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남구 동신대 한의대학장

"아무리 한의학의 표준화·과학화가 시급해도 건너뛸 수 없고, 건너뛰어서도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원전(原典)연구다. 국역사업을 통해 원전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통해 한의학적 마인드를 형성하고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 순서다. 이를 건너뛰어도 결국은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의 이남구 학장은 한의학계가 원전연구를 통해 한의학적 정신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남구 학장을 만나기 위해 전라남도 나주시에 위치한 동신대를 찾아갔다. 이 학장은 1990년 운영하던 한방병원을 떠나 후학 양성을 위해 학계로 돌아온 한의학인. 설립 초기의 우석대 한의과대학에서 학과장으로 학교 기반을 잡아가는데 일조했으며, 지난 2000년부터 동신대 학장에 부임해 8년째 학교를 이끌고 있다.

동신대 한의과대학은 광주·전남권의 유일한 한의과대학으로 1992년 설립됐다. 후발대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수한 교수 확보, 특히 임상교수 충원에 주력했고, 광주·순천·목포 등 3개 지역에 한방병원을, 서울에 협력병원 1개를 개원했다.

학교 측은 임상 부분만큼은 다른 선발대학에 못지않은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또 2004년에는 한약재산업학과도 개설해 한약자원의 연구·개발·관리·생산 인력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곡창 호남의 중심에 위치해서일까, 이제 겨우 3월 중순임에도 동신대 한의과대학 캠퍼스의 햇볕은 유달리 뜨거웠다. 체감으로 느껴지는 기운이 봄보다는 초여름에 가까운 날씨. 이 학장도 "예부터 봄·가을은 계절의 도로라 했는데, 이 도로가 없어졌으니 음양이 서로 통하질 않아 큰일"이라며 말문을 뗀다.

주변에 무심한 듯 건조한 음색과 화법에서 세상을 달관한 사람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어 이 학장은 "지금 이형주 한의학연구원장과 전주고등학교 동문이라 연구원에 더욱 관심이 많다"며 "최근 연구원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데 학교의 위치 때문에 연구원과 교류하기가 쉽지 않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임상은 물론 교육 부분까지 두루 거친 이력의 이 학장에게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연구원을 비롯한 한의학계가 노력해야 할 부분을 묻자 예상외로 '원전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한의학의 긴 역사 속에서 선인들이 연구하고 남겨준 유산부터 체득해야 하는데 우리는 문헌연구를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며 "일선의 한의사는 물론이고 교수들 중에도 원전 독해가 되는 사람이 얼마 없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한의학계에는 원전 독해에 대한 노력이 미흡해 대표 전통의학 유산 중의 하나인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등도 북한에서 국역한 것을 가져다 쓰고 있다.

그는 "한의학연구원이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고 또 거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연구해야할 원전이 엄청나게 많다"며 "연구원에서 원전 연구에 사명감을 갖고 추진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그들(양의학) 언어로 말하더라도 한의학적 마인드는 지켜야" 

ⓒ2008 HelloDD.com
"양의학·약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저에게 '요즘 한의학도 성분 분석 쪽을 많이 하는데 당신들 그렇게 해서 되겠냐'고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저조차도 의문스럽습니다. 한의학의 특징은 질환에 다각도로 접근한다는 것과 인체 기능을 연구하는 것인데, 되려 양의학을 좇아 분석적으로 가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학장의 '한의학 정신'에 대한 강조가 이어졌다.

그는 최근의 연구들에 한의학적 정신과 특징이 담겨있지 않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물론 이 학장도 실험·실증을 통한 한의학의 과학화·표준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도 시대적으로 양의학이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납득시키려면 우리 언어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학장이 지적하는 문제는 여기서 우리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생략돼 있다는 것. 그는 "첨단 기기들을 활용할 때도 우리가 쓰면서 보완하고 한의학 개념을 적용시키는 과정을 생략한 채 그대로 가져와 편하게 활용하고자 했다"며 "기본 적인 것에서 한의학적 저변 확보가 안 됐다"고 설명한다.

한의학적 마인드를 바탕으로 양방 실험과 현대화·산업화를 진행해야 한의학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을 잃지 않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학장은 "현재 학교에서도 한의학의 현대화를 위해 양방생리학·병리학·진단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며 "이 때도 한의학을 전혀 모르는 양의사가 가르치는 것보다 양방도 전공한 한의사가 한의학을 바탕으로 가르쳐줘야 학생들이 이해를 잘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의학을 바탕에 두고 양의학을 학습해야 융합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교과과정도 문제 많아…통합교육서 세분화로 진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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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의 주제가 자연스레 한의학 교육으로 옮겨왔다. 이 학장은 교과과정은 대학교의 통합교육에서 대학원의 세분화과정으로 가는 양의과대학의 흐름이 옳다고 단언했다. 졸업 후 개원을 하는 1차 진료사업을 위한 인력양성을 위해서도 그 쪽이 더 실용적이라는 것이다.

이 학장은 "대학교에서 통합교육을 통해 진료사로서 활동할 기반을 마련해 주고 대학원에서는 과정별로 세분화해 학자·연구자를 양성해야 한다"며 "최근의 흐름를 보면 석사과정에서 통합교육을 진행하는 등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학자가 아닌 진료사를 희망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의학은 결국 하나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양의학과 한의학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볼 때는 학교에서 서양 과학과 의학을 우리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후학을 키워야 한의학이 발전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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