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부부·딸·삼촌·사촌오빠 온 가족이 과학자

최근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이 서로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연인의 잔(Lover's Cups)'을 발명해 화제를 모은 인물이 있다. 바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에 유학중인 정혜민(26) 씨. 정씨의 연구결과는 영국 잡지 '뉴 사이언티스트' 최신호를 통해 알려진 뒤 전 세계에서 자료와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등 큰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정 씨 뒤에는 평생 과학자의 길을 걸어 온 부모가 있다. 정광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과 정규수 국방과학연구소 박사가 그들이다. 어머니 정광화 원장은 정부출연연구기관 최초로 여성 기관장이 되어 화제를 모았다.

또한 정 씨의 아버지인 정규수 박사는 국방과학연구소의 핵심인력으로 부장급 이상의 보직도 마다한 채 연구에 매진해 왔다. 정광화 원장은 "딸아이의 소식을 듣고 저녁 내내 인터넷에 나온 기사를 검색해 보느라 남편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필요할 때 옆에서 보살펴 주지 못한 것이 항상 미안하다"며 딸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어린 시절 노는데 집중하면 밥도 굶기 예사고 화장실 가는 것도 다 잊어버릴 정도의 아이를 옆에서 살뜰히 챙겨주지 못한 엄마의 미안함 때문이다.

정 원장에 따르면 혜민 씨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과학과 관련이 많은 환경 속에서 자랐다.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수여하는 '2005 젊은 과학자상' 수상자 신중훈(36,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 교수는 사촌오빠이고, 미국 댈러스 삼성전자 연구소의 정용우(53) 소장, 충북대 화학과 정용석(49) 교수는 외삼촌이다. 이만하면 정 원장 집안이 과학 명문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혜민 씨가 태어나고 자라온 대덕은 과학기술계의 핵심인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길을 걷다 "김박사!"라고 부르면 지나가던 사람 반 이상이 쳐다볼 정도라는 우스갯소리가 통한다. 정 씨는 '박사'가 '~씨'처럼 이름 뒤에 붙이는 보통 호칭으로 알고 자랐다고 한다. 또한 집 가까이에 위치한 국립중앙과학관과 엑스포 과학공원은 정씨의 놀이터였다.

정 씨는 특별한 전시회가 없더라도 수시로 찾아가 살다시피 했다. 정 씨가 HCI(Human Computer Interface)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 졸업 후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 부설연구소인 디지털미디어랩에서 1년간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이다.

새로운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정 씨에게 연구원으로서의 생활은 그녀의 열정을 불러 일으켰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정 씨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할머니는 꼭 도와야 했고, 학교에서는 성적이 뒤쳐지는 친구들의 공부를 돕다 정작 자신의 공부는 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이러한 그녀의 성격은 그녀가 발명한 '연인의 잔'과 꼭 닮아있다. '연인의 잔'을 발명하게 된 것도 주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고 방법을 찾다 얻어진 결과이다.

마지막으로 과학적 호기심이 많은 아이로 키우기 위한 방법에 대해 물었다. 정 원장은 "주변에 과학자가 많아 자연스럽게 이러한 분위기에 익숙해진 것 같다"며 특별한 교육방법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 놓치지 않고 말해주었다"며 "예를 들어, 음료수 한잔을 마실 때도 기포가 위에서 아래로 어떻게 올라오는지 볼까?"라며 아이의 지적 호기심을 유도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