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울한 하루입니다. 미국에서 들려온 참담한 소식은 가슴을 옥죕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그러나 이번 일에 대한 미국과 한국 사회의 대응을 보면서 또 한 번 가슴을 칩니다.

미국 사회는 부시 대통령이 나서서 희생자들을 위로합니다.
대통령만 나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하며 기도를 하며 마음의 치유를 먼저 합니다.
수사 등의 절차는 진행되겠지만 먼저 마음을 어루만지며 고통을 위로합니다.

이전에 9.11 테러때 미 국회 의사당 기도회가 기억납니다.
이 사람들은 확실히 국가적 재난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있는 듯 합니다.
물리적 대비책도 있습니다만 그에 앞서 기도 등을 통해 공동체의 힘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뜻을 모으는 것 같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의 대응은 무대책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정부의 대외 대변자인 외교부는 우선 ‘도마뱀 꼬리 자르기’를 합니다.
상황을 받아 들이기 보다는 부인을 합니다.

"8살에 이민 가 15년간 그곳에서 살았다."

미국 사람이란 이야기인 듯 여겨집니다. 그 사람의 부모는 누구입니까?
또 하인스 워드는 미국 사람이면서 한국 사람이라고 해놓고…

지금은 그를 부인할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면서, 우리가 이런 일을 통해 고칠 것은 고치고, 이를 계기로 인류와의 대화를 본격적으로 해야 하지 않나 여겨집니다.

종교계의 대응도 섭섭합니다. 이번 일은 결국 공동체의 영성이 위기에 처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영혼을 안정시키고, 인류 보편의 가치인 평화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종교계의 의무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종교는 기복 신앙의 모습을 너무 많이 지닙니다.
공동체를 생각하기 보다는 내 아이와, 가족, 사업이 잘되기만을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희생은 별로 눈여겨 보지 않습니다.

이런 ‘나’ 위주의 사고 방식이 결국은 엄청난 사태를 불러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영성을 책임질 종교계 지도자들의 언급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언론도 문제입니다. 하나의 사회 사건으로 취급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간단히 발생하고, 시간 지나면 잊혀지는 일회성 사건이 아닙니다.
이번 일은 한국 사회가 지니고 있는 여러 모순들이 일거에 분출된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삶의 질을 생각하기 보다는 개인의 출세를 우선하고, 개성을 존중하기 보다는 집단주의적 사고가 지배하고, 다수를 위해서는 소수가 희생될 수 있고, 이상보다는 현실을 강조하고…

지난 40여년의 압축성장으로 경제적 부는 어느 정도 이뤘지만 공동체에 대한 철학은 사라진 한국 사회에 대한 경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 진단과 대안이 모색돼야 하고 이 부분에 언론이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스포츠 중계식으로 현장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됩니다.

이번 사태는 한국 사회에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근본적 치유가 되지 않고, 국제 사회에 한국이 이번 일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메시지와 행동을 보이지 않는 한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두고두고 지탄받을 것입니다.

반면에 한국이 진정한 세계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산업은 발전했고, 손재주가 우수하고, 머리는 좋지만 그동안은 한국 사회의 생존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진정한 세계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국제 사회의 안정과 평화, 번영을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장기에 걸쳐 행동으로 옮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랬을 때 국제 사회가 한국을 인류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고, 유가족들은 물론 충격받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는 것,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홍익인간이란 좋은 구호가 있습니다. 이제 액자 안에서 꺼내 현실 속에서 살아움직이게 하는 방안에 대해 한국인 모두는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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