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 글 : 박상준 과학칼럼니스트

안방극장에도 SF같은 설정의 드라마가 등장했다. 한국방송의 '그녀가 돌아왔다'는 냉동되었다가 되살아난 젊은 여성이 주인공이다. 게다가 이 여성은 예전의 연인이었던 남자 및 그 아들과 삼각관계까지 이룬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아들로서는 아버지가 무척이나 불미스럽게 여겨질 테니, 참 얄궂은 설정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의 평범한 일상 같은 드라마에 불쑥 과학적인 테마가 삽입되면서 어쩐지 냉동인간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도 일어난다. 따지고 보면 외국에는 언젠가 깨어날 날을 기다리며 잠들고 있는 냉동인간들이 꽤나 많다고 하지 않는가. 과연 냉동인간은 언제 드라마에서처럼 잘 깨어날 수 있을까?

그간 우리가 본 냉동인간들은 주로 SF영화에 많이 등장했다. 신나는 가족용 우주모험 영화인 '로스트 인 스페이스'에서는 주인공들이 우주여행을 떠나면서 곧장 냉동 캡슐에 들어가 순식간에 서리가 낀 얼음처럼 변해버린다. 그런가 하면 '2001년 우주의 오디세이'나 '에일리언'시리즈 등에서는 승무원들이 인공동면을 하며 오랜 세월을 견뎌낸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기는데, 과연 냉동보존과 인공동면은 서로 다른 점이 무엇일까? 얼음처럼 꽁꽁 어는 것과 그냥 겨울잠을 자듯이 오래 잠자는 것.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동면, 즉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의 목적은 한 마디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것이다. 겨울엔 기온이 내려가고 먹이도 구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차라리 잠을 자는 편이 낫다. 동면 기간 중엔 체온이 내려가고 호흡수도 많이 줄어들어서 깨어있을 때보다 에너지 소모가 훨씬 적기 때문이다. 이런 겨울잠을 영어로는 '하이버네이션(Hibernation)'이라고 한다.

반면에 생물을 얼음처럼 꽁꽁 얼려서 냉동 보관하는 것은 '크라이오닉스(Cryonics)'라고 부른다. 이것은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생체 조직이 상하지 않도록 특별한 처리를 한 상태에서 인간이나 기타 생체조직을 초저온으로 냉동시켜 장기 보존하는 기술이다. SF영화 등을 보면 종종 이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직까지 자연 상태에서 스스로 동면이 아닌 냉동 상태에 들어가는 고등동물은 보고된 바가 없다.

인공동면과 냉동보존의 공통점은 아직 인간을 대상으로 성공한 예가 없다는 것이다. 인공동면의 경우 의학적으로 저체온 요법을 실시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한 시간 남짓한 짧은 기간일 뿐, 사람이 몇 년이나 몇십 년 동안 겨울잠을 자지는 못한다.

원리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어도 인간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실용화 될 가능성이 오리무중인 셈이다. 한편 인간의 냉동보존은 일정기간 뒤에 다시 깨어난 뒤 완벽한 정상 상태로 회복되어야 비로소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런 예는 없다.

간혹 가다 사고로 얼음물 속에 빠진 사람이 꽁꽁 얼다시피 한 상태에서 구조되어 다시 회복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길어야 10분 정도일 뿐, 장기간의 냉동보존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면 냉동보존에서 다시 회복되는 것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나 가능하게 될까? 이것은 물의 독특한 성질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달렸다.

우리 몸의 약 70%는 물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물이란 물질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액체일 때보다 고체일 때 부피가 더 커진다. 음료수가 가득 찬 병을 냉동 칸에 넣어두었다가 나중에 낭패한 기억이 없는지? 음료수가 얼면서 병을 깨뜨려버리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 원리로 생물체도 꽁꽁 얼게 되면 세포 내부의 수분이 팽창하여 세포벽을 찢어버리게 된다. 한번 찢어진 세포는 저절로 원상복구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냉동에서 풀려난 생물체도 다시 살아나기는 어렵게 된다.

냉동보존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에서 수분을 빼내고 대신 동결방지제를 넣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일종의 생물용 부동액을 이용하는 셈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부분적인 성과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을지의대 김세웅 교수가 쥐의 자궁을 손상 없이 냉동시켰다가 이것을 다시 녹여 쥐에게 이식한 다음 임신하게 하는 데에 성공한 바 있으며, 더 나아가 재작년에는 인간 여성의 난소를 얼려 보관한 뒤 이를 다시 이식해 임신하도록 하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이것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성공한 기록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냉동보존은 완전한 회복이 관건이자 핵심이다. 현재 미국 등지에서 냉동 보존되고 있는 사람들은 현대의 의학 기술로도 완치될 수 없는 심각한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미래에는 혹시 치유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냉동인간이 된 것이다.

이런 일을 처음 벌인 사람은 1967년 생물냉동학재단을 설립한 심리학자 베드포드박사로서, 그 자신이 폐암 선고를 받자 스스로 냉동인간이 되었다. 당시 그의 몸에서는 체액이나 혈액이 모두 빼내어진 채 응고 및 동결방지제가 포함된 혈장으로 대체되었고, 이어서 영하 196℃의 액체질소가 담긴 금속캡슐에서 냉동상태에 들어갔다. 이들 냉동인간들은 불치병의 치료약뿐만이 아니라 냉동상태에서 완전하게 회복되는 기술 역시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아직 냉동인간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기술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간 두뇌는 다른 신체부분과는 달리 무척 예민하기 때문에, 과연 냉동 상태로 온전하게 보존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또 다른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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