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과학영웅]김종호 표준연 박사, "연구자가 상품성 높여야"

"주변에서는 저를 보고 '기술 세일즈맨'이라고 부릅니다. 벌써부터 제가 개발한 기술을 토대로 만든 제품들이 얼마나 팔릴지 궁금해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입니다." 4일 김종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는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코스닥 상장업체 '미성포리테크'를 찾아 기술이전 협약서를 나눴다.

기술이전료는 자그마치 325억원. 지난해 최고 '대박'으로 회자되던 기계연 '플라스마 매연저감장치'의 기술이전 액수 105억원의 3배를 넘는다. 한 연구에 몰두하느라 논문도 자주 내지 못해 종종 스트레스에 시달려 왔다는 김 박사. 이제 그는 대덕특구 출연연 종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성공한 과학자의 '본보기'가 됐다.

그런 그를 인터뷰하며 다른 출연연 연구자들과 확연히 다른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일즈맨 정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잠자고 있는 '상품성' 깨워라"

"원래 촉각센서는 로봇의 인공피부에 적용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입니다. 그러나 아직 로봇시장이 활짝 열렸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다른 분야에 촉각센서가 적용될 수는 없는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죠." 그러던 중 김종호 박사는 휴대폰의 슬림화 추세와 함께 점점 복잡해져가는 각종 모바일기기들의 인터페이스에 주목했다. 두껍지 않아 제품의 외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조작을 쉽게 수행하는데 촉각센서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처음에는 대충 (촉각센서를)PC에 연결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시연했어요. 이게 알려지고 나니 여기저기 업체들에서 방문이 잇따랐지요." 그러나 일부 업체 관계자들은 김 박사의 실험실을 방문하고는 이내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제가 생각이 짧았었죠. 기업인들은 '기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기술 속에 잠들어있는 '상품성'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지요. 발걸음을 돌리던 기업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볼 수 없느냐'라고 아쉬워했습니다." 김 박사는 자신이 피땀 흘려 일궈낸 연구 성과 속에 잠자고 있는 '상품성'을 깨워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에 골몰한다.

"오기가 발동하더군요. 처음에는 센서 자체를 PC와 연결해 그림을 그려보는데 그쳤지만, 다음번에는 휴대폰에 촉각센서를 탑재해 그걸로 윈도우 마우스 커서를 조작하는 것을 시연했지요." 김종호 박사는 기업관계자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김 박사는 "특히 이번에 기술이전을 실시하기로 한 '미성포리테크'는 촉각센서 기술에 다년간 매달려왔지만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그들이 원하던 기술을 구체화된 모습으로 보여주자 좋은 조건에 기술이전을 체결하는 성과를 낳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에 대한 '상품성'을 끌어낼 줄 알아야 한다"며 "되도록 구체화된 제품형태로 자신의 기술을 어필한다면 더 큰 '대박'도 충분히 터지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고진감래의 '기초·원천' 투자… "그 열매는 달 것"
 

ⓒ2008 HelloDD.com
"혹여 이번 기술개발을 보고 '어쩌다 운 좋게 터진 대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표준연은 설립초기부터 '힘'에 대한 국가표준을 확립하기 위해 지속적인 기초·원천기술 투자를 실시해왔습니다." 김종호 표준연 박사는 "기초연구를 통해 다져진 토양이 이번 기술개발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한다.

김 박사는 "과학기술 발전과 더불어 마이크로 단위의 미세한 힘의 정밀측정기술이 필요해졌다"며 "표준연 역학그룹은 이에 관련해 미세 힘센서를 개발하는 등 관련 기술들에 대한 경험을 꾸준히 쌓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2년에는 촉각센서를 이용한 인공피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힘을 이용한 촉각센서를 휴대폰에 적용하는 아이디어를 얻는 등, 기초·원천기술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아이디어로 화(化)하고 있다"며 "기초기술 투자를 통해 얼마든지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박사는 기술이전에서 그치지 않고 미성포리테크 측에 철저한 A/S를 실시할 예정이다. 그는 "기술이전 업체의 제품이 잘 팔려야 우리가 받는 경상기술료도 늘어난다"며 "기술사업화를 사명으로 하는 대덕특구 역사에 한 획을 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