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한국한의학연구원 혁신전략팀 한창연(한의사)
지난해 7월 미사일 실험과 10월 핵실험으로 인해 늦춰졌던 방북기회가 마침내 이뤄졌다. 12월19일 평양에서 열린 ‘제2회 남북한 민족의학 학술토론회’에 대한 참가를 생각했던 것은 지난 7월이었다. 동료 공중보건의사에게 남한의 한방보건사업을 북측에 소개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필자 역시 몸담고 있는 남한의 한의학연구 현황을 소개하자는 뜻이 맞아 방북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12월 18일 오후 3시38분 기장이 평양 순안공항 도착 안내 방송을 한다. “비행기로 1시간이면 족히 도착하는 거리를 2003년부터 기다려 지금에서야 올 수 있었다”는 동의과학연구소 박석준 소장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비행기 창 너머로 보이는 북한의 붉은 색 선전 구호와 함께 김일성 초상이 이곳이 남한이 아닌 북한임을 말해 주고 있다.
순서에 따라 비행기를 내리자마자 북한 땅에서 처음 만난 북한 인사에게 “여기가 평양입니까? ”라는 당연한 질문을 건네고 이내 카메라 셔터를 눌러본다. 카메라 렌즈로 들어오는 평양의 첫 모습. 회색건물에 붉은 선전 구호로 뒤덮인 건물들이 평양에 대한 첫인상을 영화 ‘Gloomy Sunday’의 주제곡을 떠오르게 하는 건 무슨 이유일까. 3박4일간의 평양일정을 통해 북한 보건의료의 실상과 고려의학 연구현황을 몸으로 느껴보겠다는 다짐이 무엇인지 조금은 무기력하게 빛이 바래져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빛바랜 회색건물이 이번 방북목적인 ‘조선적십자종합병원 호흡기병동 현대화사업지원’ 및 ‘제2회 남북 민족의학학술토론회’가 그리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간접적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이번 학술토론회는 방북 2일째인 19일 15시 우리가 묵었던 평양 양각도 국제호텔 1층 세미나실에서 진행됐다. 오전에 방문했던 고려의학과학원은 세미나실의 난방을 이유로 호텔 세미나실로 개최 장소를 옮겼다.
‘한의학의 현재와 미래’란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북측에서는 고려의학과학원 현철 부원장이 북한의 ‘고려의학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짧게 고려의학과학원을 소개했다.
이어 계속된 토론회는 북측의 경우, 고려의학과학원 내 연구소 소장들이 연구소 소개 및 연구현황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이후 남측에서는 동의과학연구소 박석준 소장님의 ‘한의학의 인식론적 특징’, 한국한의학연구원 이정화 연구원의 ‘전통의학 지식자료 현대화를 위한 남북한 협력방안’이 발표되었고 마지막으로 필자가 ‘한의약 연구개발사업의 현황과 전망’, ‘공공보건의료체계 속 한의학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발표했다.
대부분 남북교류의 허술함은 직접적인 교류를 취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즉, 교류자체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번 제2회 남·북 민족의학학술토론회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아직까지 남·북한 교류에 있어서 여러 가지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고 이번 토론회 역시 그 점을 감안해 남한에서는‘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 단체를, 북한에서는 ‘민족화해협의회’(이하 민화협)를 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의사소통이 2~3차례 거칠 수밖에 없게 되고 본질적인 내용은 그 과정에서 생략되어지거나 축소되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술토론회 진행은 북한에서는 현철 부원장이 좌장으로 나섰다.‘고려의학에서의 침구학의 발전’,‘은행잎제제를 만들기 위한 연구’,‘고려 의학적 지식기지 조성을 위한 연구’를 발표했다.남한에서는 동의대 박동일 학장이 ‘남북민족의학의 현재와 미래’주제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 동의과학연구소 박석준 소장이 ‘한의학의 인식론적 특징’, 한의학연구원 이정화 연구원이‘전통의학 지식자료 현대화를 위한 남북협력방안’, 필자가 ‘한의약 연구개발사업의 현황과 전망’과 ‘공공보건의료체계 속 한의학의 현황과 전망’을 발표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의 공통된 생각은‘이건 아니다’였다.
1차 학술토론회와 마찬가지로 남북한 상호주제협의가 안된 상태에서 서로 각자의 현황을 발표하는 수준에 머물러서였다. 학술토론회를 준비하는 양측간에 사전접촉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것은 바로 차제 학술토론회의 성패를 좌우할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한다. 그나마 이번 토론회의 가장 큰 결실은 향후 토론회의 주제를 압축하기로 한 것이다.
아울러 토론회 참석자 모두 2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민족의학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실 있는 토론회를 기약했다. 최근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북외교관계가 긴장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따라 어렵게 키워온 남북 민간교류까지 영향을 받고 있는 현실. 이번 2차 남북민족의학 학술토론회 또한 지난 2003년부터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막차를 탄 형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정한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한 교류를 통해 먼훗날 언제 있을지 모르는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것에 있다.
2003년 제1차 남북한 민족의학학술토론회를 시작으로 2006년 제2차 남북한 민족의학학술토론회는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며 제3차 남북한 민족의학학술토론회에서 보다 실질적인 토론회를 통해 남북한 교류를 넘어 통일에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한편 이번 방북단은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이 주관한 ‘조선적십자종합병원 신경·호흡기 병동 준공식’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번 방북단 일행은 다음과 같다.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박동일 학장(단장), 박석준 동의과학연구소 소장, 대한한의사협협회 김한성 사무부총장·김기상 비서실장, 임시덕 신우메디칼 사장, 한국한의학연구원 이정화 ·한창연 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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