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이 그 날을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1년을 시작하는 방식이 그 해를 결정한다.

매일 잠에서 깬 후 처음 맞는 30분을 ‘플래티넘 30’이라 부른다. 그만큼 하루를 여는데 소중한 시간이라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새해를 맞은 첫 주는 ‘플래티넘 위크’다. 한 해를 여는데 그만큼 중요한 주(週)라는 뜻이다. 삶의 주인되려는 의지 넘쳐야 플래티넘 30이 하루를 잘 살기 위한 준비와 명상의 시간인 것처럼 플래티넘 위크는 1년을 잘 살기 위해 자신의 삶을 새틀로 디자인하는 시간이다. 플래티넘 위크에 새틀을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사람의 틀이 자신의 삶으로 역 침투해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 주격이 아니라 목적격으로 살게 된다. 삶의 계약서에 ‘갑’이 아니라 ‘을’로 적히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 나라를 다녀갔던 독일외무장관 요시카 피셔는 1983년 독일연방의원이 된 후 1996년 아내로부터 이혼 당했을 때까지 스스로 목적격으로 살았노라고 고백했다. 목적격으로 산 그 13년 동안 그는 연방의원으로, 주정부의 장관으로, 녹색당의 원내의장으로 화려한 정치역정을 펼쳤지만 결코 자기 인생의 주인은 아니었다. 키 181㎝에 몸무게 75㎏으로 훤칠하던 그가 같은 키에 112㎏으로 불어난 ‘맥주통’이 되어버린 것 자체가 잘못된 삶의 방식, 습관, 태도의 숨길 수 없는 산물이며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지 못한 구체적 증표였다.

그는 이혼이라는 인생의 쓴잔을 마신 후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자기 삶의 주인자리를 되찾기로 결심했다. 먼저 몸을 바꾸기로 했다. 삶의 틀을 다시 짰다. 생활의 프로그래밍을 완전히 새로 했다. 그리고 매일 달렸다. 1년만에 몸무게를 37㎏이나 줄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살을 뺀 것만이 아니었다.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생활 자체가 바뀐 것이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다시 삶의 주인으로 복권시켰다는 신호탄이었다.

그 후 그는 1998년 슈뢰더를 수반으로 하는 적녹연정의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되었다. 그리고 자그마치 22세 연하의 신부를 새로 맞았다. 삶의 새틀짜기를 하고 그것을 실행한 결과였다.

새해는 날짜로 오는 것이 아니다. 새해는 새마음으로 만 오는 것도 아니다. 삶의 새틀짜기가 없으면 우리는 여전히 지난해를 살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새해를 맞으면서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설정한다. 그러나 이제껏 익숙한 개념과 방법 위에서 아무리 계획하고 목표를 세운들 우리는 여전히 과거에 있는 것이다.

진정 새해를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개념도 방법도 다른 바탕 위에서 새틀을 짜라. 그리고 실행하라. 익숙한 방식에 안주 말고 도전을!

조지프 세렌티노는 로스앤젤레스 청소년 법원의 판사다. 그는 갱단과 폭력배들이 우글거리는 환경에서 자랐다. 학교에서 네 번이나 낙제했고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 듯했다. 해병대에 입대도 했지만 결국 영창신세를 지고 쫓겨났다.

그후 그는 30여군데의 직장을 전전했다. 그러나 되는 일이라고는 없는 밑바닥 중의 밑바닥 인생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어느 야간고등학교 앞을 지나다 ‘누구나 등록할 수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 불현듯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는 놀랍게도 그 학교 개교이래 최고의 평점으로 졸업했다. 그후 그는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졸업 후에는 해병대에 재 입대해서 명예롭게 제대한 후 다시 하버드대학 로스쿨에 진학해 그 곳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졸업생 대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내 삶의 상처들을 들출 필요는 없습니다. 나의 변화는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 삶을 새틀로 써 내려가겠다는 굳은 의지의 산물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자신만의 드라마를 써나가는 작가로서 스스로는 그것을 새로 쓰거나 고칠 수 있는 권리와 책임이 있는 겁니다.”(댄클라크, 죽도록 원하는가 그러면 해낼 수 있다)

누구나 삶의 바닥이 있다. 진정으로 새로운 미래는 그 바닥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일대기를 새로 쓰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구나 시작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자, 플래티넘 위크다. 삶의 새틀을 짜자. 그리고 그 새틀의 주인이 되자. 사람은 그가 응시(凝視)하는 대로된다.
지금 당신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정진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atombit@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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