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연구원 사보 8월호, 글 : 박문규 책임연구원

필자는 아직도 만화와 무협지에 탐닉하던 어린시절의 취미는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젊은 작가가 쓴 무협지를 읽으면서 작가의 상상력과 수학 지식에 대단한 찬사를 보낸 적이 있는데 바로 검법에 수학을 응용한 내용이었다. 무협지의 주인공은 가장 빠른 검법이 직선으로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특정 모양의 곡선을 따라간다는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검술 초식을 개발해 낸다. 그 곡선은 바로 '사이클로이드(cycloid)'였다. 자동차 바퀴의 한 부분에 전등을 설치하고 달리면 그 불빛이 그리는 궤적이 있다. 즉, 바퀴가 돌아갈 때마다 동일한 모양을 반복하면서 고분과 유사한 모양을 그리게 되는데 이렇게 원을 직선 위에서 굴릴 때 원 위의 한 점이 그리는 곡선을 사이클로이드라고 한다. 같은 높이의 미끄럼틀을 직선과 사이클로이드로 만들고 공을 굴리면 길이가 더 짧은 직선을 따라 굴린 공이 먼저 바닥에 도착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사이클로이드를 따라 굴린 공이 더 빠르게 바닥에 도착한다. 사이클로이드는 '최단강하(最短降下)곡선'이라는 특수한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질은 한국 전통가옥의 기와지붕에도 활용된다. 지붕을 덮고 있는 암기와 그 끝에 얹힌 암막새의 곡선은 사이클로이드에 가깝다. 빗물이 지붕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여 목조건물의 부식을 방지하는 것이다. 놀라운 설계이다. 독수리나 매가 땅위의 토끼를 잡을때 아래로 내려오다가 목표물을 향할 때도 사이클로이드를 따라 간다. 여러 가지 그림의 일정 방향을 따라 색의 농담(濃淡)을 샘플링하고 주파수에 따른 파워스펙트럼을 구해보면 만화는 사실적인 인물화나 풍경화보다도 'Pink Noise'(1/f 스펙트럼)에 더 가까운 특성을 보인다. 이 성질은 자연계의 배경 신호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신호(나무껍질의 굴곡, 목소리, 바람소리, 저항체의 전류 신호)가 보이는 특성이다. 사실적인 초상화는 오히려 지루한 느낌을 주는 자연스럽지 못한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만화의 자연스러움을 수학적 도구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은 미술이나 수학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일상적인 사물들에 대한 수학적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리논리학분야 에서 1931년 발표된 괴델(Kurt Godel)의 위대한 증명 ‘불완전성 정리’의 의미를 풀어보면"수학이 완전하다면 수학의 무모순성을 수학 자체로는 증명할 수 없다"고 표현할 수 있다. 영화 'Matrix'에 묘사된 인공지능 컴퓨터가 지배하는 인간군상은 Matrix를 떠나기 전에는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 지 알 길이 없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의 또 다른 표현방식이다. 이현세의 만화 '아마게돈'에는 지구 생명체의 창조자로서 감정을 가진 완벽한 초자아컴퓨터 델타 8988이 등장한다. 인공지능 개발의 꿈을 만화나 영화가 멀찌감치 앞서서 그 가능성을 타진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는 기계의 개발을 겨냥한 학문으로서 인공 지능이 깃발을 올린 것은 1956년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났으나 완벽한 인공지능 델타 8988을 닮은 컴퓨터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두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 완전한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을 ‘불완전성 정리’가 제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개발의 첫 번째 좌절은 컴퓨터가 '상식'(Common Sense)을 처리하도록 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인공지능은 공학이나 의학분야, 체스 등 특정분야 전문가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본뜬 '전문가 시스템'의 형태로 응용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상식추론, 즉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를 처리하는 능력을 컴퓨터로 구현하는 작업은 의외로 벅찬 일이다. 문제의 영역이 바뀌면 동일한 단어라도 그 의미가 바뀌기 때문이다. 상식의 범주에 속하는 지식은 한계가 없을 정도로 많아서 적절히 저장할 수도 없거니와 그 경계가 참으로 애매모호해서 현재의 수학수준으로는 적절히 분리해 내는 알고리즘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나 알 수 없는 전문지식은 흉내 내기 쉬운 반면누구나알고있는상식은그렇지않다는사실이확인된셈이다. 최근의 우주공학 기술 은 몇 년간이나 우주 공간을 자동 항해한 우주선을 목적지 행성에 정확히 안착시키는 수준에 이르고 있고 최소경로, 최소연료소비량, 최단시간 비행 등 얼마든지 원하는 경로로 자동항해가 가능한 수학적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바로 옆 동네 친구 집까지 자동으로 운전해서 데려다주는 자동차는 왜 없는 것일까 ? GPS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 이 문제의 핵심은 실시간으로 신속하게 판단해야 할 정보의 양의 차이이다. 비어 있는 우주공간에서는 외부의 방해 (Disturbance)가 거의 없으나 인구가 많은 도시공간에는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려야하는 방해물이 너무 많아 미리 계획된 알고리즘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두뇌는 계산에는 약하나 두뇌에 저장된 방대한 분량의 경험자료로부터 필요한 지식과 행동방식을 순간적으로 검색해서 판단을 내리는 일은 어떤 슈퍼컴퓨터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의 속도와 정교함을 지니고 있다. 이 차이에 착안한 인공지능연구자들이 새로운 수학적 모델링을 시도한 것이 '신경회로망 (Neural Network)'이다. 두뇌의 뉴런(Neuron) 구조를 모사하는 수식을 만들고 사람의 학습 방식을 구현한 것이다. 신속한 판단능력을 흉내 내기 위한 Hopfield Network이란 것도 개발되었는데 그 동작방식이 다음과 같은 아주 간단한 미분 방정식으로 기술된다. dx/dt=-x(t)+Wσ[x(t)], x(t)가 구하고자하는 답이고 문제에 따라 Weight (W)가결정되며 σ는 비선형 함수이다. 이신경 회로망의 특징은 전압을 걸어줌과 동시에 (t)가 구하고자 하는 해로 즉시 수렴한다는 것이다. 미지수 x의 개수가 2개이든 100만개이든 계산시간은 동일하다. 계산시간이 문제의 크기와 상관없는 알고리즘 개발은 수학자들의 원대한 꿈들 중의 하나이다. 한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은 디지털 방식이 아닌 아나 로그나 광학회로로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자연현상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으로 귀결되는 것인 지도 모른다. MIT의 유명한 인공지능 학자인 민스키는 로봇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학자들에게 최근 매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가장 최악의 유행은 저 멍청한 작은 로봇들이다. 대학원생들은 저 로봇들을 똑똑하게 만들기 보다는 납땜하고 수리하느라고 3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 경고는 필자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먹고살기 위한 연구도 중요하지만 똑똑해지기 위한 연구는 제대로 하고 있는 지... 어쨌든 무협지에 나오는 검객도 수학이론을 응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 이 콘텐츠는 '한국전력연구원'이 저작권을 갖고 있습니다. 전력연구원과 본지의 허가 없이 이 내용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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