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의 사의 표명 소식을 접하고

박창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최근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원자력연구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박 원장은 최근 우라늄 시료 분실사건의 파문이 커지며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사표를 제출했으며 원자력연구소 내 선임본부장 등 고위 임원 8명도 보직사표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박 원장의 이같은 결정은 주변과 상의한 것이 아니며, 스스로 고민해 결정한 것으로 과학기술부 등 정부기관이나 주변의 사퇴 압력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의 우라늄 시료 분실사건과 일련의 파문과 함께 박 원장의 사의 표명과정 까지를 지켜보면서 마음 한켠에 한가지 걱정스런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은 습관처럼 굳어져 되풀이 되고 있는 우리의 문제해결 방식입니다.

우리는 큰 사건이나 문제가 일어나면 우선 여론이 크게 들끓습니다.
사태가 일어나면 그 사건에 대한 원인분석 보다는 우선 피해를 먼저 따지고 그 파장을 논합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관련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여론에 따라 관련 책임자는 사태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습니다. 그후 사회적으로 시스템을 마련한다, 재발 방지책을 수립한다는 말이 나오고 사태를 수습합니다.

문제를 파악하고 원인을 분석해 체계적인 해결방법을 찾는 논리적인 접근 보다는 피해와 파장을 논하고 관련자를 문책하는 감정적인 접근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찌보면 문제의 해결보다는 책임추궁을 함으로써 문제를 끊어내거나 덮어버리는 인상이 짙습니다.

물론 큰 사건이 일어나면 책임자는 분명히 있고 그들은 응당히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지는 방식이 반드시 박창규 원장과 같이 사직을 하는 형태가 되야 할까요. 그것도 여론의 집중포화로 인격적, 도덕적 불명예를 뒤집어 쓴 채로.

그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어쩌면 박 원장이 사표를 내고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는 것보다는 연구소의 수장으로서 조직을 진두지휘해 사태를 조속히 수습하고 문제가 재발하지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가장 크게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닐까요.

2500년전 이탈리아의 테베레강의 작은 언덕에서 출발한 로마는 패배와 실패를 자양분으로 성장해 번영을 이룬 국가라고 말합니다. 주변의 적들과 수백년에 걸친 전쟁에서 수많은 실패와 패전을 겪으며 로마인들은 귀중한 원칙을 공유합니다.

그것은 '전쟁에서 진 지휘관을 패전 책임을 물어 처벌하지 않는다'는 전통입니다. 패전의 원인을 공유하고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배우며 패자에게는 다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로마가 카르타고나 당시의 다른 국가들처럼 패장에게 책임을 물어 처형하는 손쉬운 해결책을 썼다면 과연 천년이 넘는 번영과 융성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요.

흔히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고 가진 것은 사람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명의 인재가 수십만을 먹여 살린다'는 주장 아래 인재를 양성해야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미래 한국을 이끌어 나갈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쩌면 국내의 모든 자원과 시스템을 인재 양성에 초점을 두고 쏟아부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새로운 인재 양성 뿐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인재들, 각계 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재들을 관리하는 문제는 어떻습니까. 과연 우리가 인재 양성에 못지 않게 인재 관리에도 힘을 쓰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조자룡 헌 창쓰듯' 인재를 소홀히 여기고 어떤 문제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책임을 물어 인재들을 불명예 퇴진시킨다면 과연 이 인재들이 남아날까요. 이들이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어려운 역할을 맡으며 역량을 발휘하려 할까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꼭 쇠뿔을 뽑아내어 소를 죽여야만 할까요.

처벌은 쉽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어렵습니다. 용서(容恕)란 글자를 풀어보면 웃는 얼굴(容)로 나와 같은 마음(如心)을 지닌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에게 실수한 사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아량은 없는걸까요. 로마인들처럼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귀중한 경험을 공유하는 지혜는 없는걸까요.

대덕넷의 생각은 위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사태의 추이는 인재를 중시하는 것보다도 가볍게 여기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움직임도 감지됩니다.

이글을 읽으신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우라늄 분실이란 사실은 분명히 잘못이지만 그 정도가 과연 우수한 과학자를 중도 낙마시켜야 할 정도인지 어떤지 여러분의 귀중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대덕넷 조인환 편집국장> choin@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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