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KAIST 교수협, '총장 일방적 개혁' 견제 움직임
"공동체적 개혁운동으로 승화되길"

현재 상황으로 볼 때, 과학기술계 개혁 선봉장은 서남표 KAIST(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이다. 그의 학교 개혁과 한국 과학사회에 던진 변화의 메시지들은 그를 국내에서 가장 효율적인 개혁가로 만들어주고 있다.

서 총장이 전설적인 과학계 리더로 길이 남기 위해선 KAIST를 세계적 MIT 대학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아야 한다. 정부가 과학계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긴장감 속에서, 현재까지 미국 MIT 출신의 개혁가는 성공의 발자취를 잘 따라왔다.

서 총장의 파괴력 있는 개혁으로 KAIST와 과학계가 거듭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지금도 많은 현장의 교수와 연구원들은 서 총장의 개혁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 총장의 행보를 살펴보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눈에 띈다.

사실 과감하게 교수 테뉴어 심사제도 칼을 뽑아든 전방위적 개혁실행력의 소유자를 비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진정한 개혁을 바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서 총장 자체가 KAIST와 과학계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비판의 시각을 적용하기란 더 어렵다.

그러나 최근 KAIST 교수협의회(회장 김종득)가 대학측의 일방통행식 정책 결정 과정에 제동을 걸기 위해 대학평의회를 결성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전형적인 개혁의 영웅은 아니라는 사실에 부딪힌다.

총장과 교수들간 대립각을 세우는 양상은 과거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로버트 러플린 전 총장과 시간차를 빼면 엇비슷하다. KAIST 인근 대덕 연구현장에서도 서 총장에 대한 불도저식 움직임에 감정적 경고장을 보내고 있다.

서 총장이 최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비롯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에 대한 통합·협력 제안을 추진하자 학교 내부에서는 구성원 의견 수렴 상실을 주장하고 있고, 외부 출연연 연구원들로부터는 KAIST가 적이 되어버렸다.

서 총장이 과감한 변화의 시도를 펼치고 있지만, 결국 일방적 추진으로 교수들의 우려섞인 목소리에 개혁실행에 힘을 잃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게 조차 반대에 부딪혀야 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서 총장은 개혁을 성공해 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구성원의 의견수렴과 공감대 형성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현장에서는 아무리 개혁성향을 보이는 수퍼과학자라도 다른 리더들과 마찬가지로 개혁의 주체인 구성원들과 호흡하며 모든 상황에서 함께 최선을 다하길 기대한다.

현장 교수와 연구원들이 서 총장의 발전 구상안을 접할때 마다 깜짝 깜짝 놀라며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가'라는 분위기가 짙다. 일부 현장의 반대 의견을 '개혁에는 반대가 뒤따르기 마련'이라고 치부하는 듯한 양상이다.

리더십 전문가들은 비전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구성원들의 고민을 들어야 하며 구성원에게 '비전을 위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라는 과정이 생략되면 개혁의 힘은 잃기 마련이라고 경고한다. 바로 이 점이 바로 서 총장이 고민해 봐야할 핵심일지 모른다. 그가 학교의 개혁을 위해 집중할 때, 일반 교수와 학생들은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최선을 다해 의견을 수렴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때 개혁의 힘은 배가 될 수 있다. 일방적인 개혁의 흐름이 끊겼을 때, 현장에서 누가 그 개혁에 뒤를 이어 가담하겠는가. 오히려 현장에 남는 것은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상처 뿐일 것이다.

개혁의 고삐를 제대로 틀어잡기 위해서라도 일방적인 개혁이 아닌 공동체적 개혁, 쌍방향 개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이 10걸음 가기는 쉬워도 공동체가 1걸음 나아가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라는 한 지역혁신 전문가의 말이 KAIST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맴돈다.

각자의 견해가 어떻든 간에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서 총장을 한국 과학계에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미래 과학 꿈나무들에게 축복이며, 그 축복이 계속 되는 한 그것을 즐겨야 한다는 점이다. 그의 변화 시도가 일방적인 개혁이 아닌 공동체적 개혁운동으로 번져지길 연구현장에서는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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