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이 간다]신현정 KAIST 교수..."학생들에게 포커스를 맞추겠다"

2002년 8월, 한 일간지에서 美 MIT대학의 한인 유학생을 성공사례로 소개한 바 있다. MIT대학에서 한국인 여학생 최초로 기계공학을 전공하면서 좋은 성적을 보여 주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학을 졸업하면 한국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게 꿈이라던 그녀가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 중 최고를 자부하는 KAIST의 교수가 됐다.

바비인형과 곰인형을 좋아하는 여성으로 당당하게 이공계에 도전장을 내건 한 여학생이 이제는 어엿한 교수가 돼 한국으로 금의환향한 것. 그 주인공은 바로 지난 9월 1일부로 KAIST 기계공학부 교수로 부임한 신현정(32) 교수. 그녀에게는 학창시절부터 따라붙는 수식어가 많다. 이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는 강한 승부욕과 호기심 때문에 생겨났다.

신 교수는 기계공학과 51명의 교수 중 가장 젊은 교수라는 타이틀과 생체모사를 연구하는 박수경 교수에 이어 기계공학과에서 찾아보기 힘든 여 교수 중 한명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기계공학과 학생들에게 신 교수는 남다르다. 젊고 재치 있고 강한 승부욕을 발산하는 그녀의 강의는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교수와의 거리감' 싸이월드로 '해결'..."젊음은 나의 가장 큰 무기다"

KAIST 기계공학동 한 강의실. 2학년 학생들이 한창 유체역학 강의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어려움을 호소할 정도로 어려운 유체역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진지하게 새로 강의를 맡고 있는 신 교수의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신 교수도 유체역학 강의가 어렵다는 사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좀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 역력했다.

이런 신 교수의 노력이 학생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일까. 학생들은 서서히 신 교수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제대로 질문도 안했던 학생들이 강의가 끝난 다음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신 교수와의 거리를 좁히며 학문을 탐구했다. 늦은 자정시간에도 예고 없이 교수실로 찾아오는 '무대뽀형'이 있는가 하면, 최근 유행하는 싸이월드에서 쪽지를 보내며 접근하는 '싸이형'도 있다. 이렇듯 신 교수는 더 깊이 학생간의 연결고리는 튼튼해져 갔다.

학생들이 신 교수에게 묻는 질문은 강연의 내용에서 인생 고민까지 천차만별이다. 아마도 큰 누나(언니)처럼 보이는 그만의 젊음과 재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일부 선배 교수들은 싸이월드를 통해 신 교수의 개인의 정보가 공개되는 것에 대해 “공인인 만큼 어느 정도의 선은 지켜야 한다”는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또 신 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여느 연구실과 다른 분위기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여느 여 교수 연구실과는 달리 유독 과자와 라면을 좋아하는 그녀의 책상 위에는 항상 몇 개의 과자뭉치와 컵라면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배움에 대한 욕심만큼 나에게는 왕성한 식욕이 넘쳐나기 때문에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난처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다"며 "그럴 때는 오히려 다음에는 빈손으로 오지 말고 맛있는 과자를 가져와 함께 먹자고 한다"고 말한다.

이제 겨우 두달이 채 안됐지만 서서히 신 교수의 연구실은 학생들의 '문제해결방'으로 자리잡고 있다. 늦은 밤 연구실로 걸려오는 전화를 비롯해 자정에도 활짝 열려있는 교수실은 학샐들에게 편안한 장소로 각광받고 있을 정도다.

의사를 꿈꿨던 한국인 유학생..."연구의 매력에 푹 빠져"
 

▲신현정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2005 HelloDD.com
현재 기계공학에서 꿈을 이루려 분주히 달리는 신 교수가 처음부터 공학에 관심을 가졌을까. 사실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정 반대의 길을 꿈꾸었다.

그는 몸이 약한 언니를 보며 의사가 돼 곁에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공계와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9월 서울 S고 1학년 교실. 2학기 중간고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당시 전교 1등을 다투던 그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윤리와 국어 과목의 답안지를 실수로 한 칸씩 밀려 기재하는 우를 범한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곧바로 과목 담당 교사에게 뛰어가 '선처'를 요청했지만 냉담한 대답뿐이었다.

성적은 50점도 채 안될 정도로 형편없었고 당시 교육 현실에 실망한 신 씨의 부모는 "유학을 가는 게 좋겠다"며 친언니가 살고있는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졸지에 그는 '조기유학생'으로 신분이 변했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인재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만만치 않았다. 92년 봄, 미국 로스엔젤레스 한 공립고에 진학했다. 외국 학생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영어실력을 만회하기 위해 수업시간 강의 내용을 빠짐없이 녹음한 뒤 반복해 들었다. 자신 있던 수학에는 더욱 재미를 붙여 12학년(고3)때는 인근 포모나大(Pomona College)에 등록해 대학과정의 수학 강의를 이수했을 정도. 졸업이 가까워오자 전교 성적은 5% 이내로 들어왔다.

신 교수는 94년 가을, 미국 보스턴 찰스강을 끼고 하버드대와 이웃하고 있는 MIT 기계공학부에 당당히 합격했다. 처음 그는 MIT 수학과로 입학했지만 기계공학에 재미를 느껴 전과를 했으며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동안 Pre-Med 프로그램에서 의대준비를 꾸준히 했다.

하지만 98년 MIT 졸업할 시기에 의대를 꿈꾸던 그의 마음이 바뀌는 사건이 발생했다. 메카트로닉스 분야에 뛰어난 명성을 가진 세계적인 석학 천정훈 교수의 실험실에서 기계공학 실험의 재미를 처음 접한 것이다. 그 후 결정적으로 기계공학으로 결심한 시기는 인도출신 마하데반 교수와 함께 1년이 지난 후였다.

당시 마하데반 MIT교수가 '정자'를 연구하는데 기계공학과 바이오를 함께 공부한 신 씨가 적격이라며 합류할 것을 제안, 그의 인생의 전환점을 준 큰 사건이다. 그는 마하데반 교수와 함께 거미과에 속하는 '말발굽 게'의 정자를 연구했다. 말발굽 게는 한국에는 없는 동물로 정자안에 용수철과 흡사한 조직이 있어 그 탄력성을 이용해 수정을 하는 특이한 동물이다.

그는 "체내 수정을 하는 동물들은 대부분 효소 작용으로 수정을 하지만 체외 수정하는 동물들은 알이 딱딱해 효소뿐만 아니라 기계적인 작용이 함께 접목돼야 수정이 가능하다"며 "이런 연구를 통해 다양한 사실을 발견되면 여러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말발굽 게의 정자를 보면 마치 유전자를 운반하는 '엔진'같다"며 "움직이는 자동차처럼 유전정보를 운반해 난자에게 전달하는 정자를 연구하면 신약에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인체 세포역학을 기계학적인 접근으로 연구를 하다보면 산업에서 적용 가능한 신개념의 기술이 탄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신 교수는 "기계과에서 바이오분야를 연구하는 것은 언뜻 보면 동떨어진 것 같지만 사실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아직 몇 개월이 안돼서 구체적인 연구 프로젝트는 없지만 4가지의 큰 로드맵은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는 동료교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연구를 계속할 생각이다. 신 교수는 "독불장군처럼 움직일 생각은 해본 적 없다"며 "동료 교수들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데 전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유명한 과학자가 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목표가 되기 보다는,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즐겁게 과학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지켜보는 동료 교수들은 "그가 연구하는 바이오와 기존 기계공학이 강한 하드웨어적인 노하우가 결합돼 값진 연구 성과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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