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경쟁력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 본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이 결정돼 최고경영자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사의를 표명했다. "

구조조정의 성공 사례로 꼽히던 한국전기초자(HEG)서두칠 사장의 사임 소식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0일 서울 남대문로 대우재단 빌딩 내 한국전기초자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徐사장은 위로 전화를 연신 받으며 사임의 변(辯)을 밝혔다.

그가 말한 결정적 사임 이유는 경영전략의 충돌. 그는 "지난해 연말 이후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의 시장 잠식과 경기 침체로 모니터 유리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다. 수요자들은 가격 인하를 요구했고 원가경쟁력이 있는 HEG는 최대 12%까지 가격을 인하하며 물량을 공급했다. 반면 지배주주인 아사히글라스 그룹은 다른 소속사의 생존을 위해 감산 정책을 추진했고 HEG에도 보조를 맞출 것을 요구했다" 고 말했다.

가격경쟁력이 있는 기업은 증산을 해야 한다는 徐사장의 주장과 가격을 내리고 물량을 쏟아붓는 것은 제살깎기인 만큼 감산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자는 일본측 주장이 부닥친 것이다. 두 회사는 지난해 연말 이래 계속 절충점을 찾아봤지만 입장차만 확인됐다.

그러자 徐사장은 최고경영자로서 권한을 주지 않는다며 사임의사를 표명했고 지난 9일 일본 본사의 다나카 부사장은 徐사장의 사임의사 수용을 통보했다.

徐사장은 "담담하다" 고 자신의 심정을 밝힌 뒤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본사가 안타깝다" 고 말했다. 그는 "미국식 경영이라면 글로벌한 차원에서 경쟁력 있는 회사를 지원해 파이를 키웠을 것" 이라며 "아사히의 정책은 HEG의 독자성은 인정하지 않고 단순 생산기지화시키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사임 소식을 듣고 벌써 몇몇 회사에서 영입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당분간은 쉬면서 종업원들의 기(氣)를 살려 생산성을 높이는 '한국식 경영모델' 의 전도사가 되겠다고 밝혔다. '2001 재도약, 2002 변혁, 2003 성취' 등 본인이 내건 경영 목표에 대해서는 "후임 경영진의 결정에 달렸다" 며 "기업은 계속해서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식해주기를 바란다" 고 덧붙였다.

徐사장은 "지난 3년이 10년으로 느껴질 정도로 열과 성을 쏟았다" 며 "자원도 없고 기술도 부족한 우리로서는 남 놀 때 일하고, 남 잘 때 공부할 수밖에 없다" 고 밝혔다. 그는 이번 결정에 대해 "결코 타의(他意)가 아니다" 며 자신의 선택임을 강조한 뒤 "담담하다" 는 말을 반복해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HEG 구미 본사 분위기는 徐사장의 사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직원들은 "徐사장이 몸을 던져 회사를 정상화시켰다" 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회사의 주인은 우리인 만큼 우리 일만 열심히 하면 될 것" 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 한국전기초자의 대주주인 일본 아사히글라스측은 "사업운영의 기본방침과 관련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고 들었다. 徐사장이 먼저 그만두고 싶다는 뜻을 고시다 회장에게 전달했다" 고 밝혔다.

<대덕넷 이석봉 유상연 기자>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