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정읍을 배우자"…연구현장의 새로운 변화 '주목'

"전주 비빔밥을 우주로." "세계 방사선 기술의 중심." 최근 전북 정읍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있는 원자력 연구소 정읍분소 방사선 연구원에 붙어있는 표어입니다. 기존의 과학기술 연구소와는 분위기가 좀 달랐습니다.

10년 가까이 대덕연구개발특구에 둥지를 틀고 그곳의 소식을 전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활기였습니다. 연구소하면 무엇인가 공부벌레의 우수가 깔려있어 조직 분위기가 밑으로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외국의 다른 연구소를 가면 밝은 표정의 연구원들이 다소 왁자지껄하게 움직이는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연구 결과의 사업화 등을 이야기할라 치면 과학자들한테 왜 돈 버는 것을 강요하느냐고 퉁박을 받기가 일쑤였습니다.

마치 과학자는 수도승처럼 속세와는 떨어진 기초학문만 하면 된다는 식의. 그런데 정읍의 분위기는 판이했습니다. "돈 벌자!"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금기시되는 돈을 아예 노골적으로 거론하고 있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홀대를 받고 생존의 위기를 느끼면 안 변할 수 없다." 자세한 사정은 이렇습니다. 원자력 연구분야는 크게 두 가지랍니다. 하나는 발전분야이고, 다른 하나는 방사선을 활용하는 분야.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은 그 비율이 30:70 정도로 방사선 분야가 크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꾸로여서 90:10으로 방사선 분야는 겨우 명맥만을 유지했습니다. 한때는 1백50명에 달하는 과학자가 방사선을 연구했으나 대부분 발전으로 자원이 투입되며 심한 경우에는 한 자리수의 과학자만 남는 등 그야말로 존립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만큼 남들은 몇 억씩 연구비를 받을 때 한 해 2천만원만 받는 푸대접은 물론이고 인사상으로도 한직을 도는 등 여러 불이익을 받은 것입니다. 그 가운데 몇 사람이 방사선 분야의 가능성을 독립운동하듯이 외치고 다녔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발전 계획을 세웠습니다.

특히 요즘은 과학기술의 산업화를 강조하는 만큼 방사선 기술을 활용한 수익 방안을 마련해 정부에, 기업에 '세일즈'하고 다녔습니다. 연구원이 아니라 사업가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곳곳에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만화 외인구단처럼. 그 결과 많은 결실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덕에서 정읍으로 옮긴지 2년밖에 안됐지만 세계적 과학저널에 실리는 SCI 논문을 비롯해 많은 특허와 신제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10만평의 주변에 일차로 30만평의 공단을 조성하는데 방사선 기술을 받겠다고 기업들이 줄서고 있습니다.

남다른 결과를 보이는 곳에는 역시 미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기에 방사선은 위험한 물질로 알고 있는 지역민들의 반대가 거셌습니다. 심지어 일부 과학자는 낫을 목에 대며 철수하라는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일일이 지역민을 찾아다니며 결코 위험하지 않다고 설득하고, 연구소가 올 경우 지역 발전의 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변명우 방사선 이용연구부장이 총대를 메고 쫓아다녔습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미친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박용만 정읍시 과학산업팀장입니다. 지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첨단 산업의 유치가 절실하고 방사선 연구소의 유치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지역민들에게 알려나갔습니다.

정부 중앙부처를 찾아다니는 것은 물론 유치를 위해 토/일요일을 반납하고 뛰었습니다. 지역민들의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공무원들과 시민들의 시설 견학을 주선했습니다. 그 결과 정읍시는 물론 전라북도청의 전 공무원과 경찰, 소방서원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통반장은 물론 시민단체, 학생들도 견학을 와서 과학자들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연구소는 지역 발전의 희망으로 자리잡았고, 앞으로는 사업화를 하는 과정에서 시민주 공모와 지방자치단체의 투자 등의 방법으로 이익을 지역과 나눌 계획입니다.

정읍을 가보십시오. 그곳에 가서 원자력 연구소 정읍분소 방사선 연구원을 들러 보십시오. 우리나라 과학기술계가 이렇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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