는 오 교수가 KAIST에 교수로 온 것은 남편의 영향도 컸다. 오 교수의 남편은 학사졸업 후 오라클에서 일할 때 만난 이태식 KAIST 산업공학과 교수. 당시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 와 있던 이 교수도 근처의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어 인연이 됐다.

결혼생활을 하며 학위를 마친 오 교수와 이 교수 부부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본 결과 공통의 무대가 KAIST였다. 오 교수는 "같은 곳에서 서로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 KAIST에 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오 교수보다 1년 먼저 KAIST에 부임했다.

20여년 만에 귀국, KAIST에 부임한 오 교수가 원하는 것은 최첨단 연구를 통해 학생들에게 앞선 학문을 가르쳐 주는 것. 또 연구와는 별도로 학생들에게 넓게 보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목표다.

"MIT가 공과대학의 중심이고 높은 인지도가 있다 보니 많은 연구자들이 찾아옵니다. MIT에 있으며 모든 연구의 흐름을 볼 수 있죠. KAIST 역시 국제인지도를 높이며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지리적인 단점도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잘못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어요. 학생들에게 국제학회, 외국회사 인턴십 참여 등 외부와의 교류를 권장할 생각이에요."

부임 각오를 밝히는 오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이공계진출을 꿈꾸는 여성들을 위한 조언도 부탁했다. 그는 "여성들이 이공계분야에서 학업·연구가 힘들다면 그건 당사자의 책임이 아니라 교수와 주변학생들, 제도의 문제"라며 "다양한 성별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흥미를 느낄 만한 공학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과대학의 수업이 남성들 특유의 취미를 이용하는 것이 많아요. 이런 것이 잘못됐다면 여성들은 당당하게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목소리를 내야 해요. 쉽지는 않겠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라면 힘든 것도 거쳐야겠죠. 여성들의 의견이 반영된다면 당연히 숫자도 많아질 테고 결국 다양한 교수들과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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