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부족한 모습이 호감...환하게 웃는 자세

얼마 전 친하게 지내는 한 여사장님을 만났더니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더 군요. 저를 만나기 전에 어떤 ‘절정고수’로부터 한수 지도를 받고 왔다며 환 하게 웃습니다. ‘CEO의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배웠다는 것이지요. 이 분에 따르면 대표이사는 모름지기 ‘항상 담을 것이 많은 얼굴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릇이 덮이면 담을 것이 없는 것처럼 얼굴 역시 닫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컨대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면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는 입 의 모양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조금은 숙여야 열려 있는 입의 안쪽에 채워 줄 공간이 보입니다. 그리고 항상 웃어야 하지요. 웃지 않으면 기꺼이 입 속 을 채워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치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자처럼 거 울을 보아가며 웃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슴은 썩을지라도 말입 니다. 이 여사장님은 겉보기에는 ‘사슴과’ 입니다. 마른 체구에 눈이 커서 유약해 보이기만 합니다. 체중이 40kg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한다고 합니다. 저도 이 분을 처음 만났을 때는, 회사에 참여한 걸출한 기술 인력들이 ‘불쌍한 여사 장’을 돕기 위해 측은지심을 발휘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몇 차례 만나다 보니, 사람은 역시 겉보기로 지레짐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척 강골이면서도 악바리 근성을 지니고 있더 군요. 때로는 엄청난 전투력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이 분이 약간 생각을 달리하게 된 것은 ‘부딪혀 깨뜨리는 것’보다 ‘담아내어 숙성시키는 것’이 더욱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 라고 합니다. 경영은 장기적인 투자라는 것입니다. 이 분의 말씀대로 CEO에 게는 담을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쓰레기조차 받아들여 정화하는 넓은 바다 처럼 말입니다. 이번의 주제는 ‘겸손’ 입니다. 겸손이 미덕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겸 손해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를 행한다는 것은 생각 만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개개인의 성격 탓도 있겠으나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세상이 겸 손이란 태도를 잊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온 순간부 터 건방을 떠는 사람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벤처기업 CEO들을 만나다 보면 몇몇 벤처 기업인들에 대한 욕을 많이 듣습 니다. “누구누구가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지요. ‘싸가지가 없다’는 내용을 듣 고 보면 대개는 얼굴을 바꾼 경영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CEO의 경우 자신의 사업 초창기 시절에는 동문 또는 업종 모임에 수시로 나와 친한 척하 며 계약을 챙겨 가더니, 나중에 펀딩을 잘 받거나 코스닥 등록을 한 뒤로는 얼굴조차 내놓지 않고 모른 체 한다는 겁니다. 간혹 협력사업을 제안하기 위해 찾아가기라도 하면 고개를 뻣뻣하게 치켜 들고 대기업 직원이 하청업체 다그치듯 몰아세운다고 합니다. 성공궤도에 올랐다는 자만 때문에 얼굴을 바꾸게 되었는지, 원래 그런 얼굴이었는데 그 동안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르고 또 구르는 게 세상의 이치인 모양입니다. 나중에 어떤 처지 가 되어 서로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대기업 출신인 A사장이 뒤바뀐 처지를 몸소 체험한 경우 입니다. 대기업 시 절 요직에 있던 A사장은 상당수 계열사의 프로젝트를 총괄한 적이 있는데, 당시 계열사와 협력사 직원들에게 깐깐하게 굴었던 것이 이제 부메랑이 되 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상사와 동기들의 ‘밀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시작 한 사업이 이렇게도 얽힐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새로운 일감이 생길 때마다 제안서를 넣어 윗 선으로 뚫고 나갈 수 있었지 만 그 때 뿐이었습니다. 도대체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실무자들 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으니 풀리는 것이 없지요. 도처에 복병이 숨어 있고, 사방이 적입니다. A사장은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꼼꼼했 던 것은 사실이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는데 왜 이렇게 못살게 구 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뼈저리게 후회를 합니다. “나를 낮추고 그 사람들 입장을 조금만 헤아려 주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 지 않았을텐데… 모두 내 잘못이지요. 누구를 탓하겠어요. 내가 덕이 부족 한 모양입니다.” A사장은 이제 자신의 친정보다는 다른 쪽의 사업을 수주하는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동석했던 A사장의 친구가 한마디 거들고 나섰습니다. “그 러길래 (좋은 자리에) 있을 때 잘해야지.”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 속담이 터무니 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 습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따뜻한 격려가 ‘평생 은 혜’로 각인될 수 있는 반면, 무심코 던지는 한 마디가 당사자의 가슴에 비수 로 꽂힐 수도 있습니다. 환대를 받은 상대방은 언젠가는 보답을 하겠다며 마 음에 새겨 놓습니다. 그러나 가슴에 칼을 맞은 사람은 ‘두고 보자’며 부드득 이를 갈게 됩니다. 무서운 적을 한 명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래서 어 떤 사람은 돌아다닐 때마다 친구를 사귀게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사방에 온 통 적을 만들어 놓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만큼 남들이 나를 알아주며, 오만을 부릴수록 설 땅이 좁아지 는 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라고 사업 선배들은 이야기 합니다. 언제 어디 서라도 고개를 숙이는 몸가짐이 배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를 합니다. 미국의 어떤 경제 주간지가 미국 내 100대 기업의 경영자를 대상으로 ‘CEO 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특이한 것은 조사 대상자 가운데 무려 79%가 인내(endurance)를 최우선으로 꼽았 다는 것입니다. 열화와 같으며 직선적인 미국 사람들의 기질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지요. 그러나 이런 응답 결과가 지구 반대 쪽에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인내할 수 있어야 겸손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안하 무인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꺼리는 것은 세계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일 것입 니다.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질을 꾹 참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 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겸손은 사업에 있어 미덕이 아닌, 필수 소양인 것 같습니다. CEO 는 입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도 합니다. 애매한 표현이지만 마음을 전달하 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항상 호기심에 차 있는 맑은 눈, 사람 을 끌어들이는 눈 말입니다. 이런 눈을 가진 벤처 경영자들을 이따금씩 볼 수 있는 것은 다행입니다 <아이뉴스24 기고=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 closest@bizhig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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