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천주욱 스탠다드테크 대표이사

금년에는 벤처기업이 또 한 번 뜰 것 같습니다. 고용을 확대하고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정부가 10조원에 달하는 벤처자금을 풀겠다고 할 뿐 아니라, 기술보증사와 신용보증사를 통한 벤처기업 보증확대, 대기업의 벤처기업 출자에 대한 출자 총액 제한제도의 탄력적운용, 창업투자사 개인투자가들의 코스닥 상장사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 강화, 공공기관 R&D예산 중 5% 이상을 혁신형중소기업에 지원하는 기술혁신지원제도 도입 등 벤처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 것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로서는 어쩌면 DJ정부 초기와 같은 벤처투자 열풍이 불기를 바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금년도는 벤처기업이 또 한번 뜰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좋은 현상이며 기대가 큽니다. 그 동안 고생고생하던 벤처기업들은 아마 거의 대부분 금년에는 뭔가 될 것 같은 자신감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망설이고 있던 벤처기업 창업희망자들도 올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벤처창업을 서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그러나 문제가 좀 있습니다

90년대 후반은 전세계적으로 IT와 디지털산업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시기였습니다. IT기술을 활용한 미국 eBay 같은 전자상거래가 수 백년간 이어 온 종전의 시장과 마케팅질서를 바로 허물어 버릴 뿐 아니라, 디지털기술의 총아인 모바일폰 등 디지털통신이 우리 생활패턴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는 등 외국컨설팅회사들의 협박(?)은 매일 언론과 방송을 요란하게 장식했습니다.

마침 이런 시점에 들어선 정부가 DJ정부였습니다. DJ정부는 초기에 엄청난 돈을 IT와 디지털산업을 주축으로 하는 기술벤처사업에 마구 쏟아 부었습니다. 정부뿐이 아니었습니다. IT나 디지털산업에 낙후되는 굴뚝기업(?)은 곧 망할 것이라는 미국계 컨설팅회사들의 협박(?)은 공포심마저도 들게 할 정도여서 많은 굴뚝기업들도 엄청난 자금을 벤처사업에 투입했습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벤처 자회사를 만들기도 하고, 회사 내 벤처조직을 두기도 했으며, 하찮은 기술을 가진 벤처회사를 몇 백억 인수하기도 했으며, 창투사를 설립하여 유망 벤처기업에 몇 십억 몇 백억 몇 천억을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정부와 기업의 이런 움직임에 고무된 개인투자가들은 더욱 광분하여 20-30년 사업해서 번 돈이나 외환위기 때 회사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은 물론이고 그 동안 저축한 쌈짓돈을 가리지 않고 많은 개인들이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큰 유행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당시 테헤란로에 있는 고급호텔은 벤처기업 사업설명회로 날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1-2년내 코스닥에 상장되면 벼락부자 될 투자 건도 참 많았으며, 심지어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지 못 해 빽을 동원하는 경우까지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2000년 들면서 전세계의 IT와 디지털경기가 시들해지자 처음부터 경영력도 없고 도덕적으로도 건전하지 않으면서 별로 유망하지도 않은 기술 하나로 벤처기업을 만든 벤처창업자들은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벤처창업자들은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었으니 망해도 그냥 본전(?)이었지만, 대기업과 개인투자가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은 것입니다. 몇 십년간 모은 돈을 한 방에 날린 개인투자가들은 벤처투자를 잘 못 해서 집도 잃고 마누라도 잃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잃은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아마 지금도 휴지가 된 코스닥주식이나 1-2년내 코스닥 상장만 되면 벼락부자가 되리라던 미상장 벤처회사 주식을 갖고 있는 개인투자가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대기업에서도 벤처투자를 담당했던 많은 임직원들이 회사에서 퇴출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대기업이 만든 많은 벤처회사나 벤처조직이 공중분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바로 몇 년전에 이런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많은 자금을 벤처기업에 쏟아부어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정부 외는 벤처기업 투자에 그렇게 큰 매력을 느끼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부도 몇 년전의 실패경험을 참고해서 벤처기업이라고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아무 벤처에나 자금지원을 하고 보증을 서고 하지는 않아야 할 것입니다. 기업과 개인투자가들은 벤처라면 옆에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치를 떨고 한기를 느낄지도 모릅니다.

2. 어떤 분야에 벤처사업을 해야 하는가

위에서 지난 몇 년간 우리 벤처사업의 어두운 면을 너무 강조 했지만 사실 첨단기술산업분야에서는 벤처사업이 꼭 필요합니다. 왠만한 분야의 벤처사업, 특히 일반제조업의 기술개발에 관련된 벤처사업은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중국의 추월로 경쟁력을 잃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벤처사업을 한다면 이제부터는 첨단 기술분야 벤처사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미국은 이런 첨단기술산업분야의 벤처사업에 의해서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이며 지금도 미국 첨단산업을 움직이는 큰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벤처기술이며 벤처회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이번에 정부가 나서서 다시 한 번 벤처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한다고 하면 가장 좋은 벤처사업분야는 정부가 중점적으로 육성하려고 하는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분야>에 관련된 벤처사업이 가장 좋은 분야 같습니다.

그리고 만일 기업이나 개인들이 벤처투자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런 분야의 벤처사업에 투자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래 10대 차세대성장동력산업를 보면 알겠지만, 이런 산업들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도 최첨단에 속하는 산업분야입니다. 즉, 앞으로는 벤처사업을 하거나 벤처투자를 하더라도 전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미래산업분야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이용해서 전자상거래를 하거나 커뮤니티를 만드는 등의 인터넷관련 벤처사업보다는 바이오 디스플레이 지능형로봇 미래형 자동차 등과 같이 실물이 있는 미래산업분야에 관련된 벤처사업을 하고 벤처투자를 해야 좋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차세대형 첨단산업 벤처사업은 어느 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국내외에서 체계적인 연구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기술동향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국공립연구소, 대학연구소, 기업의 첨단연구소 및 그런 연구소 출신들이 만든 벤처기업에서 많이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도에 각광 받을 벤처기업은 종전과 같이 컴퓨터 몇 대 갖다 놓고 IT기술을 활용해서 이렇고 저런 요상한 솔루션이나 전자상거래를 개발하는 소위 테헤란벨리형 벤처기업이 아니라, 대덕연구단지나 포항공대 및 KIST연구소,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연구소 및 첨단바이오산업인 배아복제 줄기세포 관련 연구소 등과 같이 세계적인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벤처기업이 될 것이며 그런 벤처사업에 투자를 하고 지원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차세대 10대 성장동력산업 분야>

-. 바이오산업 : 신약, 바이오 장기, 바이오 칩 -. 디스플레이 : LCD, LED, OLED, 3D, 전자종이, 관련 소재 -. 지능형 로봇 : 가정용로봇, 산업용로봇, 의료용로봇 -. 미래형자동차 : 지능형자동차, 친환경자동차 -. 차세대반도체 : 차세대 메모리, SoC, 나노전자소자, 관련 소재 -. 차세대전지 : 2차전지, 연료전지, 관련 소재 -. 디지털TV 및 방송 : 방송시스템, DTV, DMB, 셋톱박스, 복합기기 -. 차세대이동통신 : 4G단말기 및 시스템, 텔레메틱스 -. 지능형 홈네트웍크 : 홈서버, 홈게이트웨이, 지능형정보가전 등 -. 디지털콘텐츠 : 지능형 종합물류시스템, 디지털컨텐츠제작 등

3. 기술보다 경영이 더 중요하다

본인은 1980년대 중반 삼성물산에 근무할 때 우리 나라 최초의 사내벤처인 테크노벨리팀을 만들어 보기도 했으며, 90년대 후반 IT벤처가 한창 뜨기 시작 할 때 CJ그룹에서 CEO로 있으면서 누구나 알만한 젊은 벤처1세대들과 많은 교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요사이도 가끔 여러 벤처기업 CEO모임에 가서 벤처경영에 관한 특강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항상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꺼냅니다. “기술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경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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